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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책 표지. ⓒ 도서출판 <산처럼>
우리에게, 아니 한국인에게 절은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 집일까요? 올해 초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면서 사찰 입장료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다툼들을 지켜보면서 저는 속으로 이런 물음을 던져 봤습니다.

절에 들리지도 문화재를 관람하지도 않고 그냥 스쳐갈 건데 문화재 관람료를 물어야 한다면 정말 억울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불교신자가 아니라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왜 사찰 문화재 관람료에 대해서 그토록 발끈할까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여태까지 관람료를 걷기만 했지 사용처를 환하게 밝힌 적 없는 불투명함이 사람들에게 동의를 얻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구구절절 나를 달래주는 절집 이야기

그런 논의와는 별개로 전 개인적으로 누구보다 절집에 가는 걸 좋아합니다. 거기 가면 뭔가 모를 위안이 있고 씻김이 있고 평화가 있기 때문인 듯 합니다.

며칠 전 어느 사진가의 홈페이지에 들렀더니 자신이 글을 쓴 책을 써놨더군요. 책 이름이 <내 마음에 남은 절>이었습니다. 그날 바로 서점으로 가서 책을 샀지요. 책 제목이 주는 은근한 유혹을 뿌리치기가 힘들었거든요.

소설가·시인·화가·사진작가·건축가 등 52명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절과의 인연을 쓴 책 <내 마음에 남은 절>은 그렇게 해서 52채의 절집을 내 마음 속에다 떨어뜨려 놓았습니다.

책에 실린 글들은 단행본으로 묶여 나오기 전에 <법보신문>에 '내 마음에 남은 절'이란 제목으로 연재됐다고 합니다.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절, 지치고 힘들 때 위로가 되었던 절, 스님과의 인연이 각별해서 기억되는 절 등 '아름다움' '위안' '추억' '깨달음' '인연' '스님' '가람' '고졸함' 등 여덟 가지 주제에 따라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52채의 우리나라 절집이 있습니다.

우리 시대에 정신적 자양분을 공급해왔던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절집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발품을 팔아 찾아갔던 절집에서 그들은 무엇을 느꼈으며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까요.

여기서 주저리주저리 다 늘어놓을 수야 없겠지만 '그 분들의 글에 담긴 향기가 이렇더라'는 변죽이라도 울려볼까 합니다.

추억에 사무치고 깨달음에 가슴을 치고

아무래도 사물의 향기를 전하는데는 시인의 글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여기서도 김용택 시인 등 모두 13분의 시인들이 글을 썼지요.

정일근 시인이 "제 몸 속의 모든 뜨거움을 가지 끝으로 보내고 있을" 통도사의 한 겨울 홍매를 그리는가 하면, 안도현 시인은 완주 화암사의 적막을 그리워 합니다. 그런가 하면 시인 문태준은 공양간의 그리운 '맨밥' 냄새를 시로 써서 시장기를 달래기도 했지요.

또 소설가를 빼놓고는 글의 유장함을 말할 수 없겠지요? 강석경 등 여섯분 소설가가의 글도 들어 있습니다.

소설가 한승원은 고향인 장흥 천관사에 얽힌 추억을 말하고 강석경은 지리산 자락 금대암에서의 인상적인 만남을 배경으로 <석양꽃>이란 단편으로 썼던 내력을 풀어 놓습니다. 특히 소설가 신경숙에게 부석사는 사무치게 아름다운 절로 각인된 절입니다.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눈 둘 데가 많은 곳이었다. 그런데도 내게 부석사는 해가 떨어진 겨울날의 아무도 없는 고즈넉한 절로 각인되었다. 그 유명한 무량수전이나 부석보다도 인적이 없는 경내의 그 적막과 어울리게 아무것도 꾸미지 않은 대웅전 앞에 서서 무엇인가를 소원해던 기억도 난다.

되돌아 내려오면서 문득 뒤돌아보았을 때 막 켜지기 시작한 불빛 또한 매우 은은하고 아름다웠다. 우리는 다시 떠난 곳으로 돌아기기 위해 자동차에 오를 때까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에 절 한 채가 들어앉은 순간이기도 했다.

- 신경숙, '불빛들이 막 켜질 즈음 마음속에 절 한 채가' 중에서


그외에도 건축가, 사진작가, 화가 등 각 분야에서 활동하시는 서른 세 분들이 놓치기 아까운 글을 쓰셨습니다. 간송미술관 최완수 선생님은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송광사와의 인연을, 궁중 음식 연구가인 한복려씨는 절 음식으로 맺어진 충북 영동 영국사를 추억합니다.

사진작가 김홍희는 말 없이 감자 두 알과 물 한 바가지를 내밀던 스님을 만나게 됩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곳이 근엄하고 정숙한 것도 좋지만 사람의 진리가 아니면 무엇을 하겠는가" 하는 의문이 들 때쯤 그런 감동적인 장면과 맞닥뜨린 것이지요.

사실 김홍희가 가진 의문은 사람들이 절집에 대해서 갖고 있는 보편적인 의문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절이 아무리 수행공간이라지만 사람 냄새가 풍기기를 원하니까요.

판화가 김영만은 책의 마지막인 8부 <내 마음에 천년을 살아온 절> '우주를 잉태하려면 천년을 누워 있어야 하는가'라는 글에서 화순 운주사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운주사는 계곡 전체가 도량이고 널려있는 돌 절이다. 여기저기 계곡에 누워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눈이 와도 천년의 세월을 쓸쓸히 버텨오면서 우리를 반긴다. 지난 어두운 시절이나 힘들 때 운주사를 찾아가서 민족의 아픔도 노래하고 생명의 춤도 추고 통일 염원도 기리면서 힘을 얻기도 했다."

소박한 절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사진작가 김성철

1963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과 광주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에서 문화재를 공부했습니다.

답사여행의 길잡이>, <한국의 읍성>, <꽃은 져도 향기는 그대로 일세>, <소대헌 호연재 부부의 사대부 한평생>, <내 마음에 남은 절> 등의 책에서 사진 작업을 했으며 현재 도서출판 <두르가>와 사진연구소인 유목민루트를 운영 중입니다. / 김유자
이들이 쓴 글에서 공통적인 점을 찾는다면 화려하고 큰 절집이 아니라 하나같이 소박하고 검소한 절에서 감흥이나 인상적인 느낌을 가졌다는 것일 겁니다. 그러고 보면 절의 크기와 감동은 반비례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라고 왜 마음에 남은 절이 없겠습니까? 저는 몇 년 전 눈보라치는 날에 찾았던 정암사 수마노탑이 떠오릅니다. 탑 지붕 추녀 끝에 달린 풍경들이 일제히 바람에 달그랑거릴 때 마음도 따라서 달랑거리는 듯 했지요.

52채의 절집 중에는 이미 다녀온 절도 없지 않지만 글쓴이와 같은 느낌을 전혀 받지 못한 곳도 있습니다. 같은 곳을 다녀왔는데도 그분이 느낀 것을 왜 저는 느끼지 못 했을까요? 그분이 본 것을 왜 저는 보지 못했을까요?

그래서 이미 다녀온 절이지만 다시 가야할 이유가 생겼고 미처 가지 못한 절은 당연히 가봐야 할 까닭이 생겼습니다. 이제 쉰 두 분이 제 마음 속에다 떨어뜨려 놓고 간 절을 찾아가는 것은 고스란이 제 몫으로 남겨졌습니다. 언젠가 시절 인연이 닿으면 거기 가서 그들처럼 느껴 보리라.

책은 끝까지 친절합합니다. 각 절의 소재지, 창건시기와 창건자, 그리고 역사와 문화, 홈페이지와 전화번호, 지도 등을 부록에 따로 정리해 싣는 등 친절을 베풀고 있지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책 속의 몇몇 글들은 호흡이 너무 짧아 독자가 절에 대한 느낌이나 정서적 감흥을 느끼기도 전에 허무하게 글이 끝나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책이 가진 결정적인 흠결이 될 수는 없겠지요. 독자에게 절집에 갔을 때 어느 부분을 봐야하느냐는 안목을 길러주고 예서 더 나아가 '어떤 절집을 여행처로 삼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암묵적으로 제시하는 길라잡이가 된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절은 우리에게 무엇일까요

다시 글의 첫머리에서 제가 던졌던 물음으로 돌아 갑니다. 한국인에게 절은 무엇일까요.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한 삼국시대 이래 천년을 훌쩍 뛰어넘는 장구한 세월이 흘렀습니다. 절은 우리의 문화재이기는 하되 벌써 낡아버린 관념일 뿐일까요?

대구 달성군 유가면 유가사에 다녀온 바 있는 건축가 승효상은 '도무지 길 같지 않은, 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며'라는 글 속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산신각 옆에 서서 감동하고 있었다. 그래 절로 가는 아름다운 마음이 기껏 대웅전을 참배하는 것으로 끝난다 해서야 어찌 세속의 길과 다를 바가 있을 것인가. 종교가 우리 삶에 대한 성찰이 목표라면 절로 가는 길은 그 종점이 있을 수 없는 게다. 여태 나는 보이는 길만 걸었고 목적지를 가져야만 걸었지 않았을까. 어찌하여 걷는다는 자체를 즐거워하지 않았을까. 나는 감동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보이지 않는 길은 나의 삶에 잊혀지지 않는 길이 되고 말았다.

우리 삶에 대한 성찰이 목표라면 당연히 절로 가는 길은 그 종점이 있을 수 없겠지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나저나 다음에 이 책에 나오는 절집에 가게 되면 저도 그들처럼 느낄 수 있을까요? 아니 그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아주 조그맣지만, 살아있는 그 어떤 느낌을 보듬어 올 수 있을까요? 제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소박한 의구심을 애써 지우면서 그만 여기서 글을 맺습니다.

덧붙이는 글 | 내 마음에 남은 절/강숙경 외 51인 지음, 사진 김성철/도서출판 <산처럼>/ 12,000원/ 2007년 3월 13일


내 마음에 남은 절 - 한국 문화계를 대표하는 52명의 사찰 인연기

강석경 외 51인 지음, 김성철 사진, 산처럼(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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