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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봉 정상 부근에서 바라본 갑사.
연천봉 정상 부근에서 바라본 갑사. ⓒ 김유자
산 위에 서면 승속(僧俗)도 뒤바뀌는가

연천봉 정상(738m) 부근에서 갑사를 내려다 봅니다. 아득하긴 하지만 크고 작은 전각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여기에선 연천봉이 도량이고 저 아래 갑사가 세속인 듯합니다. 모여 살면 속세가 되고 조금 동떨어져 살면 출세간이 되는 게 아닌지요?

출세간에서 내려와 속세를 향해서 내려갑니다. 고개 마루 이정표는 갑사까지의 거리를 2.5km라고 알려 줍니다. 여기저기 피어난 연분홍 진달래꽃이 속세로의 귀환을 축하해주는 듯 합니다.

봉우리를 내려와서 거의 평지나 다름없는 오솔길을 바람만 바람만 걸어갑니다. 눈 앞에 대자암을 알리는 표지석이 나타납니다. 수행 중이니 일반인의 출입을 금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곳이 작가 송기원이 한때 1년을 수행했다는 토굴이 있던 곳입니다. 송기원은 책 <내 마음에 남은 절> 가운데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바깥 세상의 한 줄기 햇빛은 물론 한 가닥 바람 소리며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깊은 토굴속에서 나는 다만 텅 빈 공간만으로 한 해를 보냈다. 그런 어느 날 나는 마침내 텅 빈 공간을 가득 채우며 새롭게 생겨난 나를 만날 수가 있었다. 나는 대자암의 대웅전으로 내려와, 거기 연꽃 자세로 앉아 계시는 부처님과 겹쳐 새로운 나를 앉히고 삼배를 드렸다. - '깊은 토굴에서 텅 빈 공간만으로 보낸 한 해' 중

송기원이 한 해를 보냈다는 그 토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슬며시 발동한 속된 호기심이 마음을 달굽니다. 어디 이번 초파일엔 이곳에나 와 볼거나. 문경 봉암사도 초파일에는 산문을 여니 이곳이라고 예외일 것 같지는 않습니다.

승속이 만들어내는 뒷모습의 차이

. 대자암 근처 오솔길에서 스쳐간 스님.
. 대자암 근처 오솔길에서 스쳐간 스님. ⓒ 김유자
이제 갑사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 속세로의 귀환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는 없는 걸까요? 중중모리로 걷던 걸음을 바꾸어서 '세월아, 네월아' 진양조로 걸어갑니다. 저쪽에서 스님 한 분이 걸어 오십니다. 서로 스쳐갈 때 가볍게 합장을 나눕니다. 아마도 저 스님은 대자암 가는 길인 모양입니다.

스치고 나서 뭔가 아쉬움이 남았는지 잠깐 뒤돌아봅니다. 스님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봅니다. 대개 속인들의 뒷모습은 쓸쓸하게 보이는데 수행자의 고독한 뒷모습은 왜 그리 아름답게 보이는 걸까요? 뒷모습 하나로 속인과 수행자가 그렇게 달리 보일 수 있다는 게 신기합니다.

충남도 유형문화재 제106호 대적전과 보물 제257호 부도.
충남도 유형문화재 제106호 대적전과 보물 제257호 부도. ⓒ 김유자

부도 기단부의 사자 조각.
부도 기단부의 사자 조각. ⓒ 김유자
연천봉에서 보면 갑사는 서북쪽으로 확 트인 계곡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깨끗하고 넓은 암반들이 늘어선 계곡을 건너갑니다. 갑사에서 짐을 나르면서 일생을 마친 '철의 노동자' 소의 공덕을 기리는 공우탑을 지나자 금세 원래의 금당지가 있었던 대적전 영역에 닿습니다.

대적전은 언제나 고요에 잠겨 있습니다. 이곳의 주불은 비로자나불이 아니라 정작 고요와 적막이 주불인듯 합니다. 대적전 처마에는 절집에 흔한 풍경조차 달려있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고요의 무게를 배출하는 통로조차 생략해버린 셈입니다. 그래서인지 이곳의 적막은 그 무게가 더욱 막중한 듯이 느껴집니다.

대적전 앞에는 고려시대 것으로 보이는 아담한 부도가 하나 있습니다. 죽음이란 곧 적막이니 이 또한 무게가 솔찬치 않겠는지요? 부도의 아래받침돌에는 사자·구름·용 등을 조각해 넣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사자가 앞발을 들고 입을 벌리며 포효하고 있습니다. 이 부도의 주인은 아마도 저 사자처럼 '참나'를 찾는 일에 용맹정진하다가 입적하신 스님이실 겁니다.

보물제256호 철당간 및 지주.
보물제256호 철당간 및 지주. ⓒ 김유자
부도 뒤에는 꽤 너른 시누대숲이 펼쳐져 있습니다. 시누대숲 사이로 마치 터널처럼 길이 나 있는데 계단으로 된 길을 내려서면 거기 높다란 철당간 지주가 서 있습니다. 절에 행사가 있을 때 들머리에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고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지주라 부릅니다.

네 면에 구름무늬를 새긴 기단 위에다 철당간을 높게 세우고 양 옆에 당간지주를 세웠는데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으로는 유일한 것이라고 합니다.

바람이 부는 날 이곳에 오면 "쏴아 쏴아" 소리를 내며 이리 저리 몸을 뒤척이는 시누대들이 추는 군무가 볼 만합니다. 아니, 군무를 추는 게 아니라 국민체조 중 옆구리 운동을 하고 있는 건가요?

충남도 유형문화재 제95호 갑사 강당.
충남도 유형문화재 제95호 갑사 강당. ⓒ 김유자
아까 갔던 길을 돌아나와 계곡을 건너 갑사 경내로 들어갑니다. 경내에서 처음 만나는 건물이 갑사 강당입니다. 강당은 본래 승려들이 법문을 강론하던 건물이지요. 원래 이 앞에는 해탈문이 있었는데 비좁은 대웅전 앞마당을 넓히기 위해서 해탈문을 없애고 대웅전 마당 안쪽에 있었던 강당을 좀 더 밖으로 옮겼습니다.

그 바람에 건물 일부 축대가 바깥으로 돌출되어 바닥에 기둥을 받쳐 외형상 누각처럼 보이게 되었습니다. 강당 보수 때 발견된 상량문에는 강당이 아니라 갑사의 정문으로 돼 있다고 합니다.

'계룡갑사'라는 현판은 왼쪽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쓴 '정해국추절도사홍재희서'라는 간기가 있어 당시 절도사였던 홍재희가 정해년(1887) 9월에 쓴 것이라는 것이 확인됩니다.

종각 뒤편에 활짝 피어난 벚꽃이 도량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습니다.
종각 뒤편에 활짝 피어난 벚꽃이 도량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습니다. ⓒ 김유자

보물 제478호 갑사 동종의 용뉴.
보물 제478호 갑사 동종의 용뉴. ⓒ 김유자
강당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가서 종각으로 다가갑니다. 종각 뒤쪽으로는 활짝 피어난 벚꽃이 도량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종각의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설마 갑사 동종이 문틈으로 풍겨오는 벚꽃 향기가 성에 차지 않아 벚꽃 향기를 맘껏 맡으려고 문을 열어 놓고 있는 건 아닐테지요?

갑사 동종은 종 꼭대기에는 음통이 없는 조선시대 종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2마리의 용이 고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기분좋게 웃고 있는 듯한 용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이 종은 일제시대 때 헌납이라는 명목으로 공출되었다가 광복 후에야 갑사로 옮겨온 민족과 수난을 같이 한 종이랍니다. 그러니 벚꽃 향기 맡는 그만한 호사 쯤이야 누려도 되지 않겠는지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호사는 제가 누린 것 같습니다. 이번에야 비로소 갑사 동종의 면모를 제대로 구경할 수 있었으니까요.

대웅전과 삼성각에 들린 다음 범종각 앞으로 난 길을 따라가서 표충원, 팔상전 등을 주마간산 격으로 둘러봅니다.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는 신호인가요? 언제 우러났는지 모르지만 마음 속에서 아주 작은 포만감을 느낍니다.

천천히 외숲을 내려갑니다. 오리숲 고목들을 바라보니 몸마다 딱다구리들이 쪼아댄 구멍들이 수두룩합니다. 오늘따라 오리숲 여기저기서 딱따구리들의 날갯짓이 한창입니다. 딱따구리는 벌레를 잡으려고 나무를 쪼기도 하고 새끼를 부화하기 위한 구멍을 만들기 위해서 나무를 쪼아댑니다. 그래서 한자로는 탁목조(啄木鳥)라고도 하지요.

갑사가 자랑하는 아주 특별한 봄 경치

일주문으로 가는 길. 길 오른쪽 녹색 가지를 가진 식물들이 황매화입니다.
일주문으로 가는 길. 길 오른쪽 녹색 가지를 가진 식물들이 황매화입니다. ⓒ 김유자

노란 색으로 물들일 채비를 하고 있는 황매화.
노란 색으로 물들일 채비를 하고 있는 황매화. ⓒ 김유자
조금 더 길을 내려가자 윤기나는 녹색 줄기가 인상적인 황매화 군락지에 다다릅니다. 예로부터 '봄마곡 추갑사'라 하여 갑사는 가을이 특히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그러나 4월 중순께 갑사를 찾아본 사람은 갑사의 봄도 가을 못지 않게 아름답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오리숲을 온통 노랗게 물들이는 황매화 군락이 보여주는 특별한 아름다움 때문이지요.

매화나무와는 다른 식물이지만 황매화는 꽃의 모양이 매화를 닮았다 하여 노랑매화라는 뜻으로 황매화라고 부르는데 죽도화, 죽단화, 수중화 등 부르는 이름도 많습니다. 꽃잎은 5개인데 노란색으로 핍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보는 황매화는 겹황매화, 겹죽도화라고도 부르는 겹꽃인 죽단화랍니다. 이곳 역시 얼마 전까지 만해도 겹꽃이 주종을 이뤘으나 두 해 전부터 홑꽃 일색이되고 말았답니다. 이제 겹꽃은 황매화 군락에 듬성듬성 섞여있는 정도에 지나지 않다고 하네요.

아무튼 갑사로 오르는 오리숲 진입로 주변은 우리나라 최대 황매화 군락지라는데 그 면적이 무려 1060여 평이나 된다고 합니다. 4월 중순 쯤이면 꽃을 피우는 황매화는 5월 초순까지 오리숲에 머물다 갑니다.

내 그때 다시 오마. 황매화 나무는 내게 언제 다시 올거냐고 묻지도 않는데 혼자서 허튼 맹세를 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떠날 때 쯤이면 생겨나는 이런 자답하는 버릇은 버려야 마땅할 강박관념일까요? 아니면 두고 떠나가는 자가 감추려는 미안함일까요? 일주문을 벗어나 성큼성큼 걸어갑니다. 산은 산이요, 나는 나로다.

덧붙이는 글 | 황매화에 대한 기술은 주로 국립수목원의 국가생물종지식정보 시스템 자료를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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