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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보름 동안, 한국 사회는 그야말로 한미FTA라는 거대한 녀석과 함께 밥을 먹고, 차를 타고, 이부자리까지 했다. 물론 여전히 이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 분들도 있다. 그렇지만 모 언론에서 제3의 개항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한국사회는 거대한 한미FTA 파도에 크게 휩쓸려 왔고, 앞으로는 더욱더 크게 휩쓸려 갈 전망이다.

필자가 한미FTA 타결 이전에 타결 반대 유인물을 시민들에게 배부하면서 현장에서 느낀 것은 작년에 비해 많은 이들이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한국사회의 주요한 의제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인데, 매우 안타깝게도 노무현 정권은 국민과 국회의 의사 수렴 과정을 배제한 채 결국 졸속으로 처리하고 말았다.

지난 2일, 한미FTA가 극적(?)으로 타결됐다. 정말 극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계속해서 협상 기한이 연장되었고, 한 국가의 경제활동에 매우 큰 영향력을 펼치는 협상이 마치 시청률이 낮은 어느 한 드라마가 흐름도 고려치 않고 갑작스럽게 종영하듯이 졸속으로 처리되고 말았다. 우리의 한 편에서는 세계 최대 경제 강국과의 자유협정을 맺었다며 기뻐하기도 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독소조항 등 우리에게 불리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은 망국적 결과라고도 외치고 있다.

갑작스럽게 종영된 드라마 같은 한미FTA 협상

한미FTA 타결 이후 곳곳에서 이해득실을 따지고, 향후 비준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더불어 정치, 경제, 시민사회, 학계 등의 다양한 입장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필자는 미국이 개성공단 등 여러 북한지역 상품을 과연 한국산으로 인정할 수 있겠느냐는 데 의문을 가지고 있다.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한반도역외가공지역위원회'에서 일정 기준 하에 역외가공지역(Outward Processing Zone, OPZ)을 지정하고, 개성공단 등 여타 북한지역의 제품에 한국산과 동일한 특혜관세를 부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정 기준으로는 한반도 비핵화 진전, 역외가공지역 지정이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 역외가공지역 내 일반적인 환경 기준, 근로 기준·관행, 임금, 경영·관리 관행 등을 언급하고 있다.

한반도역외가공지역위원회는 한미 양국 공무원으로 구성해 협정 발효 1년 후 개최하고, OPZ 지리적 구역 지정, OPZ 지정기준의 충족여부의 판정, OPZ 생산품이 특혜관세를 받기 위한 요건 마련, OPZ 총 투입가치의 비율을 조정하는 기능을 할 예정이다.

한 당사국에서 원자재(부품)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제3국으로 수출하여 추가공정을 거친 후, 가공물품들을 당사국으로 재수입하는 생산방식을 역외가공이라 하고, 이 역외가공을 인정받은 지역을 역외가공지역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북한지역 상품이 한국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말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먼저, 역외가공지역 지정을 위한 일정 기준부터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비핵화 진전과 관련, 지난 2002년부터 부시 정권은 북한으로부터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CVID) 원칙을 고수해 왔다. 또 인권, 마약, 위조지폐 등의 문제를 언급하며 더욱더 북한을 고립화시켜왔던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인지 의문스럽다. 더구나 근로에 관련된 환경, 임금, 관리 등의 기준은 ILO의 기준 등을 의미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북한체제가 이러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역외가공지역 지정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둘째, 미국은 개성공단 원산지 인정을 정치적으로도 접근할 것이다. 즉 지금처럼 계속해서 경제봉쇄정책을 펼 것이며, 적성국 교역금지법을 적용할 것이다. 어느 한 방송토론회에서 한나라당 의원, 그리고 모 대학교 통상대학원장조차도 미국은 개성공단 등 북한의 외화량 증가를 안보 측면에서 경계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개성공단의 원산지 인정의 실현가능성은 불확실하다고 했다.

결국 이것은 한미FTA의 경제적 측면을 벗어난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질서와 관련된 중요한 문제인 만큼 미국은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우리는 제네바 합의, 9·19 공동성명 이행을 깨뜨린 미국의 행동을 경험해 왔다.

명문화된 합의도 쉽게 깼던 미국

셋째, 역외가공지역 상품의 한국산 인정 문제다. 작년부터 총 여덟 차례의 실무협상 및 한 차례의 통상장관회담을 통해 한미FTA 협상이 타결되었는데, 실제로 미국 측은 여덟 차례의 협상까지 개성공단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단지 최종 고위급협상에서 일정한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는 '역외가공지역'이라는 개념을 영화의 '카메오'와 같이 깜짝 등장시켰을 뿐이다. 또 현재 협정문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금까지의 정부 발표를 살펴보면 협정 합의문에 '개성공단'이 정식으로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현재 한국과 미국의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입장이 너무 다르다. 미국 입장은 이번 협정은 개성에서 생산된 제품을 포함하지 않으며, 협정에서 개성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는 입장이어서 한국 정부의 입장과는 대조적이다.

통일부에서 4월 10일에 발표한 개성공단 관련 공식입장을 살펴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내용을 그대로 옮겨 쓰자면 "미국 측 일부 인사들이 한미FTA 협정문상 개성공단제품에 대해 특례원산지를 인정한다는 명시적 문구가 없음을 이유로 소극적인 언급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 아래에 "미국 측도 역외가공지역이 개성공단을 전제로 한 것임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함"이라는 안타깝기 그지없는 간단한 서술이 전부다.

이제 한미FTA 발효까지는 국회 비준까지의 중요한 일정을 남겨두고 있다. 벌써부터 많은 곳에서 사회적 갈등, 충돌이 일어나고 있어 우리 시대의 아픈 자화상을 그려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내용들이 제대로 밝혀지고, 그리고 그 내용들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입장이 올바르게 반영될 수 있는 사회적 조정시스템이 갖춰지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하루 빨리 협정문을 공개하고, 그 협정문과 관련된 이면합의, 장외협상 등의 내용들을 샅샅이 밝혀야 할 것이다. 더불어 국회, 시민사회, 학계, 재계 등 다양한 진영에서도 한미FTA 발효로 가져오는 한국사회의 그늘을 제대로 직시하고, 비준을 저지시키기 위한 행동, 목소리를 내야만 할 것이다.

지금은 공개하고 논의할 때

동상이몽(同床異夢), 아전인수(我田引水) 등 어렸을 때 배웠던 한자 숙어들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나 혼자 만의 생각인가.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벌써 많은 곳에서 이번 한미FTA 협정에 대해 많은 의문점을 갖고 있고, 그 속에 숨어있는 독소조항 등의 이면합의를 우려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정부의 개성공단 원산지 인정 언급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결국 '아전인수'식 정부의 꿈은 '동상이몽'으로 끝나지는 않을까. 안타까운 마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현정씨는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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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대는 1999년 7월 2일 창립이후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국내외 인권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인권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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