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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알에서 깨어나와 아직 올챙이 생김새를 갖추지 못한 북방산개구리들.
ⓒ 손상호
두 해 전 가을부터 우리는 춘천에서 개구리 증식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가 일하는 곳 등성이 너머는 찻길이 닿지 않는다. 거기에 외딴 집 한 채가 있다. 사람 말고는 그 집 소나 흑염소 정도나 넘어다닌다고 해야 할까?

내가 그 집에 더러 가는 까닭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 집 앞 층층 논과 습지에 개구리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녀석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내 관심사의 하나이다.

▲ 지난해 소 등에 비료를 싣고 가파른 등성이를 오르던 할아버지.
ⓒ 손상호
그곳에서 개구리들은 올해도 많은 알 덩이를 낳았다. 하지만 지난해 내가 본 것과 견줘보면 아직 멀었다. 특히 논에 물을 대지 않았기 때문에 알 낳을 곳이 그만큼 좁은 편이다. 지난해에 보면 논에 물을 대고 나서 아주 많은 알 덩이들이 새로 생겨난 것을 볼 수 있었다. 올해는 어떻게 될지 사뭇 궁금하던 터여서 어제(9일)도 거기에 갔다.

▲ 몇 집이 살던 마을은 사라지고 오직 한 집만이 남아있다.
ⓒ 손상호
그 집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만 사신다. 주말이나 무슨 집안일이 있을 때 아들들과 그 가족들이 다니는 일이 있지만 그것을 빼면 늘 두 분만 계신다.

며칠 전엔 전혀 등산할 것 같지 않은 차림의 남자들 몇이서 등성이를 넘으려는 듯 보였다. 혹시 그 집에 다녀가려 했던 게 아닌가 싶어서 여쭤보았다.

"그분들 여기 다녀가신 거 아닌가요?"
"그래요."

"땅 파실 건가 봐요?"
"그래요. 그래서 더러 사람들이 다녀가죠. 하지만 길이 없어서 거래는 안 되고 있죠."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방 안에 계시던 할머니께서 모습을 보이셨다. 할쭉한 몸에 핼쑥한 얼굴에 왼쪽을 다치셨다. 할머니는 지난해부터 많이 아프셔서 치료받으러 춘천시내 병원을 몇 차례 다녀오신 바 있다.

"몸은 좀 어떠세요?"
"마음 같지 않네요. 문밖으로 나오다가 넘어져서 이렇게 되었죠. 마음 같아선 걸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해서 다른 이의 도움이 없으면 문밖으로 나오지도 못해요."


내 어머니가 떠올랐다. 얼마 전에 어머니께서도 비슷한 일을 두어 차례 겪은 바 있다. 몸은 할머니만큼 나쁘지 않지만 연세는 할머니보다도 오히려 위이시다. 아버지, 어머니께서도 아파트에서 두 분만 사시는데 다행히 이웃들과 친하게 지내셔서 그럭저럭 잘 지내신다. 아니 그럴 거라고 믿는다.

▲ 지난해 물을 댄 논에 가득찼던 알 덩이.
ⓒ 손상호
지난번에 뵈었을 때 물었던 것을 다시 할아버지께 여쭤보았다.

"논에 물은 언제 대시나요?"
"올핸 농사지을만한 경황이 없어서 안 할까 해요."

"전에도 안 지으신 적이 있나요?"
"올해 처음이에요."


마침내 아버지께서도 하시던 운전 일을 얼마 전에 그만두셨다. 운전하다가 작은 사고가 더러 나고 해서 다시는 운전하지 않는 게 좋다는 판단을 하셨던 것이다. 차도 팔아버리고 아침저녁으로 산에 다니시는 것이 일과다.

▲ 층층 논.
ⓒ 손상호
논이나 둘러보고 간다고 하고서 그 집을 나섰다. 마른 논에선 예상했던 일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주 많은 알 덩이들이 말라죽고 있었다. 알에서 막 깨어난 것들도 물기 없는 곳에서 오글거리고 있었고 그것들 역시 말라버린 것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이런 일이 개구리들에게 별난 일은 아니다.

지난해에도 많은 죽음을 그곳에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을 댄 논에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논에 물을 대는 일에 그곳 개구리들이 얼마나 살아남느냐가 달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 물길에 있던 도롱뇽 알 덩이들.
ⓒ 손상호
▲ 이미 많은 개구리 알 덩이들이 말라붙어 있었다.
ⓒ 손상호
오직 한 집만이 사는 그곳에서 층층 논에 물이 차지 않는다면 개구리들은 알 낳을 곳을 더는 찾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장 개구리들에게 크나큰 재앙으로 다가올는지 모른다. 어제 나는 그곳 개구리들의 삶이, 아픈 할머니와 뗄 수 없음을 발견했다.

▲ 논에 물을 대지 않으면 이 알 덩이들은 모두 말라 죽을 것이다.
ⓒ 손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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