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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바그다드가 함락된 지 4주년이 되는 9일 이라크에서는 시아파가 주도한 대규모 반미시위가 열렸다. 이날 시위는 시아파 종교ㆍ정치지도자인 무크타다 알-사드르 진영에서 제안하고, 이에 호응하여 이라크 국민들이 시아파 성지인 나자프로 모여들어 열린 것이다.

지난달 30일 무크타다 알-사드르는 금요예배에 맞추어 발표한 성명에서 점령군을 향해 "우리 땅에서 떠나라"고 거듭 요구하며 4월 9일 대규모 반미시위 개최를 선언했다.

AP통신 등이 보도한 성명서 내용을 보면 사드르는 "나는 점령자(미국)가 우리 땅에서 떠날 것을 다시 한 번 요구한다. 점령군이 떠나야 이라크가 안정되며 이슬람과 평화가 승리하고 테러리즘과 이교도가 패배하게 된다"고 미군철수를 요구했다.

그는 폭력사태가 증가하고, 공공서비스가 정상화되지 않으며, 종파 갈등이 일어나는 원인이 바로 이라크에 미군이 주둔하기 때문이라면서 이라크 민중들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이라크의 억눌린 민중들이여, 점령과 파괴, 테러를 거부하는 이라크의 목소리를 전 세계가 들을 수 있도록 다음달 9일 반미집회에 참여하라."

성명서에는 4월 9일 반미집회 참여와 함께 이라크 국기를 게양하자는 구체적인 지침도 포함되어 있었다. 성명은 "집집마다, 그리고 아파트 건물과 관공서 건물에서도 이라크 국기가 휘날리게 하라"면서 "이라크의 주권과 독립을 보여 주고, 사랑하는 우리의 조국을 점령하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외국의 깃발을 거부한다는 것을 보여 주자. 그들이 우리 땅을 떠날 때까지 깃발을 내리지 말아라"고 촉구했다.

폭력사태의 원인은 점령군, 이라크 군경에게도 단결 촉구

성명이 발표된 3월 30일이 시아파 지역에 대한 연쇄 자살폭탄공격으로 주민 180여명이 사망한 다음 날이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라크에서 종파 갈등이 커져 간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대표적인 시아파 지도자인 알-사드르가 폭력사태의 원인을 미국 정부에 돌리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4월 6일부터 미군의 지원 하에 이라크 방위군이 디와니야에서 대규모 저항세력 소탕작전을 벌이자 알 사드르는 8일 다시 성명을 발표하여 사드르 측 민병대인 메흐디군과 이라크 방위군 간의 교전 중단을 당부했다. 이 성명은 메흐디군에 미군을 몰아내기 위한 노력을 더욱 강화할 것을 촉구하고, 이라크 군경에게는 적들에게 끌려 다니지 말고 '최대의 적' 미국과의 투쟁에 동참하라고 요구했다.

그 동안 알 사드르는 점령군 철수를 최우선 과제로 놓고 이라크 민중이 단결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그의 견해는 8일 발표한 성명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에 집약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라크는 충분히 피를 흘렸다. 가장 큰 범죄자인 미국이 이끄는 점령군이 직접적으로 혹은 하수인을 동원하여 간접적으로 이라크에 증오의 씨앗을 뿌리려 하고 있다."

따라서, 4월 9일 대규모 반미시위는 의례적인 행사나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이러한 요구에 이라크 시아파 민중이 열렬히 호응해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라크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유혈사태에는 혼란스러운 면도 있고 특정 종파를 겨냥하는 것도 있지만 민중들의 본질적인 분노는 점령군을 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4월 9일을 앞두고 분위기가 고조되자 이에 놀란 미군과 이라크 정부는 9일 새벽부터 수도 바그다드에 24시간 동안 차량 통행금지를 선포했다. 나자프 시에서는 외부 차량 진입을 막았지만 버스에 나누어 타고 나자프로 밀려드는 시위대를 막지는 못했다. 참가자 숫자는 집계 주체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는데, 수만 명이라는 보도가 가장 많았다. AP통신에 의하면 나자프 경찰서장 압둘 케림 알 마야디는 시위 참가자가 60만 명에 이르렀다고 추산했다.

행렬에서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이라크 국기였다. 참가자들은 저마다 이라크 국기를 손에 들고 흔들며 나자프에서 쿠파까지 행진했다. 국기를 온 몸에 두르거나 대형 국기를 들고 행진하는 사람도 있었다. 참가자들은 점령군에 대한 분노의 표시로 성조기를 찢고, 발로 밟고, 불태우기도 했다.

이날 시위는 시아파만의 행사로 끝나지 않았다. 몇몇 수니파 종교단체들이 행렬에 합류하여 단결의 기운을 과시한 것이다. AFP통신은 유력 수니파 정치단체 이라크이슬람당 소속인 압둘 카디르 알 다임이 "이 시위는 모든 이라크인들이 점령을 끝내자는 하나의 요구를 놓고 단결하자는 화해의 메시지이다"라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한편 AP통신은 제복을 입은 이라크 군인들도 일부 행렬에 참가했다고 보도했다.

2007년 4월 9일. 이라크는 아직 주권을 가진 독립국이 아니다. 그러나 외세의 점령을 끝내려는 외침소리가 커지는 만큼 침략군의 패배가 멀지 않았다 하겠다.

덧붙이는 글 | 조장원 기자는 <파병철회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파병철회네트워크>와 네이버, 민중의 소리 블로그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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