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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들과 주민이 '함께 하는 축제'가 강원도 인제군 덕적리에서 열렸다. 7일 새벽 6시 30분 서울을 떠나 비포장도로를 따라 강원도 인제군 덕산리에 도착한 일행들은 21명씩 2개조로 나뉘어 농촌활동을 시작했다. '봄 축제'가 시작된 것이다.

작년 수해 때 자원봉사자 600명의 밥을 지어 본 한 주민은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작년에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주민들 스스로 일어날 수 있었다. 이제는 주민들이 품앗이를 통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자원봉사로 참여한 대학생은 "아직도 자원봉사자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오늘 42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수해복구지역에서의 농촌활동을 하는 것은 아주 작은 일인지 모르지만 큰 의미를 부여해 본다. '일손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모습'에서 삶의 맛을 느끼기 때문이다.

▲ 비닐하우스 옆의 들판은 작년 홍수 때 파손되어 비닐하우스가 철거된 공간이다.
ⓒ 박항주
# 풍경 1 : 나눔의 축제

제 1조 21명이 삽으로 30m 정도 되는 고랑을 무릎 깊이로 파놓았다. 여자 자원봉사자 8명도 남자들이 파 놓은 고랑 앞으로 다가간다. 주민과 21명의 자원봉사자들이 강풍으로 삐뚤어진 비닐하우스를 여러 차례 잡아 당겼지만 잘 안 된다.

참가자 일동 : (쇠파이프를 잡고) "하나, 둘, 영차. 하나, 둘, 영차…."
자원봉사자 조장 :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저기가 조금 튀어 나왔어. 삽으로 좀더 파야겠어."
자원봉사자 1 : (삽으로 고랑을 넓힌다)
참가자 일동 : (쇠파이프를 다시 잡는다) "하나, 둘, 영차."
자원봉사자 조장 : "됐어요. 똑바로 됐네요. 자 이제 흙으로 고랑을 덮죠."
주민 : "사람 손이 무섭긴 무섭네. 혼자하면 3일 꼬박 걸릴 일을 2시간도 안돼서 해 버리네."

주민과 자원봉사들이 수리한 이곳은 150평 남 짓 되는 백합 비닐하우스이다. 아주 작은 일처럼 보였던 비닐하우스 기둥을 21명이 달라붙어 2시간만에 원상 복구시켰다. 50-70대 주민들 몇몇이 모여 일할 경우 2-3일 걸릴 일이라고 한다. 중장비를 동원해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수고 다시 지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언 듯 보면 농사짓는 데 별 문제 없어 보이는 곳에서 사람들의 일손을 필요로 하였다. 나눔의 축제가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시베리아 백합'이 일년 동안 만들어내는 수익은 400-500만원 정도이다. 100평되는 비닐하우스 건설비용 500만원, 백합 종자비, 인건비 등 이것저것을 빼면 그리 남지 않는 농사일이다. 비닐하우스 주인아저씨는 물난리에 수 천 만원의 피해를 입었다.

# 풍경 2 : 먹거리 축제

▲ 지난해 수해 당시의 모습
ⓒ 생태지평
자원봉사자들이 김치전과 과자를 안주삼아 막걸리를 나눠먹고 있다. 주말에 농사일 하러 내려와 있는 집주인 대학생 아들이 여자 자원봉사자 틈에 앉아 있다. 시계는 오후 3시 30분을 가리킨다.

여자자원봉사자 : (집주인 아들 무릎을 탁 치며) "저 이래 봬도 동안인데… 알고 보면 부드러운 여자랍니다."
집주인 아들 : (여자자원봉사자를 놀란 표정으로 바라본다)
아주머니 : (김치전을 부치며) "참하게 생기긴 했네…."
아저씨 : (막걸리를 권하며) "그래도 연상에게는 내 아들 못줘."
참가자 일동 : "하하하!"
내레이션 : 매콤한 김치전과 막걸리가 '축제'의 유일한 먹거리. 먹거리 사이로 걸쭉한 음담패설(?)이 오가며 그들만의 '축제'가 무르익는다. 이러 저러한 입담이 오가면서 30분만의 긴 '먹거리 축제'는 끝났다.

2006년 7월 16일, 강원도 인제군 덕적리에는 1시간만에 물난리가 났다. 집중 호우에 의한 산사태 발생과 함께 내려온 토석과 간벌목은 덕적리를 초토화 시켰다. 덕적리와 덕산리에서 6명 사망과 7명 실종 등의 피해를 입었다. 덕적리 주민들은 비를 맞으며 3일 밤낮을 산에서 보내야만 했다.

'50대 청년'인 한 주민은 "지금도 가끔 악몽으로 잠을 설치고 있으며 칠팔 십대의 어르신들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2006년 7월 수해의 흔적이 사라지기까지는 5년은 넘게 걸릴 것이라고 주민들은 이야기한다.

# 풍경 3 : 미래를 심다

▲ 나무를 심는 사람들
ⓒ 박항주
2조 21명이 1조에 비하면 너무나 편안한 노동이라며 대추나무를 심고 있다.

즐봉모 선배 : "야! 야! 나무 죽는다. 돌 좀 골라내라."
즐봉모 후배 : (엄지 손톱만한 돌멩이를 흙 속에서 골라낸다.)
주민 : "그냥 덮어요. 그 정도 돌은 괜찮아요. 지가 알아서 잘 자라요."
즐봉모 후배 : "그것 봐요. 괜찮다고 하잖아요."

지난 수해 때에 2천 그루 중 절반인 1천 그루 대추나무를 잃어버린 50대 초반의 젊은 부부의 근심거리가 사라졌다. 이렇듯 자원봉사자들의 땀방울은 '돈의 문제'를 '살맛나는 마음'으로 바꾸어 갔다.

나무를 심은 일행 중에는 '즐거운 자원봉사자들의 모임'(즐봉모)에 속한 이들이 10여명이나 되었다. 이들은 주부, 학생, 공무원, 공익근무원 등의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남 광주, 평택, 부천, 서울 등의 다양한 지역에서 살고 있다. 다음주 토요일(14일)에는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평택노인요양원에 갈 계획이라고 한다.

내년이 되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대추나무를 정성스럽게 심는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은 미래를 위해 '마음'을 심는 것이었다.

수해복구지역에서 자원봉사도 하고 봄나들이도 하고

작은 축제는 막을 내렸다. 언제 다시 볼지는 모르지만 일손과 마음을 나눈 자원봉사자와 주민들은 서로에게 기쁨이 되었다. 누가 누구에게 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서로서로'에게 희망인 것이다.

이번 자원봉사자를 모은 전국재해구호협회 '구호팀' 이은해 팀장은 "수해가 발생한 당시에 자원봉사자가 집중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일상적인 도움이 필요한 시기에는 자원봉사활동이 둔화된다"며 지속적인 자원봉사 활동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한반도 땅 끝인 진해시에서 봄나들이 벚꽃축제가 열렸다. 그리고 지역에서 각종 봄나들이 축제들이 열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차려진 축제에 가서 축제를 즐긴다. 하지만 한번쯤 자신이 만드는, 아니 서로 만드는 축제에 참여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루는 수해복구지역에서 농촌활동을 하고, 다음날에는 강원도에서 봄나들이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따듯한 봄날, '작은 축제'를 즐기는 새로운 방식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수해복구지역에서 농촌활동을 해보고 싶은 종교·사회단체 등은 전국재해구호협회 ( 02-3272-0123)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개인의 경우 여러 명을 모아서 신청하시면 됩니다. 

* 생태지평 연구소가 '강원도 수해복구 모니터링'을 하면서 수해지역 농촌활동의 필요성을 전국재해구호협회에 제안해서 이번 농촌활동이 진행되었습니다.


태그:#수해복구, #강원도, #자원봉사, #덕적리, #생태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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