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산에는 봄이 더디게 온다
17일, 마을의 꽃들이 휩쓸고 가버린 아침에 꽃을 찾아 진달래가 아름답게 핀다는 소요산을 찾았다. 얼마 전 부터 그곳까지 지하철이 개통, 접근성이 용이하여 가볼 만하다는 소문을 듣고서였다. 듣던대로 지하철만 몇 번 갈아타면 소요산 입구까지 빠르고 편하게 도달할 수 있어 좋았다.

소요산은 '지공'(65세 이상으로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연령)들의 무대였다. 며느리, 아들의 눈치에 쫓기어 작은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집을 나선 무수한 지공들께서 돈 안들이고 하루를 보내기엔 소요산만한 데가 없을 터였다.

지하철은 물론 공짜거니와 공원 입장료도 면제니 점심 때울 한 끼 거리만 있으면 맑은 공기, 아름다운 경치, 갓 피어서 하늘거리는 진달래까지 온통 그분들의 것이니 어찌 아니 올 수가 있겠는가(근데 왜 공원 입장료라 하여 2000원이나 받는 거지? 딴 데는 다 없어졌는데).

ⓒ 제정길
소요산 가는 길의 도로변에는 벚꽃이 한창이었다. 덜 핀 것도 아니고 피어서 흐물거리는 것도 아닌, 제철을 만난 벚꽃은 주막집의 새로 온 유녀처럼 사람들을 유인하고 있었다.

대부분 지공이거나 몇 년 후면 지공에 들어설 수 많은 유객들은 벚꽃의 꾀임에 따라 소요산 입구로 몽유병자처럼 흡인돼 가는데, 한 무리의 유치원 아이들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종종거리면서 소요산을 벗어나고 있었다.

귀여웠다. 우리의 노년을 위하여 저들의 어깨에 얼마나 많은 세금 폭탄을 떠 안게 할지 알 수는 없지만 귀엽고 그래서 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 제정길
공원 안 자재암에서는 야단법석이 또한 한창이어서 신도들은 마당에 까지 엎드려 스님의 법문 듣기에 바빴다. 무슨 사연들이 저들을 이곳까지 오게 하였을까, 아무것도 믿지 못하므로 나는 허우적 거리며 그들 곁을 지나쳤다.

ⓒ 제정길
산은 시작부터 바로 급경사였다. 바위 사이에 박힌 철난간을 붙잡고 올라야 할만큼 길은 험하고 가팔랐다. 해발 500m가 조금 넘는 주제에 웬 급경사람, 투덜거리면서도 올라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나무 사이사이로 진달래가 수줍게 피어 실바람에 간들거리는 게 힘든 것을 달래주려는 산의 위로 같았다.

생각보다는 산도 험하고 나무들도 험상궂게 생겼다. 이리저리 용틀임을 하며 솟아오른 소나무들이며 묘하게 뒤틀린 바위들이 작으나마 산세의 웅장함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이래서 경기의 소금강이라 불리나 보다.

ⓒ 제정길
하백운대(440m)를 지나니 경사는 무디어졌다. 소로로 이어진 등산로 가로 소나무며 굴참나무며 진달래가 서로 섞여서 아늑하고 정감있는 분위기를 연출해내고 있었다.

ⓒ 제정길
중백운대(510m)를 거쳐 상백운대(559m)를 지나니 칼바위능선이 나타났다. 말 그대로 칼날처럼 뾰쭉뾰쭉한 바위들이 능선을 이룬 가운데 바위 표면을 닮은 껍질을 입은 소나무가 바위처럼 웅크려 있었다. 길은 어디로엔가 증발되고 없어 바위가 곧 길이 되었고, 바위 옆의 떡갈나무들, 바위를 상전마냥 떠받치고 있었다. 처음 무당이 되어 작두를 타는 새내기 무녀처럼 조심조심 칼 위를 타 넘었다.

ⓒ 제정길
칼 타기는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칼들은 세워져 있거나 눕혀져 있거나 서 있거나 엎드려 있기도 했다. 사람이 만든 길은 칼 앞에서 무력했고 칼은 길들을 헌 짚단 베듯 베어 공중으로 던져버렸다. 길이 없어져 버린 곳에 칼은 길을 대신하여 엎드려 있었다. 칼바위능선이 끝나는 곳에 진달래 한 그루 새초롬히 소나무에 안겨있었다.

ⓒ 제정길
다시 내리막과 오르막을 거치니 나한대(571m), 또 한 번 더 오르내리니 소요산의 최고봉인 의상대(587m)가 나타났다. 여덟 명의 '늘근백수'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하여 의상대로 모여들었다. 작은 산이지만 볼거리도 괜찮고 걸을 거리도 꽤 되었다. 해가 중천을 넘어 그곳에 둘러앉아 간식으로 뱃속을 위로하고 누군가 가져온 막걸리로 지친 다리를 위문하였다.

ⓒ 제정길
"나이 들어가면 기력이 한 해 한 해가 엄청 달라지는구먼" 하고 누가 말을 꺼내자 "아니 한 해씩이나… 나는 한 달 한 달이 다르게 팍팍 가는 것 같은데" 하고 대꾸 하는데, 커피를 마시고 있던 광암이 뒤를 돌아보며 아까 어느 젊은이는 '저는요 산에 올라갈 때 다르고 내려갈 때 달라요'라고 말하더라면서 웃었다.

그래 우리도 몇 년만 지나면 '지공'의 경지에 돌입하겠지. 과연 몇 번이나 이 산에 다시 와 볼 수 있을는지.

ⓒ 제정길
내려오는 길은 다시 가팔라졌다. 기이하게 뻗어나간 덩굴나무 사이에서 철쭉은 전혀 움도 터지 않았고 진달래는 더러 피었고 더러는 입술을 오무린 채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요산에는 봄이 온 것인가? 입구에 벚꽃이 피고 진달래 몇 몇 입을 벌렸으니 봄이 왔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우리의 마음에는, 우리의 거소에는, 우리의 '살이'에는 봄이 온 것인가, 과연? 아래 따뜻한 마을에는 봄이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내 산에는 봄이 까마득히 멀었다고 한숨 짓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러분은? 아니 봄이 전혀 올 것 같지를 않아 절망하고 있지는 않은가, 혹시?

산에는 봄이 더디게 온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