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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 세명대 교수의 요한복음 강의가 공중파를 타고 세간에 전해지면서, 요즘 종교계에서는 그의 종교적 해석을 둘러싼 '이단 논쟁'이 뜨겁다. 특히 이를 두고 보수교계를 대변하는 '한국교회언론회'는 "2세기에 나타난 마르시온의 이단 사상과도 일맥상통하다"며 "어이없는 발언을 즉각 중단하라"고 으름장을 놨다.

연일 쏟아지는 종교계의 '이단 논쟁'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그 사실의 진위여부를 떠나 같은 하느님을 말하면서도 서로 배치된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하는데 엄청난 힘을 소모하고 있는 종교계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일치와 화해 그리고 사랑'이란 그리스도인의 덕목은 어딘가 사라지고 '분열과 불신'이 난무하고 있는 우리 종교계의 현실 속에서, 이를 반성해보고 새로운 희망을 모색해 볼 수 있는 좋은 본보기가 있다.

바로 프랑스 동부 클뤼니 근처 작은 마을에 위치하고 있는 '떼제 공동체(The Taize Community)'다.

▲ 그리스도인의 '일치와 화해'를 위해 떼제 공동체를 창설한 고 로제수사(1915.5.12- 2005.8.16)
ⓒ 떼제 공동체
'떼제 공동체'의 창설자 고 로제수사는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화해'를 구체적으로 이루어가는 봉헌된 삶을 사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 생각했다.

2차대전으로 유럽이 분열되고 폐허가 되어가던 1940년, 그는 '화해'의 구체적 징표가 될 수 있는 수도공동체를 시작하고자 프랑스 '떼제'에 정착하게 된다. 그 후 6명의 형제들이 동참하였고, 10년여 동안 이 공동체는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 조용히 성장하였다.

첫 수사들은 모두 '프로테스탄트'였지만, 1969년부터는 가톨릭 신자들도 입회하였다. 또한 초창기 때부터 추구해온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모색하기 위해 1960년, 1961년에는 가톨릭 주교들과 프로테스탄트 목사들을 한자리에 초대하기도 했다.

이것은 종교개혁 이후 서로 다른 교파의 기독교 성직자들이 한 데 모인 첫번째 자리가 되었다.

'떼제 공동체'의 형제들은 삶의 봉헌과 공동생활을 통해 분열된 교회와 세상 안에서의 화해의 표징이 되고자 노력했고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위해서는 '단순과 청빈 그리고 겸손의 삶'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이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

떼제의 수사들은 '말과 이론'으로 사람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특별한 전례의식도 없이 촛불이 켜진 조용한 성전에서 그저 십자가를 바라보며 자신의 초라함을 고백하는 '침묵의 기도'를 드리고, 빵 한 쪽과 코코아차를 나눠 먹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

이는 교회의 대형화, 권력화, 세속화가 교회를 '분열과 불신'의 늪으로 몰고 간다는 그들의 메세지를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떼제 공동체'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 종교계의 만연되어있는 '분신과 분열'의 대결구도를 넘어 '그리스도인들의 화합'을 기원하고자, 지난 18일 서울시 강동구에 위치한 천주교 성내동 성당에서는 한호섭 요셉 신부의 집전으로 '떼제 미사'가 치러졌다.

▲ 네덜란드의 화가 램브란트가 그린 '돌아온 탕자'라는 그림이 성당 앞쪽에 걸려있었다. 오늘 미사의 지향을 알게 해준 그림이었다.
ⓒ 조정훈 (www.recomos.com)
성당에 들어서자 제일 눈에 띄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네덜란드의 화가 램브란트가 그린 '돌아온 탕자'라는 그림이었다. 이 그림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어떤 아들이 아버지한테서 재산을 받아 먼 객지로 떠난다.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가 준 재물을 술, 여자, 놀음 등 방탕한 생활로 탕진하게 되었고 남의 집에 더부살이로 연명하지만, 누구도 그를 동정하여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서야 아들은 정신이 들어 아버지에게 돌아가기로 마음을 정한다. 멀리서 아들이 돌아오는 모습을 본 아버지는 측은한 생각이 들어 달려가 누더기 차림의 아들을 스스럼 없이 따뜻하게 맞아준다. 그리고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인다. 하지만 밭에 나가 일하고 돌아오던 큰 아들은 이것을 마냥 못 마땅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큰 아들의 행동까지도 아버지는 좋은 말로 달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미사의 집전을 맡은 한호섭 신부(성내동 성당 보좌신부)는 "그림에서 흰 수염을 한 인자한 아버지의 모습은 하느님의 모습이고, 방탕한 생활을 하다 누더기 옷으로 나타난 아들은 하느님 안에서 서로 불신하고 화해하지 못하고 있는 죄많은 우리 그리스도인"이라면서 "화해와 평화 그리고 일치를 통해 하느님 안에서 평화를 이루자"고 떼제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에게 말했다.

이번 떼제 미사는 그동안의 전례의식을 벗어나 조용한 음악소리에 맞춰 짧은 구절의 '떼제 성가'를 반복하고 침묵의 기도를 드리는 정갈한 의식으로 진행되었다.

▲ 성당을 밝히고 있는 작은 초들처럼, 세상이 종교인들의 '화합과 일치의 빛'으로 밝혀지길 바래본다.
ⓒ 조정훈 (www.recomos.com)
성당 곳곳에는 그리스도인의 '일치와 화해'를 바라면서 신자들이 봉헌한 작은 초들이 조용히 성전을 밝히고 있었다.

자신을 낮춰 '단순과 청빈 그리고 겸손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화합을 소망했던 프랑스 떼제 공동체 고 로제 수사의 정신이 '불신과 분열'로 가득했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해져, 성전에 놓인 작은 초들처럼 세상을 '화해의 빛'으로 밝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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