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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겉그림
책 겉그림 ⓒ 샘터
"서로 영혼이 통하는 사람을 발견하고 만나서 교류한다는 것이 얼마나 흐뭇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문화적인 차이와 세대 간의 차이에 상관없이 서로 통하는 더 깊은 무엇이 있는 것이지요. 혼탁한 세상에 맑은 물이 흐르는 것처럼, 그런 교류가 사람들로 하여금 숨을 쉴 수 있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는 소설가 박완서와 수녀 이해인, 화가 방혜자와 역사학자 이인호가 쓴 <대화>(샘터·2007)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이들은 우리 시대의 어머니 같은 큰 누이들로서 개인과 시대와 세계를 뛰어넘어 깊이 있는 통찰력으로 이야기를 어어 나갔다. 분명 자기만의 분야에서 나름대로 관점이 있음에도 세대를 아우르는 통찰력만큼은 한 길로 통했다.

이 책의 앞부분에는 소설가 박완서 누이와 수녀 이해인 누이가 나눈 대화가 실려 있다. 박완서 누이야말로 농경사회뿐만 아니라 피비린내나는 전쟁을 경험했고, 일제의 억압과 6·25의 좌우이념대립, 산업화와 경제대국, 그리고 오늘날의 IT 강국 등 격변의 시대를 살아왔다. 그야말로 칠십 여년 생애 동안에 천 년의 삶을 살아왔지 않나 싶다.

그런 경험이 있기에 그녀의 소설에는 전쟁의 상처와 치유, 가족 간의 기쁨과 슬픔, 이웃 간의 정과 고통, 이성 간의 배반과 사랑 등 인간의 희로애락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실제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요즘 소설과는 달리 그야말로 진솔하다.

그런가 하면 이해인 수녀는 누가 뭐래도 맑고 청아하다. 그녀의 시도 그만큼 세상을 맑고 깨끗하게 한다. 지금도 그녀가 쓴 시들이 세상에 나돌면서 세상의 곳곳을 치유하고 있다. 그런 치유와 자정 능력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수녀원 생활에서 나오지 않나 싶다. 흔히 수녀원이라고 하면 세상과 단절된 곳으로 여기기가 쉽다. 하지만 그녀는 가난한 이웃들의 이야기라든지, 버려진 노인들이나 갈 곳 없는 노숙자들의 삶, 기러기 아빠를 비롯하여 빚 때문에 자살한 사람들의 슬픔에 더욱 귀를 세운다. 그만큼 세상 사람들의 슬픔에 열려 있는 삶이요, 보편적인 인류애가 깊이 뿌리내려 있다는 증거다.

이 책의 중반부에서부터는 방혜자 누이와 이인호 누이의 대화가 실려 있다. 화가와 역사학자라 이야기가 어색할 것 같지만 격동의 시대를 내면의 빛과 지성의 삶으로 개척해낸 누이들의 이야기라 인간미가 더욱 넘친다.

방혜자 누이가 프랑스에서 회화를 공부했다면 이인호 누이는 미국의 하버드에서 러시아를 전공했다. 서로 다른 인생의 길목이었지만 불굴의 개척정신과 세계를 보는 안목만큼은 뭔가 통하는 데가 있었던 것이다.

"이인호 : 저 역시 궁극적으로는 지금 엄청난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변화의 과정을 희망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강조하고 싶은 조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타자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용에 기초한 새로운 화합이 그러한 변화의 정신적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방혜자 : 어느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개개인 모두의 의지에 달렸다고 봐야겠죠. 세대 간의 갈등이란 것도 사실 단절의 문제 아닐까요. 젊은 세대는 이전 세대의 가치관에 귀 기울이고, 기성세대는 새로운 세대의 젊고 박력 있는 힘을 받아들이는, 열려 있는 마음이 바람직하겠죠." (261쪽)


그처럼 한 개인과 사회, 나라와 세계를 일깨우는 우리 시대의 큰 누이 네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지없이 포근하고 아늑한 기분이었다. 서로 다른 배경 속에서 나눈 대화였지만 그래도 시대를 통합하는 울림의 깊이는 여전했다. 딱히 정해 놓은 주제가 없었건만 물 흐르듯 그 내용마저도 자연스레 흘러갔다.

그런데도 굳이 수심 한 가운데를 들여다보듯 두 누이들이 나눈 대화를 헤아려본다면 앞선 누이들이 개인과 사회의 자화상을 살펴보는 데 중점을 뒀다면, 뒤이은 누이들은 우리나라와 세계역사의 흐름을 반추하며 내다보는 게 주된 내용이지 않았나 싶다.

아무쪼록 우리 시대의 어머니 같은 큰 누이들이 나눈 대화야말로 영혼이 통하는 대화였다. 격식이나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깊은 대지의 목소리처럼 우리의 메마르고 거친 일상을 일깨우기에 충분한 메시지였다.

대화 - 삶의 여백에 담은 깊은 지혜의 울림

박완서.이해인.이인호.방혜자 지음, 샘터사(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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