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우마야드 모스크 전경
ⓒ 이승철
점심을 먹고 우마야드 모스크로 가는 골목길은 아랍 특유의 색채가 진한 기념품 상가였다. 그러나 상가 거리의 가게를 찾는 사람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고 사원이 가까워지자 골목을 가득 메운 사람들 때문에 걷기도 힘들 지경이 되었다.

"미아가 되지 않으려면 일행들 떨어지지 말고 정신 차려야 되겠는 걸."

아차! 하면 그야말로 이국의 대도시에서 미아가 될 판국이었다. 많은 사람들 사이를 어렵게 뚫고 사원 앞 광장에 이르니 널따란 광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광장 건너편은 이 도시에서 가장 크다는 하미디아 시장이다. 시장 입구 역시 몰려든 사람들로 혼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모스크의 정문은 안으로 들어가려고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아우성이었다. 문을 지키는 사람들이 안간힘을 쓰며 지키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은 이슬람교도들이거나 순례자 아니면 관광객들일 것이다. 그런데 왜 몰려든 사람들을 그냥 들여보내지 않고 가로 막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기를 쓰고 들어가려고 하는 이 사원이 바로 유서 깊은 고도 다마스커스의 구시가지 중심부에 자리 잡은 그 유명한 우마야드 모스크였다. 이 모스크는 이슬람 세계에서는 네 번째로 신성시 되는 회교사원으로, 서기 705년에 우마이야제국의 칼리파 왈리드 왕이 세운 대표적 건축물이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려고 아우성치는 중에서 다행히 우리 일행들에게는 특별히 먼저 들어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비좁은 문을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서니 길쭉한 사각형의 화려한 대리석 광장이 나타났다. 그런데 여성들은 그냥 들어갈 수 없다고 제지를 한다.

▲ 모스크 앞에 모여든 인파
ⓒ 이승철

▲ 모스크 안 대리석 광장
ⓒ 이승철
"저희들은 저쪽 방으로 따라오라는데요."

모스크 측의 안내를 받아 근처에 있는 방에 들어갔다가 나온 일행 여성들은 모두 비옷처럼 머리까지 뒤집어쓰는 옷을 하나씩 걸치고 나온다. 역시 모스크에서도 여성들은 특별한 대우(?)를 하는 것 같았다.

모스크 안뜰은 기다란 시각형의 광장이었는데 바닥은 대리석을 깔아서 번쩍번쩍 빛나는 모습이 장관이다. 드디어 실내로 들어갈 차례가 되었다. 모두들 신발을 벗어 손에 들고 남성들도 머리에 쓴 모자를 벗었다.

"우와! 대단하다, 이렇게 넓을 수가 있나?"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 버금간다는 크기의 모스크 실내로 들어서며 모두들 엄청난 규모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바닥에는 카펫이 깔려 있었지만 깔끔한 느낌이 아니어서 선뜻 앉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 우마야드 모스크는 규모면에서도 아랍제국의 많은 사원들 가운데 대 사원으로 꼽힐 뿐만 아니라 건축술에서도 모자이크 예술의 백미로 꼽히는 사원이다.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크고, 벽장식이 화려한 이 건물의 내부는 동서의 길이만도 130여 미터나 되어 반대편 끝이 아스라해 보였다.

유럽의 어느 여행가는 이 사원을 둘러 보고난 후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섬세하며 우아하고 완벽한 사원"이라고 칭송을 했다 한다. 사원 안에는 비잔틴 제국의 황제가 칼리파 왈리드에게 공장 1만 2천명을 보내 이 사원을 개축하게 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데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다.

▲ 모스크 내부 풍경
ⓒ 이승철

▲ 모스크 안의 여성들의 자리
ⓒ 이승철
그런데 사원 안에는 이상하리만큼 사람들이 적었다. 밖에서는 들어오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던데 비하면 너무나 조용한 모습이었다. 어마어마하게 넓고 큰 사원 안에는 겨우 100여 명의 여성들과 수십 명의 남성들이 서성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중에서도 엎드려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의 사람들뿐이었다.

"이 모스크 역시 오랜 역사만큼이나 사연도 많은 곳입니다."

아주 오랜 옛날 이곳은 본래 원주민인 아랍인들이 하다드(비와 땅을 주관하는 신)를 모신 신전이었었다. 그러던 것이 제정로마 시대에는 주피터 신전이 되었고, 다시 비잔틴 시대에는 세례요한 교회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다시 이슬람세력이 이 지역을 장악하면서 우마야드 모스크로 탈바꿈을 한 것이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같은 장소에 아랍의 신과 기독교, 그리고 다시 이슬람 신전으로 바뀌는 중층적인 다종교적 성역으로 바뀐 것이다.

"저쪽으로 가시죠, 헤롯왕에게 참수당한 세례 요한의 머리가 안치된 무덤이자 교회가 저쪽에 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회교사원 안에 어떻게 기독교 교회가 있단 말인가. 모두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가이드를 쳐다본다.

"회교사원 안에 기독교 교회가 있다고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누군가 질문을 던졌지만 가이드는 말없이 웃으며 앞장을 선다. 가이드를 따라 100여 미터를 걸어가자 역시 실내에 돔형의 작은 건물이 나타났다.

"이 건물 안에 세례요한의 머리가 모셔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가 바로 비잔틴 시대의 세례요한교회라고 합니다."

▲ 기도하는 여성들
ⓒ 이승철

▲ 모스크 안의 남성들의 자리
ⓒ 이승철
우리들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세례요한교회를 들여다보다가 돌아서니 몇 사람이 머리를 조아리며 기도하는 모습이 보인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비잔틴 시대의 기독교 교회가 아직도 회교사원 안에 버젓이 보존되어 있다니.

더구나 이곳을 이슬람교도들이 경배를 한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같은 이슬람교도들이면서도 시아파와 수니파가 목숨 걸고 싸우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같은 일은 이방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더욱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슬람교도들간의 파벌과 갈등도 사실은 이 다마스커스의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이 고대도시 다마스커스는 이슬람을 세계제국으로 만든 7~8세기에 우마이야(옴미아드) 왕조와 한 몸이나 다름없는 운명 공동체였다. 지리적으로 실크로드의 교차로에 자리 잡은 덕분에 이 도시는 이미 제정로마시대부터 번영했던 도시였다.

더구나 우마이야왕조 시대에 이르러 아랍제국의 수도가 됨으로써 실크로드는 물론 그 시대 아랍세계의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지역에 번영을 안겨준 우마이야 왕조는 원래 아라비아의 메카에 거주하던 크라이슈 부족이었던 상인 가문이었다. 그런데 일련의 군사적인 행동으로 마호메트 가문에서 정권을 빼앗은 것이다.

당시 시리아지역을 다스리던 장군이었던 크라이슈 가문의 실력자 무아위야가 서기 656~661년에 이슬람 공동체에서 벌어진 왕위 쟁탈전에서 마호메트의 인척 출신인 4대 칼리프 알리의 권좌를 빼앗고 자신이 왕위에 올랐다. 이 왕조가 바로 100여 년간 다마스커스에 번영을 안겨준 우마이야왕조다.

▲ 모스크 안에 보존된 요한의 머리가 안치된 세례요한교회
ⓒ 이승철

▲ 모스크 내부 천정 모습
ⓒ 이승철
"그럼 우리식으로 말하면 역성혁명인 셈이네요."

그런 셈이었다. 왕권을 잡은 후 100여 년 동안 번영을 누리며 다마스커스에 영광을 안겨주었던 우마이야 왕조는 이슬람종교 분열의 서막이었다. 이슬람의 정통성을 훼손한 이 왕권의 찬탈은 이른바 이슬람 역사에서 수니파와 시아파로 갈리는 종파의 분열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슬람의 창시자 마호메트와 그의 일족으로 이어지던 칼리프의 신성한 왕통과 종통을 가로챈 우마이야 왕조에 대한 정치적인 인정 여부를 놓고 세력이 갈린 것이다. 우마이야 왕조를 인정하자는 수니파와 거부해야 한다는 시아파 세력으로 완전히 분열 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종파의 대립이라는 것이 정말 대단한 것이네요. 자신들의 모스크에 다른 종교의 위인을 모시고 경배를 드리면서도 같은 종교 내부의 분열은 서로를 저렇게 용납하지 않고 있으니…."

그게 어디 꼭 이슬람종교만의 문제이겠는가. 비슷한 사례는 다른 종교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모스크 안이 왜 이렇게 썰렁하지?"

우리들이 모스크의 내부를 두루 둘러보고 나오는 동안에도 사원안의 분위기는 여전히 썰렁할 뿐이었다. 남성과 여성의 자리가 구분된 넓은 사원은 앉거나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들 보다는 서성이거나 오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그래도 이곳은 무슬림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 곳입니다. 기도 점수를 따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이슬람교도들은 생애 얼마나 많은 점수를 얻느냐에 상당한 의미를 둔다고 한다. 그런데 집에서 기도하면 1점을 얻는데 모스크에서 기도하면 20점을 얻고, 메카성지순례를 하면 1만점을 얻는다는 것이었다. 이들에게 모스크와 메카성지의 비중이 얼마나 큰 것인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 모스크 종탑
ⓒ 이승철
우리들의 문밖으로 나오는 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거나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이방인인 우리들을 매우 정다운 눈으로 바라본다. 특히 아이들은 장난스럽게 어디서 왔느냐고 묻기도 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꼬레아! 꼬레아!" 하면서 재미있다고 깔깔거리는 모습이 천진스럽고 귀여운 모습이다. 우리 일행들은 왁자지껄 소란한 그들을 뒤로하고 다음 코스인 하마디아 시장으로 향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월22일부터 2주간 북아프리카 이집트 남부 나일강 중류의 룩소르에서 중동의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까지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바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자.

이 기자의 최신기사100白, BACK, #100에 담긴 의미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