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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부터 서울 남가좌동 명지대학교에서는 91년 4월 '학원자유화와 노태우 군사정권 타도'를 외치다 백골단의 폭력적인 시위진압으로 산화한 명지대생 고 강경대 열사의 추모주간이 치러지고 있다. 18일에 찾은 캠퍼스 곳곳에는 열사의 정신을 기리는 각종 현수막이 걸려있었고, 학생회관 1층에는 강경대 열사를 비롯해 90년대 민주화를 외치다 산화한 열사들을 기리는 분향소가 함께 마련되어 있었다.

행사를 준비한 '애국학생 강경대 열사 추모 준비위원회'는 성명서를 통해 "열사의 정신을 계승해 학원 자주화를 이뤄내고, 4월 한 달간을 '학원자주화 투쟁의 달'로 선포해 대대적인 등록금 투쟁을 벌여나가자"고 말했다. 또한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실현시켜 민족통일을 앞당기고 외세세력으로부터 우리의 경제주권을 지키기 위해, 굴욕적인 한미 FTA의 원천무효"를 주장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고 있는 학생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 학생들의 발길이 끊긴 분향소 주변엔 열사들의 영정사진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손기영
학생회관에 마련된 분향소를 지나던 남기상(26.정치외교학과)씨는 "열사정신을 기리자는 말이 잘 이해가 안가고, '학원자주화', '민족통일' 등의 거대담론들이 왠지 자신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 같다"며 이번 행사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최민정(21.경영학과)씨는 "학교 전체가 제삿집 분위기 같아 적응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가 학생들 사이에서 널린 퍼진 이유는 자주, 민족, 통일 등의 거대담론들이 더 이상 요즘 대학생들에게 관심대상이 아니고, 이를 위해 싸우다 산화한 열사들의 정신을 기리자는 '열사문화' 또한 이들에겐 생경한 이야기로 들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썰렁한 분향소 주변과는 달리 학교 도서실에는 중간고사 기간을 맞아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만큼 많은 수의 학생들이 자리잡고 있었고 저마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해, 그동안 강의시간에 배웠던 내용들을 공부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다가올 취업준비를 위해 공무원 수험서, 토익문제집 등을 푸는 학생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 썰렁한 분향소 주변과는 달리 학교 도서실에는 중간고사와 취업준비를 하기 위해 몰려든 학생들로 붐볐다.
ⓒ 손기영
점점 학생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는 '열사문화'에 대해 중앙대 진중권 교수는 그의 저서 <폭력과 상스러움>에서 그 위험성을 함께 지적하면서 "열사문화는 자칫 대의만 올바르면 언제라도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병적인 생각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며, 실제로 80년대와 90년대의 운동과정 속에서 '열사의 인플레이션'현상이 나타났고 한편으로는 연쇄자살의 드라마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운동을 하다 목숨을 잃은 모든 이를 '열사'로 만드는 괴상한 문화가 확산되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굳이 안 죽어도 될 사람이 죽었을 경우에는 그 이를 열사로 만들어 기리는 것보다는 본의 아니게 열사가 되는 사람이 없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이 정상이라며, '대의'라는 괴물은 개인생명의 소중함을 챙겨주기 보다는 그것을 먹고 자라기를 바라는 법." 이라고 강조한다.

이와 함께 투쟁열사들이 그들의 몸을 바쳐 지키려 했던 '거대담론'들이 요즘 대학생들의 관심 밖으로 멀어진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대중적 감수성의 탄생>의 저자 강심호 씨는 "90년대 초반 동구권 붕괴라는 사건은 절대화된 이념을 의지하고 신념처럼 간직했던 당시 대학생들에게는 그것을 둘러싸고 있던 신성함을 유행 속에 풍문처럼 사라져 버리게 만들었고, 갑작스런 삶의 기준이나 판단의 척도가 사라져버린 상황 속에서 우리사회의 많은 대학생들이 방황하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념의 불균형과 혼란 상태를 틈타, 90년대 중반이후부터 불야성을 이룬 자본주의는 독주하게 되었고 이는 '신자유주의'로 변모해, 좋은 직장과 높은 지위 그리고 마술사와 같이 모든 것을 얻게 해주는 부와 돈 등을 인생의 행복을 위한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자리잡게 만들었으며, 학생들에게 끊임없는 경쟁과 자본논리가 주입된 결과 학생들은 점차 '현실 순응적'으로 길들여지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 '열사문화'는 건전한 비판문화가 캠퍼스 내에서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학생들에게 이를 자신의 삶 속으로 옮길 수 있게 하는 ‘생산적인 문화’로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 손기영
하지만 열사문화의 단면과 경제적 자유에 집착한 나머지, 이러한 현상들이 그저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대학'이 갖는 특수성을 무시할 수가 없다. 물론 도서관에 앉아 좋은 학점을 위해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고,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취업준비에 매진하는 등 자기개발에 노력하는 것이 결코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는 그의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대학은 사회비판 담론의 산실이어야 하며,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비판과 저항 그리고 대안담론을 담는 창조적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우리사회의 문제에 대해 제 목소리를 가질 수 있어야 하며, 이런 비판정신을 통해 어떤 부당함에 대해서도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야 말로 대학이 갖는 '진리'와 '상아탑 정신' 이라고 말할 수 있다.

비유컨데 '담론문화'는 건전한 비판정신의 함양을 위한 '교양강의'로 볼 수 있다. 교양강의는 당장 내게 습득되는 전문지식은 아니지만, 앞으로의 전공과정 혹은 사회생활을 위한 기본적인 마인드와 지식의 밑거름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담론문화 지켜가는 '열사정신의 계승' 역시 지난 운동권 문화의 퇴물로 취급하기 보다는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통해, 건전한 비판문화가 캠퍼스 내에서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학생들에게 이를 자신의 삶 속으로 옮길 수 있게 하는 '생산적인 문화'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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