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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한겨레> 편집국장.
김종구 <한겨레> 편집국장. ⓒ 오마이뉴스 안홍기

편집국장 전격 경질과 편집국장 후보 임명 동의 투표 부결, 사장 사임 등으로 진통을 겪었던 <한겨레>가 4월 1일 서형수 사장-김종구 편집국장 체제로 진용을 짜고 새 출발했다.

<한겨레>는 3월 31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주총과 이사회를 잇달아 열고 서형수 고문(50)을 새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서형수 대표이사는 3월 9일, 3명의 대표이사 후보들의 '전격 합의'에 따라 단독 후보로 추대됐으며, 주주 사원들의 선거로 새 대표이사 후보로 추천됐다. 서형수 사장 후보는 김종구 미디어사업단장을 편집국장 후보로 지명했고, 지난 3월 23일 편집국 기자들의 임명 동의 투표에서 81.3%의 지지를 얻어 4월 1일부터 편집국 지휘봉을 잡았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점에서 사장-편집국장 동반 퇴진 소동은 <한겨레>로서는 '위기적 국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만큼 서형수 새 대표이사와 김종구 신임 편집국장은 빠른 시일 내에 경영과 지면, 회사 분위기를 안정화시키면서, 새 출발을 위한 활력을 되찾아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특히 '신문지면'의 문제가 지난 번 사장-편집국장 동반 퇴진 소동의 한 원인이었던 만큼 신문 제작을 총괄 지휘하게 되는 김종구 신임 편집국장의 어깨는 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취임을 앞둔 3월 29일 <한겨레> '접견실'에서 김종구 신임 편집국장을 만났다.

"<한겨레>다운 목소리 내기 위해 조직적 노력할 것"

축하한다는 인사에 이어 곧바로 핵심부터 물었다.

ⓒ 오마이뉴스 안홍기
- 위기적 국면으로 보입니다. 그만큼 어깨도 무거울 듯 싶은데, '<한겨레> 지면이 요즘 힘이 없다' '정체성이 의문시된다'는 이야기가 밖에서는 물론 안에서도 없지 않은데, 어떻게 하실 겁니까?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한겨레>는 '진보의 거울'과도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진보의 위기가 진보진영, 개혁세력 내에서 주된 화두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바로 그같은 진보의 어려움, 진통을 <한겨레>도 같이 겪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의 진보·개혁 세력이 그렇듯이 <한겨레>는 또 진보 개혁언론의 훌륭한 자산을 갖고 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한겨레>가 갖고 있는 진보 개혁적 자산의 전통을 잇고, 그것을 제대로, 새롭게 발휘할 수 있도록, <한겨레>다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조직적 노력을 해나간다면 활로를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한겨레>다운 목소리를 내기 위한 조직적 노력. 신문 제작의 총 사령탑으로서 아마도 그의 의중은 이 한마디에 농축돼 있는 듯 했다. <한겨레>다움을 회복하는 것, 진보의 영역이 확대되면서 확장된 <한겨레> 안팎의 다양한 여러 갈래의 시각과 목소리를 존중하면서도 매일 매일 승부를 펼칠 수밖에 없는 지면제작에 이를 어떻게 묶어세우느냐가 그가 집중하고 있는 화두인 듯했다.

과거에는 주요 사안에 대해 <한겨레> 내부에서 큰 이견이 없었다. 이심전심으로 그 방향을 정해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주요 쟁점들에 대해 <한겨레> 내부에서 '100% 합의'를 보기가 쉽지 않다. 시각과 입장에서 미묘한, 혹은 상당한 차이들이 존재한다. 당연한 다양성이다.

- 그러나 바로 그런 다양성 때문일지는 몰라도 <한겨레>의 정체성에서는 상당한 혼선, 혹은 <한겨레>다운 색깔이 약화된 것 아닌가 하는 이야기들도 있는데요.
"과거에는 <한겨레>가 조금은 쉽게 갈 수 있는 측면이 있었다고 봅니다. 진보의제를 <한겨레>가 독점하다시피 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한겨레>다운 신문을 만들기가 과거보다 어려워진 측면이 있는데, 어쩌면 민주주의 진전의 당연한 귀결이기도 합니다. 우리(<한겨레>)가 그런 시대의 변화와 흐름 속에서 다소 안일하게 대응했던 측면도 없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또 '진보 콤플렉스' 속에서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은 측면도 있었습니다."

그는 이 대목에서 이른바 '콜라-주스론'을 들었다. "<한겨레>에는 톡 쏘는 콜라 같은 맛이 있어야 하는데, 그 보다는 과일 주스를 좀 더 타자"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흐름'도 있었다는 분석이다. 일종의 개혁·진보 피로증후군으로도 볼 수 있겠다. 그런 점에서 그는 '<한겨레> 전통주의자'다.

<한겨레>는 우리 사회 개혁·진보 세력의 거울 같은 존재지만 개혁·진보 세력이 이 같은 위기적 상황을 맞게 된 데에는 '<한겨레>의 책임'도 적지 않다고 자인한다. 세상의 변화 속에서 개혁·진보 세력의 '공론의 장'으로서, 그 '중심'으로서 제 역할을 다했는지 자문하게 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편집국 내 개방·소통·공유문화 활성화가 관건"

조금은 아플 수 있는 대목을 물었다.

ⓒ 오마이뉴스 안홍기
- 요즘 신문을 보면 <경향신문>이 더 <한겨레>답다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경향신문>의 지면이 많이 바뀐 게 사실입니다. 참조할 만한 좋은 기사들도 눈에 띕니다. <한겨레>로서는 전혀 나쁜 일이 아닙니다. 같이 갈 수 있는 좋은 신문, 선의의 경쟁자가 있다는 것은 오히려 잘 된 일입니다. 서로 자극을 주고받으면서 잘 만들어 가면 된다고 봅니다."

그런 과정에서 <한겨레>는 <한겨레>다운, <경향>은 <경향>다운 색깔들을 갖추게 될 것이라는 시사이기도 했다.

신문사의 편집국장은 보통 '야전사령관'으로 불린다. 다른 나라는 사정이 다르지만 한국적 상황은 여전히 그렇다. 거기에 당장 눈앞의 전투뿐만이 아니라 전쟁의 큰 판세 까지를 같이 책임져야 하는 버거운 짐을 안고 있다. 병력의 배치와 지휘까지도 하나하나 챙겨야 하는 부담도 있다.

- 구체적인 신문 제작과 관련해 특별히 생각하고 있는 점이 있는지요?
"여러 가지 구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은 역시 신문 제작의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슈 파이팅에 강하면서도 아기자기하고, 세밀하며 발랄 통통 튀는 기사들이 어우러지는 그런 신문을 만들 생각입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욕심이 많은 편이다. 한 마디로 다 잘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좋은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왕도가 따로 없다고 봅니다. 편집국 내에 개방과 소통, 공유의 문화를 얼마나 활성화시킬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기탄없이 의견과 아이디어를 내고, 이견이 있으면 서로 활발하게 토론하고, 기사로 승부하는 근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편집국 문화를 만들자면 무엇보다 국장인 나부터, 그리고 에디터, 팀장 등 선배 기자들이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그렇게 할 것이고, 그렇게 주문할 것입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편집국 내 '단절의 칸막이'를 과감하게 해체하겠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기자들 사이의 칸막이, 기자와 팀장, 에디터, 국장간의 칸막이, 부서간의 칸막이를 과감하게 열어젖힐 수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 <한겨레>는 그동안 고급지를 만들겠다고 독자들한테 약속한 바 있는데, 고급지의 개념 어떤 것인지 헷갈린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고급한 정보와 고급한 분석, 그리고 맛깔스러우면서도 읽기 쉬운 문체면 그게 고급지 아니겠습니까? 일종의 레토릭(수사)일 수 있는데, 균형감각과 저널리즘의 원칙에 충실한 게 가장 고급스러울 수 있다고 봅니다."

ⓒ 오마이뉴스 안홍기

"분명 신문의 시대가 다시 올 날이 있을 것"

- 아무래도 올해는 대선의 해인데, 어떤 점에 대선보도의 중점을 두고 해나갈 계획이신지요(김종구 신임 편집국장은 임명동의 투표를 앞두고 가진 '기자들과의 대화'에서 '대선'과 '진보'의 화두에 집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대선은 우리 사회에서 여러 가지로 색다른 선거가 될 것 같습니다. 이전의 대선이 '짜인 구도'에서 치러졌다면 지금은 판 자체가 흐트러져 있습니다. 그런 만큼 무엇보다 언론이 중심을 잡고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에 있어서나, 개혁·진보 진영에 있어서나 <한겨레>에 있어서나 아주 중요한 시기라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는 언론 본연의 기능과 역할이 시험대에 섰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번 대선만큼 중심잡기가 힘든 때도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종구 편집국장은 지난 2002년 대선 때는 정치부장을 맡았다. 이번에 그가 발탁된 배경의 하나이다.

민주주의의 가치와 절차에 있어서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가리는 것, 대선후보들의 공약과 정책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평가, 한국사회의 진로와 관련해서는 특히 사회정의 차원에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후보와 정책의 검증에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냉철한 관찰자의 시점(視點)'을 강조했다. <한겨레>다운 가치를 중심에 놓되, 언론으로서 '기본원칙'에도 충실하겠다는 이야기다.

ⓒ 오마이뉴스 안홍기
- 그동안 사장과 국장 퇴진 등으로 분위기가 뒤숭숭할 것 같은데, 조직의 안정과 체제를 어떻게 정비할 것이냐가 당장 시급한 현안일 것 같은데 어떻게 풀어나갈 계획인지요?
"몇 가지 당장 '결정' 해야 할 현안들이 있습니다. 주말판 발행을 비롯해 주요 현안들에 대해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매듭을 지을 작정입니다. 4월 말까지는 주요 현안과 인사 등 체제 정비를 마칠 계획입니다."

일단 속도전이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여유로울 수 없는 형편이다.

신문의 위기, 기자의 정체성 등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속 시원한 대책이나 해법을 내놓기 힘든 사안들이다.

"글로벌한 문제이지 않습니까? 지금 당장은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분명 신문의 시대가 다시 올 날이 있을 것입니다. 열심히 할 것입니다. <한겨레> 독자 분들께서, 또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이 도와주기 바랍니다."

2007년 말, 대선이 끝났을 때 김종구 편집국장의 <한겨레>도 그 '중간평가'가 나올 것 같다.

김종구 편집국장은 1985년 연합뉴스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해 1988년 창간 때 <한겨레>로 자리를 옮겼다. 평기자 시절, 근성 있는 사회부 기자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한겨레>21 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 수석부국장직을 차례로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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