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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의원의 원내 진출로 큰 기대 속에 시작됐던 17대 국회도 어느덧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장향숙(열린우리당)·정화원(한나라당) 의원의 등원으로 장애인용 화장실이 생기고 점자명함 사용이 확대되는 등 국회 내에는 가시적인 변화가 있었다.

문제는 그러한 변화가 국회 밖에서도 제대로 이뤄졌는가다. 장애인 문제의 현장에서 활동하는 네명의 전문가와 함께 17대 국회의 장애인 정책 및 인식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았다.


- 진행·정리: 송민성 <여의도통신> 기자
- 참석자: 고관철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상임대표, 박수경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소장, 박영희 장애여성 공감 전 대표, 소장섭 장애인신문 <에이블뉴스> 기자
(이하 직함생략)


▲ 4월 장애인의 달을 맞이하여 17대 국회의 장애인 정책에 대한 좌담회가 28일 국회 의원회관 최순영의원실에서 열렸다. 오른쪽부터 시계반대방향으로 박영희 장애여성 공감 전 대표, 소장섭 <에이블뉴스> 기자, 박수경 장애인권포럼 소장, 고관철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상임대표, 송민성 <여의도통신> 기자.
ⓒ 여의도통신 한승호
▲ 고관철 상임대표
ⓒ 여의도통신 한승호
송민성 "장애인 현장에서 17대 국회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지 먼저 총평부터 해보자."

박수경 "두 의원의 국회 입성으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관련 논의가 활발해졌다. 두 의원의 활동이 다른 의원들에게 자극제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2005, 2006년 장애인정책 모니터 결과 본회의나 상임위에서 이전과 비교해 한층 깊이있는 논의가 진행됐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같은 논의가 두 의원에 편중되어 이뤄진다는 점이다."

박영희 "두 의원에게 지나치게 대표성을 부여한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의원을 만나 장애인 정책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면 '우리 당에는 누가 계시니 그 분이 알아서 잘 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장애인 문제는 의원 한두 명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당내에서 논의되고 합의돼야 하는데 모든 장애인 문제를 개별 의원에게 떠밀어버린다.

각 당이 구색맞추기식으로 장애인 의원을 데리고 왔다는 생각마저 든다. 장애인 의원 하나 있다고 당 전체가 장애인에 대한 고민과 인식수준이 높은 것처럼 보여지는 건 경계해야 한다."

소장섭 "초기에는 더욱 편중 현상이 심했다. 갈수록 완화됐다. 장애인 문제는 전 생애 모든 영역에 걸쳐 일어난다. 보건복지위 의원 두 명으로는 역부족이다. 최순영·현애자 등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활동도 주목할 만하다.

결과만 놓고 보면 아직도 부족하다. 민주노동당 또는 장애인 의원 모두가 소수이다 보니 법률 제·개정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초선 의원이라 정치력을 발휘하는 단계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17대에서도 많은 법안이 발의됐지만 통과된 법은 손에 꼽을 정도다. 법은 발의에서 끝나선 안된다. 후속 작업이 더 중요하다."

고관철 "두 장애인 의원은 4년 내내 보건복지위에 있다. 장애인 문제는 보건복지 분야에 제한돼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장애는 복지의 대상이라는 편견에서 한발도 더 나가지 못했다. 장애인 관련 문제는 주택이든 교통이든 다 보건복지위로 간다. 지금 거론된 두 의원이나 민주노동당 의원들도 장애인을 주체로서 인식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도와줘야 할 대상으로 보고 건수 올리기식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또 두 의원이 당론에 묶여있다 보니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두터운 벽 속에서 120% 역량을 발휘했다고 평가하지만 현재 정치구조가 워낙 답답해서(한숨). 모르긴 몰라도 '뽑아주면 됐지 왜 저렇게 떠드나' 하며 눈총 주는 의원도 꽤 있었을 거다."

소장섭: 장애인 의원이 장애인판에서 대표성을 가진 후보로 컸다기보다는 정치권의 낙점을 받아 들어갔기 때문에 더 한계가 컸다고도 볼 수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자립센터 지원, 성에 안차

송민성 "각론으로 들어가 보자. 17대 국회의 성과라면 우선 지난 6일 통과된 장애인차별금지법(장차법)과 장애인복지법개정안(장복법)을 꼽을 수 있겠다. 박영희 전 대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 공동대표로도 활동했는데. 법은 일단 통과됐지만 과정도 녹록치 않았고, 보완할 부분도 많다는 지적도 있다."

▲ 박영희 전 대표.
ⓒ 여의도통신 한승호
박영희 "사실 성에 안찬다. 요구사항의 절반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독립기구 설치를 주장했는데 인권위 내 장애인차별시정소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으로 대체됐다. 소위원회에서 장애인 차별을 얼마나 구체적이고 충분히 논의할 수 있을지 우려가 크다.

입증책임전환 조항도 빠졌다. 놓치고 싶지 않은 부분이었지만 법을 만들려면 정부와 조율하는 과정에서 타협도 해야 했다. 우리가 그릇이라도 하나 마련해놓자는 생각이 컸다. 당사자의 경험을 제대로 반영한 큰 그릇을 만들고 싶었는데 마음에 안든다. 채워야 할 과제가 많다."

고관철 "장애인복지법 개정은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성과다. 본인과 가족의 의무 조항을 삭제하고, 장애인의 정책 우선참여를 명시한 점은 바람직하다. 장애인 및 가족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조항도 신설했다. 장애인을 복지의 대상에서 주체로 보고 있는 거다. 사소해보여도 이런 조항 하나가 복지와 장애인에 대한 시각을 바꾼다.

아쉬운 점은 자립생활지원센터 예산 동결건이다. 지난해 센터가 20개로 늘었다. 지원 예산이 각 센터당 6000만원 해서 총 6억원이었다. 10개가 늘었으니 예산이 12억원으로 느는 게 상식이다. 의원들 설득한 끝에 보건복지위에서 6억원을 증액하는 쪽으로 결정이 났다.

이게 예결산특위로 넘어가선 6억원 동결로 바뀌었다. 예결위에서 보건복지위 위원 다 내보내고 조정소위 위원들과 기획예산처 공무원끼리 만들어낸 작품이 센터 지원은 그냥 유지하고, 지역복지사업이라고 자기네 지역구 도로 넓히는 예산은 200억원이나 책정했다.

장향숙 의원도 예결위측에 특별히 신경써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아는데 의원들 선거구 챙기는 데는 어쩔 수 없었나보다.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이나 똑같다."

박영희 "장애 문제에 대한 국회 인식이 낮은 건 고질적인 문제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통과 운동할 때 의원들의 반응은 '장애인 위해서 이렇게 예산 많이 드는 법을 만들어야 하냐'였다. 시민의 이동권 문제니 건설교통위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장애인 문제라고 보건복지위로 올라갔다.

장차법도 법률 제정하는 사안이니 법사위로 가야 맞는데 장애인 문제라고 장향숙 의원이 받아서 보건복지위로 가져갔다."

소장섭 "장애인특위가 이렇다 할 활동 없이 끝난 점도 비판해야 한다. 16대 때 특위가 막바지에 구성돼 별로 활동을 못했다. 17대는 선례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일찍 구성했는데도 거의 활동 못했다. 업무보고만 받다 끝났다. 국회에서 전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아 재구성도 안된다."

박수경 "지난해 5월 안마사 위헌 결정에 대한 국회 반응도 실망스러웠다. 다른 장애인도 그렇지만 시각장애인의 취업 소외는 매우 심각하다. 별도의 장비가 없으면 시각장애인은 일반 직장에서 일을 할 수가 없다. 이러한 특수성을 고려해 100년 전부터 안마는 장애인의 고유 영역으로 뒀는데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이 났다. 장애인들이 마포대교에서 고공시위도 하지 않았나? 그런데 국회에선 몇몇 의원들 빼고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었다."

소장섭 "보건복지부가 일찍이 시각장애인의 안마업 독점 규정을 시행규칙에서 법률로 끌어올렸다면 이런 논란도 없었다. 작년 6월 정화원 의원 등이 시각장애인의 안마업 독점을 인정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내서 통과됐지만 이후 정책적 뒷받침이 안됐다. 지금 스포츠마사지, 경락업소 다 불법인데 지방자치단체에서 전혀 단속 안한다. 장애인 문제에 관해선 국회와 정부, 지방자치단체의 손발이 착착 들어맞는다."

국회 안마원 설치 의지 갖고 추진해야

▲ 박수경 소장
ⓒ 여의도통신 한승호
송민성 "안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지난 21일 정화원 의원이 국회 안마원 설치를 제안하면서 논란이 거세다. 언론도 '몸싸움하고 근육 풀려고?'라며 비아냥거린다. 의원들 사이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패널분들은 어떻게 보시나?"

박수경 " 안마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의 문제다. 안마하면 퇴폐영업과 연결해 부정적으로 본다. 요즘은 일반 회사에서도 직원 복지 차원에서 헬스장이나 휴게소를 설치하고, 헬스케어센터를 운영한다. 일하다 몸이 '찌뿌둥'하고 결리면 마사지 받고 와서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거다."

소장섭 "안마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데 국회의원에 대한 시선도 부정적이다. 부정적 이미지 두 개가 오버랩되면서 언론이고, 국민들이고 다 비판하고 나선다. 의원들이 일 안하고 안마받는 거 상상하면 누가 좋아하겠나?

이건 시각장애인 고용 차원에서 생각할 문제다. 시각장애인 고용의 중요성을 알리고, 안마사에 관한 부정적 인식을 환기시키는 차원에서 국회 안마원 설치는 좀 너그럽게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밤에 일하지 말고 낮에 오픈된 공간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보건복지부에서도 안마센터를 10개 시범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국회가 솔선수범해 나선다면 다른 공공기관과 기업에서도 안마원을 만들 거다. 상징적인 효과가 있다고 본다."

박수경 "보건복지부에서 2년 전부터 복지관에 안마원 설립을 지원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도 많은 논의가 있었던 걸로 안다. 복지관 부설 안마원은 가격도 저렴하고, 노인들에게는 할인혜택도 있어 많은 노인들이 이용한다. 안마원 설치는 지역사회 건강 증진과도 연결돼있다. 국회에서 좀더 전향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소장섭 "개인적으로는 의원보다 고생하는 보좌진이 안마 좀 받았으면 한다(웃음). 밤새가며 일하는 보좌진이 얼마나 많나? 복지후생과 건강증진 차원에서 안마원을 설치하면 국회 내 직원들도 장애인 고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을 거다. 사무처에서도 설문조사만 할 게 아니라 의지를 갖고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했으면 한다."

직능대표제 도입, 장애인위원회 예산 할당

송민성 "선거국면에 접어들면 국회도 사실상 의정활동보다는 선거용 정책이나 전략 논의가 중심이 될 거다. 장애인 대책도 마찬가지다. 의원들이 장애인 문제에는 관심이 없어도 장애인의 표는 원하니까(웃음). 현실 개선을 위해 어떤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는가."

고관철 "직능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등록장애인만 200만이다. 전체 장애인이 450만이라고 잡아도 전체 국민의 5%가 넘는다. 2명으로 장애인 여론을 대변하라는 건 말도 안된다. 한 교수님이 450만 장애인 중 10%만 투표를 해도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장애인의 정치 참여를 보장하고 확대할 수 있는 정책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

▲ 소장섭 기자
ⓒ 여의도통신 한승호
소장섭 "장애인 정치인을 키우려는 당과 정치권 전반의 노력이 절실하다. 진정한 장애인의 정치세력화를 위해선 장애인계가 키우고 만들어내는 후보가 들어가야 한다. 각 당에 장애인위원회가 있지만 쓸 수 있는 예산이 하나도 없다. 여성위원회만 해도 정치발전기금의 몇 퍼센트를 할당받는다. 당내 장애인위원회가 상시적으로 돌아가야 장애인의 정치참여 기회도 확대된다. 준비된 장애인 의원을 만들고, 정치가 장애인에게 가까이 다가오려면 그 같은 제도 개선부터 해야 한다."

박영희 "현장에서 활동하다보면 법이 정말 중요하다. 어디 가서 이렇게 해달라고 하면 '관련 법이 있냐'고 물어본다. 법이 없으면 장애인은 삶의 어떤 혜택도 누릴 수 없다. 우린 법이 있어야 사는 사람들이다. 그만큼 장애인에게 중요한 게 법이다.

국회는 국민의 요구를 듣고 국민이 원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장애인도 국민이다. 우리가 힘들게 국회 들어오기 전에 의원이 먼저 장애인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먼저 들으러 와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오지 않나? 기껏해야 한번 가지고 와봐, 내가 들어줄께 하는 식이다. 이런 의원들은 정말 필요 없다.

장애인교육지원법 때문에 만났던 한 의원은 '장애인이 이렇게 교육을 못받는다'고 하자 '우리나라가 의무교육인데 왜 교육을 못받냐'고 묻더라. 이런 사람을 만나면 숨이 턱 막힌다. 이런 국회에서 어떤 법이 만들어지겠나 싶다. 장애인이 왜 교육받지 못하고, 이동하지 못하는지 의원들이 먼저 알고 고민해야 한다.

알고 있다고 별반 다르지도 않다. 이익관계 생기면 늘 제일 먼저 등 돌리는 게 의원들이다. 지역에서 장애인복지관, 재활원 들어서면 땅값 떨어진다고 싫어하는데 의원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인식을 바꾸는 중요한 방법이 법률이고, 법률의 핵심은 예산이다. 이게 다 연결돼있어서 의원과 당에서 제대로 인식하지 않으면 어느 것 하나 안된다. 아무리 장애인 당사자의 경험을 모아 법안을 제안해도 얼마나 가위질 당할까 생각하면 무력감부터 든다.

장애인에 관한 기본 소양교육부터 시키고 장애인 정치인을 키우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국회'는 불가능하다."

박수경 "노령화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노인문제와 장애는 불가분이다. 나이 들면서 질병을 얻어 장애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둘을 같이 결합시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노령화에 대한 국가적 대책이 쏟아지는 것에 비해 장애인 문제는 너무 소외돼있다. 여전히 너희들의 문제로 취급된다. 국회에서부터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기준을 가져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입법전문 정치주간지 여의도통신 5호에 게제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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