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방사선의학 연구센터 싸이클로트론 응용연구실
ⓒ 이정환

[여의도통신=이정환 독립기자] '황우석'이란 이름 세 글자가 대한민국 과학을 대표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른바 '황우석 쇼크'에 휩쓸리기 직전까지, 황 교수팀이 정부로부터 지원 받은 금액은 수백억원대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황 교수팀이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는 동안, 음지(?)에서 1억원 가량의 예산을 마련하지 못해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된 연구기기를 붙잡고 전전긍긍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아직도 적지 않은 암환자들이 삶의 희망을 붙잡고 방문하는 원자력의학원 방사선의학 연구센터 연구원들이다.

최근 여의도통신은 기관 독립을 통한 연구 활동 증대를 핵심으로 내걸고 개정된 '방사선 및 방사성동위원소 이용진흥법'의 '현재'를 따지는 과정에서, 원자력의학원 내 과학자들의 연구 실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자료를 입수했다.

자료에 나타난 그들의 모습은 황우석 신드롬을 통해 '화려한 과학자'에 익숙해진 상식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여의도통신이 원자력병원에 '가려진' 방사선의학 연구센터(이하 '센터')에서 연구원들과 만난 이유였다.

[연구 시설] 변변한 표지판도 없는 컨테이너

▲ 응용연구실 입구 안내문
ⓒ 이정환
먼저 가속기 개발 및 RI응용 연구부를 찾아 나섰다. 최근 센터에서 가장 많이 언론으로부터 주목을 받은 부서였기 때문이다.

채종서 박사(현 방사선의학 연구센터장)팀이 국내에서 최초 개발한 '의료용 가속기(싸이클로트론)'는 외산 가속기에 비해 저렴한 가격과 뛰어난 성능으로 전국 보급에 들어간 상태다. 외산 가속기가 최소 200만달러인 반면, 국산 가속기 가격은 80만~100만 달러 정도. 또 해외로부터도 성능을 인정받아 지난 1월에는 마이애미 대학병원에 수출하기로 합의했고, 칠레·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다른 나라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정작 연구실을 찾기 힘들었다. 변변한 표지판도 없어 두리번거리다 발견한 곳은 컨테이너 가건물. 출입구에는 '가설건축물 존치기간 연장건물'이라는 표지가 붙어 있었다. 허가일자 1998년 12월 19일, 연장존치기간 2007년 7월 31일까지. 과기부가 "국내 암 진단 분야에 일대 변혁을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심장부'의 현주소였다.

"한 10년 정도 됐죠. 그전에는 그나마 이것(가건물)도 없었어요. 실험 공간이 없으니까 뿔뿔이 흩어져서 연구했죠. 지금도 마찬가지긴 합니다만…, 화장실이요? 영안실에 있는 화장실을 쓰죠."

센터 안에서 연구원들과 자리를 잡고 앉자 A연구원이 꺼낸 말이었다. 모두 5명이 익명을 조건으로 취재에 응했다.

현재 센터 연구 조직은 가속기 개발 및 RI응용연구부 외에 방사선 생물 연구부, 방사선 종양 연구부로 크게 나뉜다. 응용 연구부가 엔지니어적인 성격이 강하다면, 다른 부서들은 '생명과학'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시설에 대한 문제 인식만큼은 모두 한결같았다. 문제는 '가건물'로 그치지 않았다.

"암 연구에 '무균 동물실'이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없어요. 지금 우리나라에 무균 동물실이 200개가 넘는데, 아직도 1983년에 지어진 '일반 동물실'을 쓰고 있습니다."

B씨의 말에 이은 C씨의 보충 설명을 정리하면 '문제'는 이렇다. 암 연구를 위해서는 쥐에 암세포를 넣어야 한다. 하지만 일반 쥐들에게서는 거부 반응이 생기기 때문에, 사람 세포를 잘 받아들이는 돌연변이 쥐들을 사용해야 한다.

이 쥐들이 면역 기능이 없기 때문에, 무균 동물실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황우석 쇼크' 과정에서 졸지에 유명해진 '스키드 마우스'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그럼 필수 연구를 어떻게 진행하냐'는 질문에 C씨는 "책꽂이 모양의 무균 캐비넷으로 대체하고 있다"면서 "원래는 무균실 안에 설치하는 이중장치 중 하나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에 쓴다"고 대답했다. 은행 건물은 없고, 금고만 달랑 거리에 나와 있는 셈이다.

[연구 장비] "사주지도 않고, 고쳐주지도 않고"

"10년 영업에 이런 경우는 처음"
연구기기 판매업체 반응

취재 목적을 밝히고 연구기기 판매업체 의견을 청취했다. 연구원들의 '호소'에 대한 객관적인 의견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어느 연구소인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먼저 '가' 업체의 경우는 센터 초원심분리기에 대해 "관리 상태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너무 오래됐다. 보통 공동기기 관리자를 두는 편인데,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비싼 기기도 빨리 고장나기도 한다"며 "기관마다 한 두개 정도는 가지고 있는 기기"라고 답했다.

'나'업체 관계자 역시 "영업 10년차다, 15년 넘게 쓰는 경우까지는 봤어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극히 드문 케이스"라고 말했다. 또 "보통 초원심분리기의 공식적인 내구 연한을 5년을 잡는다"며 "서울대나 대덕 연구단지의 경우 매년, 초원심분리기만 2억원 정도씩 들어간다"고 밝혔다.

'가'업체 관계자 역시 "요즘 트렌드가 몇 년만 지나도 구식 장비 취급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만큼 최신 기기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고성능 액체 크로마토그래피(HPLC)에 대해서도 "생명과학 연구에 필수적인 기기다, 없는 데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금고까지 구식'이라는 점이다. 연구원들은 "각 부서 핵심 기기들의 노후화가 심각한 상태"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 중 하나가 초원심분리기(Ultra Centrifuge)다. 세포 돌연변이인 암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암 세포를 분쇄하고 각각의 세포 성분을 분석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기기다.

"최근 들어 사용 빈도가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종양 연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장비죠. 헌데 저희 장비가 1986년에 산 것이거든요? 계속 쓰기는 하는데...고속으로 돌아가는 기계라서 사고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속도를 절반 줄여서 쓴다든지…."

생물 연구부의 경우는 유세포분석기(Flow Cytometry 혹은 fluorescent-activated cell sorter : FACS)가 핵심 장비다. 세포에 레이저를 쏴서 면역, 생리적 성질 등을 분석할 수 있게 하는 장비로 단순히 세포 모양만 알려주는 것과 세포를 하나하나 분류해주는 기능까지 갖춘 모델로 나뉜다. 연구원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후자를 선호하기 마련이다.

"사실 저희가 갖고 있는 장비는 스캐너 역할 정도밖에 하지 못해요. 생명공학연구원이나 국립암센터는 물론이구요, 서울대나 연세대 등 암 연구소도 셀소트(Cell sort) 기능을 갖춘 유세포분석기를 갖고 있죠. 박사급 연구원에게는, 좀 과하게 표현하면, 저희가 갖고 있는 장비는 학생용? 이것도 벌써 10년이 넘어갔단 말이죠."

▲ "기기 고장 방지를 위해 근무 시간 동안만 사용할 수 있다"는 생물 연구부 핵심기기
ⓒ 이정환
B씨와 D씨의 '한숨'은 구닥다리 장비에서 멈추지 않았다. 오래 된 기계인 만큼, 잦은 고장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E씨의 말이다.

"고장나면 수리하고 또 고장나면 수리하고...항상 쓰는 기계다 보니까, 당장 수리가 되지 않으면 연구에 차질이 생기죠. 그럴 때는 또 어쩔 수 없이 외부로 출장 가서 실험하는 상황이거든요? 그런데 수리비도 잘 나오지 않아요."

무슨 말일까. C씨는 "센터 기기 수리비가 예산에 잡혀 있지 않아, 해당 금액을 집행할 수 없다는 것이 행정관리부 입장"이라며 "원자력의학원 자산으로 잡으면서도, 수리비는 책정하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상자기사2 참조)

사정이 이렇다보니, 신규 장비 구입은 '먼 나라 이야기'다. 세포 분류 기능을 갖춘 유세포분석기는 물론, 새로운 항암제 연구에 필수적인 장비로 알려진 고성능 액체 크로마토그래피(HPLC , High Performance Liquid Chromatograph System)나 세포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실시간 영상 촬영기'는 황우석 교수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B씨는 자신들의 상황을 다음과 같은 말로 정리했다.

"저가 장비들은 연구비(프로젝트 수주 수입)로 어떻게 가능해요. 조그만 것까지 기관에서 다 사줄 수도 없는 일이고. 하지만 1억원 이상 기기들은 도저히 어떻게 구입할 수가 없거든요? 고가 기자재들은 구입이 안 되고, 현재 있는 장비들은 고장이 많이 나고…. 꼴찌죠, 꼴찌."

[기타 장비] 시외전화는 교환원을 통하라?

▲ 초원심분리기에 부착된 1986년 2월 22일자 면세물품 표시
ⓒ 이정환
이런 상황에서는 연구원들의 생활 또한 기형적인 모습을 띠게 마련이다. 연구원들이 장비가 있는 시설을 찾아 숙식을 해결하며 연구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유세포분석기의 경우는 서울대 의대로 가구요. 강원대 기초과학연구소 분원이 있어요, 형광현미경은 거기로 가요. 고성능 액체 크로마토그래피는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로, 응용연구부의 경우는 포항이나 정읍 등에 자주 가서 연구합니다."

A씨도 "싸이클로트론(의료형 가속기) 납품 의뢰를 받으면, 납품할 장소에 가서 연구를 한다"면서 "연구 결과를 여기서 다 테스트해서 납품을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연구원들은 기본적인 사무 비품 지원도 열악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C씨는 "사무용 컴퓨터 지원도 잘 해주지 않는다. 원자력의학원 예산으로 센터에 지급된 컴퓨터는 센터장 사무실에 있는 것 뿐"이라며 "그래서 사비로 컴퓨터를 구입한 연구원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이어진 B씨의 말.

"팩스 있잖아요? 그것도 센터에 딱 하나 있어요. 시외전화도 되지 않아요."

-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기자님에게 핸드폰을 하고 싶어도 사무실 전화로는 할 수 없어요. 대전에 전화를 하려고 하잖아요? 그럼 교환한테 전화번호를 불러줘요. 조금 있다 전화가 오는 거예요. 연결이 되면."

그제서야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갔다. "부장급 이상, 그러니까 단 4대만 바로 시외 통화가 가능하다"는 말을 들으며 수첩을 덮으려는데, B씨가 동료를 향해 던지는 말이 귀에 꽂혔다.

"이거 기사 나가면 우린 정말 창피한 거다. 그치?"

왜 그들이 창피해야 하는 걸까. 무엇이 연구원들을 창피하게 만든 걸까. 1차적인 해답은 과학기술부가 쥐고 있다. 그리고 국회는 원자력의학원 독립 과정을 면밀히 주시하여, '오답 여부를 가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틀린 얘기도 되고, 맞는 얘기도 된다?
원자력의학원 행정 관계자 답변은

예산 집행과 관련된 연구원들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자력의학원의 회계상 특징을 알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병원은 진료 수입, 센터는 공개 경쟁을 통한 연구 프로젝트 수주로 수입이 발생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수입이 존재하는데, 정부 출연 연구소에 대한 일종의 국가 지원. 원자력의학원이 기관고유사업 계획을 제출하면, 이를 승인하여 필요한 예산을 집행하게 된다.

문제는 병원과 센터 회계가 통합되어 있기 때문에, 센터와 병원간의 '불신'이 깊어진다는 점이다. 특히 과학기술부 산하 기관으로 발생하는 '국가 지원 혜택'에서 정작 연구센터는 배제되고, 예산 집행과정에서도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것이 연구원들의 주장이다.

이같은 주장과 관련, '신규 장비 구입에 대한 예산 편성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 원자력의학원 행정 관계자는 "전혀 틀린 얘기라고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면서 "과학기술부 감사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코멘트를 하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또 '장비 보수비 예산 책정 여부'에 대해서는 "정부 연구사업이나 지원사업 등의 사업비 편성이 PBS(연구과제 중심제, Project based System) 체제로 이뤄지기 때문에 직접비에는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초원심분리기 얼마, 어느 기기 얼마' 이런 식으로 각각 기기에 대해 별도로 예산을 편성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답했다.

아울러 전화 회선 문제와 관련, 통신 담당자는 "어느 회선이든 외부로 나갈 수 있으며, 다만 업무 특성상 시외전화나 휴대폰, 국제전화를 할 수 없게끔 기능을 부분 통제하는 것 뿐"이라며 '교환을 거치지 않고 시외 통화가 가능한 전화가 4대'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모 연구부를 확인한 결과 16일 오전 11시 현재, 교환을 거치지 않고 시외전화나 핸드폰 통화를 바로 시도할 수 있는 전화기는 18대 중 단 한 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덧붙이는 글 | 여의도통신 3호(3월 19일자)에 실린 기사입니다.


태그:#원자력, #방사선의학, #황우석
댓글

여의도통신은 오마이뉴스의 제휴사입니다. 여의도통신은 유권자와 정치인의 소통을 돕는 성실한 매개자가 되려고 합니다. 여의도통신은 대한민국 국회의원 299명 모두를 ‘일상적 모니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