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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발기 꽃입니다. 산과 들에 뛰어다니는 노루발처럼 생겼다는 데서 유래한 꽃이지 싶습니다. 예쁘게 피어서 참 좋네요.
노루발기 꽃입니다. 산과 들에 뛰어다니는 노루발처럼 생겼다는 데서 유래한 꽃이지 싶습니다. 예쁘게 피어서 참 좋네요. ⓒ 권성권
부활절을 맞이해 멀리 경기도 곤지암에 살고 있는 교우 한 분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다. 그 분은 매 주일이면 서울 상일동에 위치한 우리교회까지 나오고 있다. 한적한 곳에 살고 있는 그 분에게 주님의 위로라도 건넬 겸 만나러 갔던 것이다. 그런데 웬걸 위로와 격려는 내가 더 받고 돌아왔다.

그 교우는 남편을 여의고 홀로 산 지 10년이 넘었다. 처음엔 전혀 받아들을 수 없어 괴로워했다. 점점 쓸쓸함도 밀려들고 외롭기도 하여 우울증에 빠져들었다. 남편이 곁에 있는 것만 같아 잠도 오지 않았다. 그만큼 심한 불면증으로 고생했던 것이다.

주리에리란 꽃이예요. 집 안에서 성경을 베껴 쓸때 곁에다 두고 있다는데, 꽃은 이토록 멋지지만 줄기에는 가시들이 즐비하게 돋아나 있었어요.
주리에리란 꽃이예요. 집 안에서 성경을 베껴 쓸때 곁에다 두고 있다는데, 꽃은 이토록 멋지지만 줄기에는 가시들이 즐비하게 돋아나 있었어요. ⓒ 권성권
그래서 시작한 것이 있다. 이른바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기록된 성경을 베껴 쓰는 것이었다. 물론 처음엔 무척이나 힘들었다. 60세가 넘는 나이에 그것을 시작하려니 손목 마디마디에 힘이 부쳤던 것이다. 그렇지만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써내려가는 그 글씨와 함께 기운도 어느 정도 되찾게 되었다. 느슨해진 기억력도 조여 맬 수 있게 되었다.

그 일이 집 안에서 시작한 것이라면 집 밖에서 시도한 것이 있다. 이른바 뒤뜰 텃밭에 화초를 심기 시작한 것이 그것이다. 내가 찾아 간 날에도 그 분은 여러 화초를 돌보고 있었다. 봄철이라 그런지 퇴비도 뿌려 놓았다. 나는 그 분을 졸망졸망 뒤따라가며 그곳 둘레에 자라고 있는 많은 화초들의 이름을 알아맞히려 했다. 그렇지만 내 예상과는 다들 빗나가고 말았다.

설중매입니다. 눈꽃 속에서 피어오르는 빨깐 매화꽃이란 이름 뜻이 아닐까 싶네요. 정말 앙증맞도록 예쁜 꽃이예요.
설중매입니다. 눈꽃 속에서 피어오르는 빨깐 매화꽃이란 이름 뜻이 아닐까 싶네요. 정말 앙증맞도록 예쁜 꽃이예요. ⓒ 권성권
거기에는 돌계단 사이에 숨어 있는 돌단풍도 있었고, 노루발처럼 생긴 노루발기, 새색시가 족두리를 쓰고 있는 듯한 모양의 족두리꽃, 복스럽게 생긴 복수초와 앵앵거리고 있는 앵초들, 깜찍한 자두와 분홍빛 설중매, 탐스럽게 피어오르고 있는 자목련과 파릇파릇 잎사귀가 돋아난 해당화, 조그맣게 올라오고 있는 작약과 놀놀하게 피어 오른 개나리, 그리고 새까맣게 타 버린 듯한 가시에 빨간 새싹 하나 피어나는 장미 등 여러 꽃들이 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 밖에도 여러 야생초들을 알려주었는데 도무지 기억할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 산 기슭에 자생하는 야생초만도 헤아릴 수 없이 수두룩하다고 하니 듣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옮겨 심을 계획까지 품고 있다니, 가히 그 분은 젊은 사람 못지않았다.

겨우내 땅 속에 숨어 있다가 봄철이 되니 튀어 오른 야생난이라고 하네요. 시간이 점점 흐르면 저 밀대같은 부위가 쑥쑥 더 올라오겠죠.
겨우내 땅 속에 숨어 있다가 봄철이 되니 튀어 오른 야생난이라고 하네요. 시간이 점점 흐르면 저 밀대같은 부위가 쑥쑥 더 올라오겠죠. ⓒ 권성권
“얘들 좀 보세요.”
“어디요? 땅 밑에서 올라오고 있네요, 그게 뭐예요?”
“야생난인데요. 겨우내 아무 것도 없다가 봄이 되니까 이렇게 올라오잖아요.”
“모르고 지나가면 그냥 밟아버리겠는데요.”
“그쵸. 땅 밑에는 무엇이든 살아있거든요.”
“조심해야겠어요. 살금살금 지나가야 되겠는데요?”
“사람도 다르지 않지요. 보이는 것만을 쫓아 살 때가 많잖아요.”
“…….”
“목사님도 나중에 더 두루 살펴야 할 때가 있을 거예요.”
“고맙습니다. 근데 오늘 뭔가 바뀐 것 같네요. 제가 위로해 드려야 하는데….”
“호호호, 아니에요. 그저 와 준 것만도 고마운 일이죠.”

말라붙고 죽은 듯한 나무가지에서 초록빛 자두잎이 솟아나고 있어요. 귀엽고 깜찍한 자두 잎파리 참 예쁘죠?
말라붙고 죽은 듯한 나무가지에서 초록빛 자두잎이 솟아나고 있어요. 귀엽고 깜찍한 자두 잎파리 참 예쁘죠? ⓒ 권성권
사실 나 같은 젊은이들은 겉으로 피어오른 꽃들을 더 집중해서 본다. 무슨 꽃이 얼마나 예쁘게 피었는지, 어떤 빛깔을 뽐내고 있는지 관심이 쏠리는 까닭이다. 하지만 나이 지긋한 어른들은 속내에 더 중점을 둔다. 보이지는 않지만 땅속에 묻혀 있는 것들에게까지 더 많은 애정을 쏟는 것이 그 까닭이다.

부활절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멀리 곤지암에 살고 있는 그 어른에게 때를 맞춰 위로를 건네려고 했는데, 졸지에 내가 더 큰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 더욱이 뒤뜰 땅속에서부터 자라고 있는 많은 들꽃들로부터 인생의 교훈까지 얻게 되었으니 그지없이 고마울 따름이다.

수많은 가시들 속에서 피어오르는 장미예요. 가지가 하얗게 마른 것 같았지만 저 속에서 빨간 잎이 튀어나오고 있었어요. 생명이란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네요.
수많은 가시들 속에서 피어오르는 장미예요. 가지가 하얗게 마른 것 같았지만 저 속에서 빨간 잎이 튀어나오고 있었어요. 생명이란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네요. ⓒ 권성권
아무쪼록 화려하게 피는 꽃만을 쫓아 살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땅 속의 생명체들에게까지 관심을 기울여야만 할 듯싶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바로 땅 속 보이지 않는 곳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육체의 가시로부터 부활하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부활절을 맞이해 겉으로 드러나는 일보다 오히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 땅의 생명체와 사람들에게까지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하지 않겠나 싶다.

그것이 어쩌면 나이 육십이 넘은 그 분으로부터 듣게 된 부활의 참된 메시지이지 않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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