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며칠 전 꽃샘추위에 우리집 마당엔 눈이 쌓였지만, 매화는 벌써 꽃을 피우고 봄을 기다리는 듯하다.
며칠 전 꽃샘추위에 우리집 마당엔 눈이 쌓였지만, 매화는 벌써 꽃을 피우고 봄을 기다리는 듯하다. ⓒ 조정구
3월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꽃샘추위가 찾아왔다. 별안간 눈발이 날리고, 바람이 거세졌다. 급하게 올라탄 택시에서 기사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건넨다.

"이거 완전히 날씨가 엉망이네요. 뭐 정상이 아닌 것 같아요. 3월인데 말예요…."

하지만 나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원래 3월 초에는 꼭 눈이 와요. 작년에도 왔었구요, 재작년에도 눈이 많이 왔었는데요."
"그래요!?"

기사 아저씨는 의아하다는 듯, 말을 접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최소한 내가 경험한 4번의 겨울과 봄 사이, 3월에도 많은 눈이 왔다는 것을. 그리고 그 눈이 소복히 내려 우리 집 마당을 덮었다는 것을 말이다.

한옥에 살면 무엇이 좋냐고 많은 사람이 물어온다. 처음에는 높은 대청이 좋고, 창살이 좋고, 건강에 좋고, 아이들이 맘대로 뛰어놀 수 있고 하며 여럿을 늘어놓지만, 요즘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계절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을 느끼게 해 준 것은 다름 아닌 우리집 마당이다.

이사 오기 전 아파트에 살 때도 베란다 창문 밖으로 날씨가 바뀌고 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사는 공간 밖의 것이었고, 지금처럼 우리 가족의 삶 바로 곁에서 하루하루 다른 모습을 하는 그런 '계절'은 아니었다.

우리집 가운데 무덤덤히 자리한 마당이지만, 매일 부지런히 햇살과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새 싹을 돋우고, 꽃들을 피우며, 나무를 우거지게 하고, 지리한 장마를 견디어, 감들을 영글게 하였다.

그리고 다시 낙옆을 떨구고, 하얀 눈이불을 덮더니, 어느새 다시 봄을 맞이하고 있다. 이렇게 마당은 자연의 조각을 떼어다 우리집에 안겨주었고, 그 덕분에 지금까지 우리 가족은 그것을 잘 누려왔다.

저희 집에 들어와 1년 정도 사무실을 했을 때, 차종호씨가 부지런히 사진을 찍어주었다. 첫 사진 봄의 마당이다.
저희 집에 들어와 1년 정도 사무실을 했을 때, 차종호씨가 부지런히 사진을 찍어주었다. 첫 사진 봄의 마당이다. ⓒ 차종호

초여름 비 내린 마당
초여름 비 내린 마당 ⓒ 차종호

여름햇살
여름햇살 ⓒ 차종호

물놀이
물놀이 ⓒ 차종호

빨래 말리기
빨래 말리기 ⓒ 차종호

다시 비 내린 마당
다시 비 내린 마당 ⓒ 차종호
매일 같이 마당에 물청소를 하고, 빨래를 말리고, 의자를 놓고 머리를 자르거나, 우리집 강아지 'dugi'를 목욕시키고, 전등을 내다 감나무에 걸고 삼겹살을 구워먹거나, 자동차 풀장을 만들어 여름 내내 신나게 놀기도 했다.

그래서인가. 이렇게 봄이 오면, 마당에서 하던 많은 일들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설레기 시작한다. 나뿐이 아니다. 아내는 창고 물건을 모두 꺼내 정리를 시작했고, 'sunu'는 '난, 나가서 기다릴래!' 하며 괜히 옷을 차려 입고 마당 툇마루에 걸터 앉아 짧은 노래를 흥얼거린다. 얼마 안 있으면 아이들 장난치는 소리가 마당에 가득할 것이다.

작년에 심은 매화가 꽃을 피운 것은 벌써 오래 전 일이고, 감나무 아래 영산홍도 어째 낌새가 이상하다. 이제 바야흐로 우리집에는 '마당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