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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마음이 담긴 오리
형의 마음이 담긴 오리 ⓒ 김현
"근데 저건 뭐야?"
"오리. 오다가 황토오리구이 집이 있길래 생각나서 사왔다."
"안 비싸?"
"비싼 게 중요하냐. 먹는 게 중요하지."

형은 예전에 몇 번 먹었다던 오리구이를 혼자만 먹었던 게 마음에 늘 걸렸다 한다. 그래 언젠가는 가족들에게 꼭 사다주고 싶었다 한다. 이번에도 그 오리구이 집 옆을 지나다 갑자기 늙으신 부모님과 동생, 조카들이 생각나 사 가지고 왔다 한다.

형은 예전부터 동생들에 대한 생각이 끔찍했다. 어릴 때 기억을 더듬어 보면 형은 부모님을 대신해 집안 살림을 도맡아 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농사철엔 형은 저녁밥을 지어 동생들을 먹이고 설거지까지 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학교 공부는 늘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던 형이 엇나가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였다.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자신이 가고 싶은 학교에 가지 못하면서 방황하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고, 가출까지 하게 됐다. 가출을 하면 어머닌 형을 찾아 나섰고 다시 학교에 돌아왔지만 방황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 뒤로 형은 결석을 하거나 수업 중에 땡땡이를 치곤 하였다.

ⓒ 김현
그러다 어머니의 눈물에 2학년 말쯤 정신을 차리고 학교에 나가기 시작했으나 3학년 진급 시 학교에서 제동을 걸었다. 결석이 많아 3학년 진급이 어렵다고 다시 2학년 1년을 더 다니라고 했다. 이에 형은 더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두고 말았다. 형은 나중에 검정고시를 보아 고등학교 졸업을 인증받았으나 술을 마시면 그때의 일을 되씹곤 했다.

"그때 담임이 3학년에 올려만 주었어도 내 모습이 지금의 모습은 아닐지 모른다."

사실 그때에는 몰랐으나 형이 3학년 진급을 못 할 정도로 결석을 많이 한 건 아니었다. 다만 '문제아'라 찍혀 3학년 진급을 안 시켜준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교사와 학생간의 믿음이 없기 때문에 올라가 봤자 또 결석이나 하고 말썽을 피우겠지 하는 판단에 진급을 안 시켜준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아이들은 항상 변한다는 사실을 그때 형을 맡았던 선생님이 조금만 생각했으면 형은 3학년에 진급을 했을 것이고, 학교를 그만두고 오랫동안의 방황이 어쩌면 많이 줄어들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맛있게 드신 단호박밥
어머니가 맛있게 드신 단호박밥 ⓒ 김현
생각해 보면 형에겐 세 번의 운명의 갈림길이 있었다. 첫 번째가 고등학교 입학이고, 두 번째가 고등학교 때의 진급 사건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가 서른이 다 된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려 했다가 역시 경제적인 문제로 포기한 사건이다. 이 세 번째 사건은 나 또한 형에게 빚진 것이기도 하다.

형에게 말은 안 했지만 형을 볼 때마다 나 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를 못한 건 아닌가 하고 늘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한다.

그 형이 세상살이가 부대낀다고 멀리 떠난 지가 일 년 수개월 전이다. 그리고 갑자기 전화를 해와 온 식구를 모이게 하고 오리고기 두 마리를 사 온 것이다. 오리들은 한지에 꼭꼭 싸여 있다가 상 위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쯤 마을회관에 계신 어머니도 아이들 손을 잡고 들어오셨다.

먹기 좋게 ...
먹기 좋게 ... ⓒ 김현
어머니는 모처럼 둘째 아들을 본 반가움에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그러면서 돈도 없는데 왜 비싼 걸 사왔느냐고 하신다. 당신의 입보다 아들의 호주머니가 더 걱정이시다. 열일곱 명이 넘은 식구들이 모여 고기를 먹는데 모두 처음 먹어본다며 맛있게 먹는다.

그런데 어머닌 고기보다 호박과 단호박에 찐 밥만 드신다. 그런 어머니를 보고, 형은 고기도 드시라며 손수 고기를 떼어 준다. 그제야 어머닌 맛있다며 드신다. 이가 부실하신 아버진 연한 부분과 껍질을 드시며 좋아하신다. 그러면서 자식들에게 술 한 잔씩을 따라주신다. 평생 처음으로 따라 주시는 술이다. 말은 안 하시지만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술이리라.

술이 한 잔 들어가자 형은 동생의 농사일, 부모님의 건강 등을 물어본다. 그러면서 동생의 농사일을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 한다. 해마다 동생이 바쁠 때면 농사일을 도와줬는데 작년부턴 도와주지 못함을 두고 한 말이다.

동생은 괜찮다 하지만 형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그러나 아주 모처럼 형과 함께 한 시간은 즐거웠다. 그리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담겨 있는 황토오리구이와 함께 해서 더욱 즐거웠는지 모른다. 그 속엔 형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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