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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10시, 범국본 단식농성단이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한미FTA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19일 오전 10시, 범국본 단식농성단이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한미FTA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배민
# 장면 1

"드디어 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중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정치권도 움직이고 있다. 민중이 손을 맞잡으면 세상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백발에 수염이 덥수룩한 한 노인이 사람들 앞에서 소리 치고 있다. "밀실야합으로 협정이 체결된다면, 정부는 민중항쟁과 민중봉기의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8일째 단식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우렁차고 확신에 찬 목소리다.

19일 오후 3시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 열린 한미FTA저지 2차 단식농성단 발대식에서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오종렬 공동대표가 감격에 찬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 장면 2
지난 16일 약속이 있어 광화문에 나갔다가 우연히 시민열린공원에서 진행된 한미FTA반대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다. 바람막이 하나 없이 맨 바닥에 장판을 깔고 노인 10여명이 앉아 있었다.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사람들까지 넉넉잡아 50여명. 5일째 단식 중이라고 한다.

'한미FTA는 미국 신자유주의 정책의 하나고 이것이 체결되면 우리나라에도 빈부차가 더 심해질 것이다, 그래도 안하면 우리나라 경제가 더 힘들어 지는 것 아닌가?

이 정도로만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던 내게 이들의 모습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또한 '저런다고 뭐가 바뀔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저런다고 바뀔까, 직접 해보자

한미FTA저지 범국본 2차 단식농성단 발대식에서 참가자들이 열사에 대한 묵념을 하고 있다.
한미FTA저지 범국본 2차 단식농성단 발대식에서 참가자들이 열사에 대한 묵념을 하고 있다. ⓒ 배민
3일 후, 나는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무작정 단식농성단에 합류했다.

19일 오전 10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는 단식 8일째를 맞은 한미FTA저지 무기한 단식농성단의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었다. 농성단은 이날부터 시작된 고위급 협상이 밀실야합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이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찾아간 단식농성장은 3일전에 비해 한결 좋아보였다. 천막이 놓였고 난로를 놓은 모습이었다. 인사를 하고 멀뚱멀뚱 주위를 둘러보니, 범국본 대표단과 민주노동당 간부, 몇몇 시민과 대학생들이 있었다.

단식 5일째라는 시민 윤미경씨는 직장을 다니며 혼자서 4일간 단식을 하다 월차를 내고 18일 밤부터 단식단에 참여했다고 한다.

대학원을 마치고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던 양종진씨는 "지금까지 FTA협상과정을 지켜보며 '최소한 이 정도는 지켜지겠지'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무너지는 모습에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단식 농성단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단식에 참가한 시민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FTA협상 과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 함께 단식농성 중인 허영구 민주노총 부위원장에게 FTA에 대해 물어봤다.

"FTA가 뭐냐? 자유무역협정이죠. 그런데 한미FTA는 한국은 자유롭게 만들고 미국은 개방을 안 한다는데서 말이 안 되는 협상입니다. 또 얼마나 졸속으로 협상을 진행중인지 4대 선결조건만 봐도 알 수 있죠. 바둑으로 치면 프로9단 미국과 아마9급 한국이 게임을 하면서 한국이 네 수를 접어주고 시작하는 셈이죠."

허영구 부위원장은 거침없이 한미FTA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했다.

"협상과정의 비민주성도 문제점이죠. 협상 자체를 비공개로 진행하고 있고, 협상 과정에서 각 분야 이해 당사자들의 참여가 전혀 없었습니다. 겨우 두차례 진행된 공청회도 형식적인 거였구요."

이밖에도 허 부위원장은 2003년부터 진행된 노무현 정부의 FTA 로드맵과 한미FTA가 체결될 경우 국내 산업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사이 지역에서 온 농성단이 속속 도착했다.

오후 3시, 한미FTA저지 범국본 2차 단식농성단 발대식이 시작됐다. 10여명이었던 농성단은 50여명으로 늘었다. 새로 모인 농성단은 부산역, 경남도청, 경북도청 등 전국에서 150여명이 단식농성에 들어갔고 한미FTA를 반대하는 기자회견과 성명서 발표가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세상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청와대 앞에서 단식 농성중인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가 지지방문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 앞에서 단식 농성중인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가 지지방문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 배민
발대식이 끝나고 농성단과 함께 청와대에서 13일째 단식 중인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를 지지방문했다.

경복궁을 돌아 청와대로 가는 길. 경찰이 막고 섰다. 지지방문자들은 돌아서 가야 한단다. 며칠째 단식 중인 시민들과 함께 가는 길이라 걸음이 느렸다.

20~30분을 돌아서 다른 방향 입구에 가니 또 한번 길을 막았다. 한번에 열명이상 들어갈 수 없단다. 그 사이 음식 배달하는 오토바이 아저씨와 인라인 스케이트을 탄 꼬마들은 경찰들 사이를 뚫고 자유롭게 지나다니고 있었다.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는 바람 막을 곳 하나 없는 곳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었다. 햇빛도 가리지 못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단식에 참가한 시민들을 보자 "이제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며 반가워했다.

지지방문을 마치고 농성장에 돌아오자 제법 찬바람이 불었다. 농성단이 늘어나면서 천막을 하나 더 치고 철야농성을 준비했다.

사람들이 늘면서 단식농성장은 제법 북적거렸다. 오가는 대화 가운데는 25일 범국민총궐기대회를 걱정하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반대여론이 높아지면서 "이제 조·중·동과 노무현 대통령만 남았다"는 희망도 엿보였다.

한미FTA저지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시민.
한미FTA저지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시민. ⓒ 정수철
저녁 7시 30분에 장소를 옮겨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는 여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이날 촛불문화제를 지지하기 위해 참석한 문정현 신부는 연설에서 "지금 이렇게 단식하고 촛불을 밝힌 우리가 있어 조금씩 세상은 변하고 있다, 변화는 반드시 온다, 한국과 미국이 평등한 관계를 이루도록 조금만 더 버티자"며 농성단을 격려했다.

촛불문화제를 마치고 열린시민공원에는 어둠이 깊어지고 있었다. 얇은 비닐 한 겹으로 바람을 막기는 했지만 아직은 싸늘한 봄바람이었다.

20일 아침 8시, 단식농성단은 다시 거리로 나섰다. 농성단은 광화문 주위를 돌며, 한미FTA의 문제점을 알리는 홍보물을 시민들에게 전달하며 단식농성 9일째를 맞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종렬 범국본 공동대표가 한 말이 떠올랐다.

"10여명으로 시작한 단식농성단이 1주일만에 100여명으로 늘었다. 이제 곧 100명이 1000명이 되고 1만명이 될 것이다. 민중들이 일어서면 반드시 FTA는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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