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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북스
과학기술과 기계문명의 발달은 인간 세상을 많이 변화시켰다. 일을 나눠서 하거나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했다. 전기가 없던 시대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됐고, 능률 또한 그만큼 올랐다. e-빠른 세상에 살고 있는 인터넷 시대도 다르지 않다. 모든 것이 발 빠르고 편해졌다.

그러나 문명의 발전이 인간의 편리만을 가져온 건 아니다. 기계가 인간의 삶을 옥죄고 있으며, PC와 이메일은 시간을 잡아먹는 도구가 됐다.

그것들에 의해 일자리에서 쫓겨난 사람이 늘고 있고, 스트레스도 가중되고 있다. 더욱이 사람들이 늘 무언가 쫓겨 다니는 듯한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 그만큼 참된 행복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 주된 이유가 무엇일까? 미하엘 코르트는 <비움>(21세기북스·2007)에서 그 이유가 인간들이 채우기만을 바라며 살기 때문이라고 꼬집고 있다. 다시 말해 오늘날 사람들이 더없는 자본과 물질에만 허덕인 채 비우는 삶을 살지 못하는 까닭이라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 절망감은 작아지고 자존감은 커졌다. 그리고 문제를 계속 생각하는 사이 나는 행복에 이르는 길이-적어도 나에게는-비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지은이의 말)

사실 그도 큰 사업을 했으며, 그만큼 바쁘게 돌아다녔다. 화려한 식사 자리도 많이 열었으며,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자리를 추구하기 위해 오르고 또 올라갔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의 사업은 부도를 맞고 빚 독촉에 시달리며 쫓기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러는 사이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로부터 삶의 '지혜'와 '깊이'를 깨닫게 된다.

이른바 천재적인 물리학자요, 철학자였지만 학문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삶에 최고의 가치를 두었던 파스칼이라든지, 행복을 누리며 조급히 살지 말라는 스페인의 그라시안 신부, 소박하게 돈을 아끼며 살았던 그리하여 근심을 멀리하고 마음의 건강을 유지했던 철학자 코르나로 등 14명의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참된 비움의 삶을 습득한 것이다.

그가 살펴본 파스칼을 잠깐 들여다보자. 파스칼은 책도 선생도 없던 시절에 목탄을 들고 유클리드의 명제를 풀었다. 그의 나이 열두 살 때였다. 그 사이 아버지는 파스칼을 데리고 파리로 가서 교육을 시켰다. 그로 인해 열여섯 살 때 원뿔 곡선에 대한 논문을 써서 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열아홉 살에는 복잡한 산술이 가능한 계산기를 발명했고, 스물세 살에는 기압 측정에 관한 놀라운 지식을 발견해 냈다.

그렇게 학문적인 승승장구의 삶을 살았던 파스칼이 왜 갑자기 그 모든 것을 비우고서 신에게 귀의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사람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아무리 물질과 물체가 아름다워도 사랑보다 더 귀하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까닭에 모든 것을 비운 채 수도원에 들어간 그는 병든 사람들을 위해 돌보며 남은 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물체와 정신을 합한 것과 물체와 정신이 함께 만든 작품은 가장 작은 사랑보다 귀하지 않다. 사랑은 비교할 수 없이 숭고한 질서에 속하기 때문이다."(41쪽)

그런가 하면 디오게네스의 삶 속에서도 그는 깊이 있는 떨림을 느꼈다. 디오게네스는 무욕사상가로 잘 알려진 철학자다. 그는 아테네 거리 모퉁이에서 악덕과 악습을 비판한 우스꽝스런 설교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대낮에도 그는 등을 들고 거리를 나다녔다. 왜냐하면 허영심과 거짓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진정으로 정직한 자를 찾기 위함이었다.

그런 그를 왜 비움의 철학자로 여기고 있는가? 그것은 그야말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날엔 또 다른 허영심에 허덕이는 자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비움의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겐 더없는 길잡이가 되지 않을까 한다.

"디오게네스는 소유가 짐이라고 깨달은 최초의 서양인이다. 그는 신전 앞뜰에 있는 통 속에서 살았다. 고향이 없는 것을 상징하는 지팡이를 들고서 맨발로 다녔다. 털이 덥수룩이 난 얼굴로 전 재산이 담긴 자루를 어깨에 메고, 마른 몸에 찢어진 겉옷을 둘러 입었다.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무엇에도 종속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도."(171쪽)

자본주의와 인터넷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의 사람들이 많은 풍요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거기엔 그만큼의 행복이 사라지고 있다. 예전의 행복했던 모습들이 오히려 부러울 정도다. 그것은 더 많은 것을 채우려는 욕심에서 비롯되고 있다. 문제는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것을 극복할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방편으로 '비움의 삶'을 살았던 고대와 현대의 성현들, 그리고 그들의 실천적인 삶을 통해 좋은 모습들을 습득하면 좋을 것 같다. 겉치레와 집단적 허영심, 그리고 돈과 권력에 탐욕을 부리면 부릴수록 인간의 삶은 옥죄여들지만 그것으로부터 비워내는 자유로운 삶을 산다면 참된 행복을 다시금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움 - 14명의 삶에서 배우는 인생의 지혜

미하엘 코르트 지음, 이승은 옮김, 21세기북스(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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