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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다본 진사지앙의 모습. 상도협, 트레킹의 입구다. 물은 맑고 잔잔하다. 저 물이 흘러 협곡으로 들어가면 거센 물줄기가 된다.
내려다본 진사지앙의 모습. 상도협, 트레킹의 입구다. 물은 맑고 잔잔하다. 저 물이 흘러 협곡으로 들어가면 거센 물줄기가 된다. ⓒ 최성수
리지앙(麗江)은 생각할수록 그리운 곳이다. 처마를 마주 대고 이어져 있는 고풍스런 집들 하며, 윤이 나도록 반질반질한 골목골목의 바닥 돌, 그 길 위에 울리는 나시족 사람들의 음악만으로도 나는 리지앙을 눈앞에 환히 그려낼 수 있다.

나는 지금까지 리지앙을 두 번 찾았다.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다. 살아가면서 같은 곳을 한 번 가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리지앙은 세 번째 방문이니, 내게는 큰 인연의 땅이다.

첫 번째는 배낭을 메고 쿤밍에서 출발해 따리(大理)를 거쳐 리징앙에 왔었다. 리지앙에서는 위룽쉐이산의 윈산핑(雲杉坪)과 빠이수웨이허(白水河)를 여행했다. 그리고 루구후(瀘沽湖) 구경도 했다. 두 번째 여행의 리지앙은 리지앙의 목표가 아니었다. 샹그리라를 가기 위해 잠시 머문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의 방문은 오직 후타오샤(虎跳峽) 트레킹을 위한 것이다. 기왕의 두 번의 방문에서 마음만 두고 가지 못한 곳이 후타오샤였다. 아니, 첫 번째 방문 때 후타오샤를 맛 보기는 했었다. 그러나 시간의 제약 때문에 트레킹을 하지는 못하고 오른쪽 아랫길을 통해 그저 상도협만 맛보기를 한 것뿐이었다. 징홍에서 먼 길을 비싼 비행기 값을 물며 달려온 것은 거기 꼭 가보고 싶던 후타오샤가 있기 때문이다.

말을 타고 출발하다

위룽쉐산 정상의 바위 절벽. 바라볼수록 가슴이 턱 막히는 것 같은 풍경이다. 거기 내 마음같은 낮달 하나 떠 있었다.
위룽쉐산 정상의 바위 절벽. 바라볼수록 가슴이 턱 막히는 것 같은 풍경이다. 거기 내 마음같은 낮달 하나 떠 있었다. ⓒ 최성수
리장앙을 출발한 차 안에서 늦둥이는 내내 잠에 빠져있다. 낮은 징홍에서 갑자기 해발 2000미터가 넘은 리지앙으로 날아온 탓일까? 늦둥이 진형이는 내내 피곤함을 견디지 못하는 것 같다. 내심 걱정이 된다.

애초 이번 여행을 떠나면서 나는 진형이를 데리고 갈까 말까 한동안 고민을 했었다. 평소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녀석이라 험한 후타오샤 트레킹을 견뎌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된 것이다. 그러나 녀석은 무조건 따라가겠다고, 어서 관련 자료를 달라고 날마다 나를 보채기까지 했다.

'그래, 과외비 아낀 돈으로 여행 데리고 다닌다고 했으니 함께 가 보자, 가다 못가면 쉬어 가면 되지.'

나는 그런 생각으로 녀석을 데리고 떠났다. 남들 다 하는 과외도 안 시키고 학원도 안 보내는 대신 그럴 돈으로 함께 여행을 다니는 거라고, 나는 녀석에게 가끔 말하곤 했었다.

차가 후타오샤 트레킹의 출발지인 치아터우(橋頭)에 도착한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끊는데, 마부들이 잔뜩 몰려와 야단이다. 워낭 소리가 요란하다. 말을 타고 가라는 거다. 28밴드까지 120위안이란다.

진형이와 내가 각각 말을 한 필씩 빌려 탄다. 아무래도 먼 길을 다 걸어가기에는 진형이에게 무리가 될 것 같아서다. 혼자서 타라니까 녀석은 싫다고 도리질이다. 처음 타보는 말에 겁이 났나보다. 아빠도 말을 타고 갈 거라니까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말 위에 올라타서 보는 경치는 또 다른 풍경이다. 우리는 늘 자기 키의 높이에서 사물을 바라볼 뿐이다. 그러니 자신의 시선은 결국 키 높이의 시선인 셈이다. 늘 익숙한 시선에서 벗어나는 일에는 두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진형이도 그런 두려움 때문에 망설였을 것이다.

매표소 옆으로 강물이 흘러간다. 저 강지 진사징앙(金沙江)이다. 햇살도 따스하다. 마치 봄날 산천 유람을 가듯, 말 위에서 꺼덕이며 이곳저곳을 구경한다. 진형이는 말 타는 것이 영 불안한지 가끔 비명을 지른다. 자세가 편안해 보이지 않는다. 말고삐도 너무 꽉 쥐고 있다. 말을 끄는 마부가 연신 자세를 바로잡아주지만, 금방 삐뚤어지곤 한다.

봄이 오는 후타오샤 마을 풍경. 밭은 푸르고, 매화는 피어 히말라야에 봄이 오고 있다.
봄이 오는 후타오샤 마을 풍경. 밭은 푸르고, 매화는 피어 히말라야에 봄이 오고 있다. ⓒ 최성수
"허리를 펴고 똑바로 앉아봐. 말고삐 너무 꽉 잡지 말고."

내가 소리를 치니 다시 자세를 가다듬는다. 그러나 비탈이나 오르막길, 내리막길에는 어쩔 줄을 모른다.

"올라갈 때는 몸을 앞으로 숙이고, 내려갈 때는 뒤로 젖혀."

나는 걱정이 돼서 이런저런 지시를 아이에게 한다. 그러는 사이 길은 점점 위로 향한다. 하지만 급경사는 아니다. 그저 완만한 밭 사이를 천천히 오른다. 밭에는 꽃을 맺은 완두콩이 가득하다. 그 푸른빛이 더없이 싱그럽다.

내 말을 끄는 마부가 싱긋싱긋 웃으며 무어라고 말을 건다. 원체 중국어를 잘 못하기도 하지만, 사투리가 심해서인지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한참 산굽이를 오르던 마부가 산비탈의 집 한 채를 가리킨다.

"우리 집이다."

낡고 초라한 집이다. 가난이 집 전체에 배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보금자리이리라. 저 집에서 식구들과 함께 살아가는 그의 생활이 눈에 선하다. 제 집을 바라보는 나를 보고 마부는 환하게 웃고 있다.

삶이란 어쩌면 지극히 주관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마부의 행복과 불행을 모르듯, 마부 또한 나의 행복과 불행을 모르리라. 내 행복은 내 안에 있는 것! 마부는 자신의 집을 지나가며 내게 자신의 행복을 전해주고 싶었던 것이리라.

이 순간 나 또한 지극히 행복하다. 느릿느릿 걸어가는 말과 그 위에서 꺼떡이며 넉넉한 산 능선을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이 내 삶에 얼마나 될 것인가!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쉰다. 길에는 말방울 소리가 내 마음처럼 맑게 울리고 있다.

말과 사람이 지나가는 길에는 먼지가 자욱하게 인다. 그 먼지 또한 이 길에 가장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생이란 저 먼지처럼 잠시 일어났다가 스러지는 것 같으리라. 나의 온갖 생각을 아는 지 가끔 말은 투레질을 한다. 그 투레질조차 정겨운 것은 내가 지금 히말라야의 한 귀퉁이를 가고 있기 때문이다.

협곡, 그 아득한 길을 지나다

천길 벼랑 아래 진사지앙이 흐른다. 위룽쉐산과 하바설산의 사이 호랑이가 건너뛸만큼 좁다는 후타오샤.
천길 벼랑 아래 진사지앙이 흐른다. 위룽쉐산과 하바설산의 사이 호랑이가 건너뛸만큼 좁다는 후타오샤. ⓒ 최성수
언덕을 올라서자 발 아래가 아득하게 보인다. 그야말로 천길 단애(斷崖)다. 진사지앙이 눈부시게 푸른빛으로 흘러가고 있다. 물 가운데의 모래톱이 더없이 희게 빛난다. 아, 절로 감탄이 나온다. 가슴 한쪽이 가득 차오르는 것 같다. 저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 히말라야는 얼마나 오랜 세월 제 몸을 갈고 닦아 온 것일까? 나는 말에서 내려 한동안 진사지앙과 협곡의 아득한 풍경을 바라본다.

후타오샤는 진사지앙이 흐르는 계곡이다. 진사지앙의 양쪽으로는 하바쉐산(哈巴雪山)과 위룽쉐산(玉龍雪山)이 깎아지른 듯 솟아있다. 모두 히말라야 산맥의 일부다. 트레킹은 하바쉐산의 허리를 걷는 길이다. 그러니 눈은 진사지앙과 위룽쉐산을 바라보게 된다. 설산의 눈부신 흰빛과 강물의 가슴 막히는 푸름이 형언할 수 없는 조화를 이루어내는 곳이 바로 후타오샤 트레킹의 풍경이다.

칭하이성(靑海省) 서쪽의 커커시리(可可稀立)에서 시작된 양쯔강(揚子江)은 쿤룬산맥(崑崙山脈)과 탕구라산맥(唐古拉山脈)을 거쳐 쓰촨성(四川省)과 티벳의 경계에서 협곡으로 흘러든다. 이 물줄기는 리지앙의 스구(石鼓)를 지나면서 물줄기를 갑자기 북쪽으로 틀어버린다.

그 물줄기가 휘돌아 가는 지점이 바로 장강제일만이다. 첫 운남 여행 때 나는 장강제일만에서 넉넉하고 편안하게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본 적이 있었다. 저토록 부드러운 물줄기가 흘러 후타오샤 골짜기의 노도와 같은 물살을 이룬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티벳과 쓰촨성의 경계를 흐르는 양쯔강의 이름이 바로 진사지앙이다. 물줄기가 갑자기 북쪽으로 바뀌는 것은 원래 란창지앙의 수계였는데 강물의 두부침식(頭部侵蝕)으로 물길이 바뀐 때문이라고 한다. 자연 현상의 오묘함이 저토록 멋진 풍경 하나를 세상에 만들어 놓은 것이리라. 나는 아득하게 보이는 진사지앙의 물빛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맑은 진사지앙의 양 쪽에 위룽쉐산(해발 5596미터)과 하바쉐산(해발 5396미터)은 마치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그 두 산 사이로 진사지앙은 좁고 아득하게 흐른다. 천길 낭떠러지 끝에 보이는 강물의 푸르름. 후타오샤는 길이 16㎞의 협곡이다. 좁은 곳은 협곡 사이의 폭이 20미터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 좁은 틈을 물이 비집고 흐르니, 물소리가 거셀 수밖에 없다. 마치 물이 포효하는 것 같은 소리를 내는 곳도 있다. 산길을 굽이돌면 갑자기 마주치는 그 거대한 소리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다.

물의 폭이 가장 좁은 상도협의 한 곳에는 호도석(虎跳石)이 있다. 전설에 따라면 호랑이가 이 호도석을 딛고 건너편으로 강을 뛰어넘었다고 한다. 호도협은 호랑이가 건너뛴 골짜기라는 뜻이다. 정말 건너뛸 수 있을 것처럼 강의 이쪽과 저쪽이 가깝다.

구름이 걸린 위룽쉐산 봉우리. 보아도 보아도 질리지 않는 것은 저 산이 견뎌온 숱한 세월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까?
구름이 걸린 위룽쉐산 봉우리. 보아도 보아도 질리지 않는 것은 저 산이 견뎌온 숱한 세월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까? ⓒ 최성수
햇살은 따스하게 내리쬔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것 같은 날씨다. 그 햇살 속을 말은 천천히 걷는다. 말 위의 나는 졸음이 쏟아질 것처럼 한가롭다. 진형이도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좋은 경치가 나올 때마다 내게 보라고 소리를 친다. 산기슭에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은 집도 간간이 나타난다.

제법 몇 채의 집이 모여 있는 마을이 나타난다. 사람들도 눈에 띈다. 한 시간 반 가까이 온 셈이다. 그 집들 중 한 곳으로 들어가 점심 식사를 한다. 나시 게스트 하우스다. 벽에 옥수수를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마당에 앉아 먹는 점심은 볶음밥. 국수를 시켜 먹는 사람도 있다. 마당 한 곳에 한국 사람을 환영한다는 작은 글씨를 써 붙여 놓기도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오긴 오는가보다.

우리가 점심을 먹는 동안, 마부들은 집 밖 좁은 공터에 모여 담배를 피우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나와 진형이 둘만 탔을 뿐, 다른 사람들은 걸어왔으니, 그들은 여기까지 그냥 우리들 뒷 꽁무니만 따라온 셈이다. 한 푼 벌이도 되지 않았지만, 그들의 표정은 밝다. 히말라야에 깃들어 사는 사람의 넉넉한 품성 탓일까?

차마객잔에서 히말라야의 꿈에 젖다

차마객잔에서 본 일몰의 위룽쉐산. 햇빛 비치는 방향이라 눈은 녹고 노을은 아름답다.
차마객잔에서 본 일몰의 위룽쉐산. 햇빛 비치는 방향이라 눈은 녹고 노을은 아름답다. ⓒ 최성수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길을 나선다. 마부들은 여전히 말을 끌고 우리를 따른다. 워낭 소리가 히말라야 산 길에 경쾌하게 울린다. 길은 좁고 먼지 자욱하다. 지나갈 때마다 먼지가 푹석푹석 일어난다.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이 조금씩 이어지더니, 제법 가파른 길로 이어진다.

걸어오던 일행들이 힘에 겨운지, 한두 명 씩 말을 타기 시작한다. 그러자 마부들도 바빠진다. 그들의 얼굴에 신이 난 표정이 드러난다. 지금까지 말을 끌고 온 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그래도 몇몇은 걷기를 고집한다.

"이 말 이름이 화메이다."

내 말을 끌던 마부가 갑자기 말 이름을 가르쳐준다. 오르막길에서 미적대는 말을 보고 내가 마부의 흉내를 내 "화메이 취" 하자 그가 웃으며 입을 연 것이다. 화메이가 무슨 뜻이냐고 하니 뭐라고 설명을 하는데,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저 말은 이름이 뭐냐?"

진형이가 탄 말을 가리키며 묻자 까만 얼굴의 마부가 다시 싱긋 웃는다. 이가 유난히 하얗게 보인다.

"저 말도 화메이다."
"이름이 같다고?"

내가 의아해 하며 고개를 가로젓자 마부가 다시 설명을 해 준다.

"두 말은 형제다. 그래서 이름이 같다."

'화메이, 화메이?' 나는 입속으로 중얼거려본다. 어떤 뜻을 지닌 이름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의 설명을 듣고 나자 말이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나는 갈기를 한 번 쓰다듬어 준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말은 가파른 산길을 잘 올라간다.

산비탈에 자리잡은 마을. 그들은 이 깊은 산 속에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고 있었다.
산비탈에 자리잡은 마을. 그들은 이 깊은 산 속에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고 있었다. ⓒ 최성수
길은 꼬불꼬불 가파르게 이어진다. 그저 한 사람 혹은 말 한 필이 겨우 지나갈 만큼 좁다. 여기가 바로 28벤드다. 스물여덟 구비로 굽은 길이라 말도 허덕인다. 그 힘든 길을 마부들은 말을 끌며 신나게 올라간다. 그들의 얼굴이 온통 땀으로 범벅이다. 돌아보니 한 둘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말을 타고 있다. 해발 2670미터니 산소 부족으로 걷기에는 힘든 곳이리라.

거의 정상 부근에서 말들이 멈춘다. 마부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여기 까지다. 내려다보니 아득하게 진사지앙이 협곡 사이를 흐르고 있다. 아래가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팻말이 하나 보인다. 사진 찍는데 돈을 내라는 것이다. 대단한 상술이다. 전망을 팔아 돈을 벌다니. 그냥 약간 옆에서 찍고 만다. 그래도 경치는 그만이다.

잠시 쉰 뒤, 마부와 작별을 하고 길을 재촉한다. 정상을 넘어가기 위해 조금 더 올라가야 하는 길이다. 진형이는 숨이 찬지 조금 걷다가 쉬고, 조금 걷다가 쉬며 헉헉거린다. 그래도 투정 한 번 부리지 않고 잘 걷는 편이다.

정상을 넘어서자 내리막과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일행은 모두 앞서 가고, 걸음이 늦은 진형이를 데리고 나는 천천히 그 길을 걷는다. 걷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한 굽이를 돌면 또 새로운 경치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 경치는 늘 같은 협곡과 강물이지만, 그러나 보는 위치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물빛도, 산 빛도, 나무와 풀도 같으면서 다른 이 자연의 이치는 얼마나 오묘한 것일까? 어떤 곳에서는 가슴을 도려낼 것처럼 거세게 들리는 물소리가 어떤 굽이를 돌면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소나무 군락을 지나면 활엽수들이 우거져있고, 그 활엽수 사이로 드문드문 강물이 빛나고 있다.

여름의 흔적인지, 돌무더기가 흘러내려 길을 막았던 자취도 있다. 지난 여름에도 이 길을 가던 관광객이 돌무더기에 미끄러져 죽었다고 한다. 여름에는 그만큼 위험하다는 후타오샤 트레킹, 그러나 겨울은 걷기에 적당할 정도로 좋은 날씨와 풍경을 보여준다.

금방이라도 굴러떨어질 것 같은 벼랑의 마을. 아래로 흐르는 진사지앙의 물소리가 그들의 잠을 깨울 것 같다.
금방이라도 굴러떨어질 것 같은 벼랑의 마을. 아래로 흐르는 진사지앙의 물소리가 그들의 잠을 깨울 것 같다. ⓒ 최성수
그 길을 걸으며 나는 진형이와 온갖 이야기를 나눈다. 살아오면서 단 둘이 이렇게 숱한 이야기를 나눈 적은 처음이다. 힘든 일을 견뎌내야 기쁜 날도 오는 법이라고, 나는 힘겨워하는 진형이를 다독거린다. 숨찬 산굽이를 넘으니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도 나타나는 법이라는 이야기도 한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내가 죽고 이 녀석이 더 생각이 깊어지는 나이가 되면, 어린 날 저를 데리고 히말라야 산자락을 걸었던 오늘을, 그 길을 함께 걸었던 아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마음 한 자락에 묻어본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을까? 내가 '숨차지?' 하고 묻자 녀석은 씨익 웃으며 대답한다.

"죽을 만큼 숨차지는 않아요."

일행은 자취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진형이와 나는 천천히 숲 길을 걷는다. 걷다가 마주치는 온갖 풍경들을 이야기하며 아들과 걷는 이 히말라야 산길을, 아마 나는 앞으로의 내 생애 내내 기억할 것이다. 그 봄 같은 겨울 어느 날의 설산과 좁은 산길을, 그리고 아득하게 벼랑 아래서 몸 굽이 틀던 진사지앙의 물줄기를, 산 속에서 환하게 웃던 늦둥이의 환한 모습을 말이다.

28벤드에서 한 시간 반 넘게 걷자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차마객잔(茶馬客棧)이 보인다. 오늘 하루 우리가 묵어 갈 집이다. 이미 일행들은 짐을 마당가에 앉아 쉬고 있다. 고개를 드니 바로 눈앞에 위룽쉐산의 봉우리가 우뚝하다. 기가 막힌 절경이다. 맞은 편 위룽쉐산 바위 봉우리를 코앞에 볼 수 있는 차마객잔의 마당에 둘러앉아 숨을 고르고, 맥주를 마신다.

가슴이 절로 뻥 뚫리는 것 같다. 사방은 고즈넉하다. 햇살은 자락자락 내려앉는다. 세상 끝 어디쯤에 갑자기 던져진 것 같은 고적감도 밀려든다. 이 산 속, 이 자리에서 한 열흘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저 산을 바라보며 머물러도 좋을 듯싶다. 머물러 있고 싶은 곳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러나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길이 눈앞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차마객잔에서 머무는 1박 2일 동안 나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저녁으로 히말라야 산에서 방목한 토종닭 백숙이 나온다. 이 집 백숙은 한국인 여행자가 가르쳐준 솜씨라는데, 우리나라의 것과 비견할 만하다. 삶아 나온 닭은 검푸른 빛이다. 오골계인가 물으니, 오골계는 아니고 이곳 닭의 색깔이 원래 그렇단다. 까짓, 오골계로 알고 먹으면 되겠지, 하며 손을 댄다. 맛이 그만이다. 쫄깃쫄깃하고 고소한 닭의 육질. 게다가 김치도 있고, 닭죽도 있다. 닭고기도 좋지만, 닭죽이 입에 더 맞아 서너 그릇을 먹고 나니 배가 터질 것 같다.

진형이도 정신없이 닭고기를 먹고, 닭죽도 먹는다. 티벳 사람들이 담가 먹는다는 전통 백주도 내온다. 한 모금 마시니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느낌이 찌르르 전해온다. 독한 것치고는 뒷맛이 의외로 순하다. 백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몇 잔 마신다.

"진형아, 배부르지."

일행 중 한 명이 웃자, 포만감에 볼이 발그스름해진 녀석이 배시시 웃으며 입을 연다.

"터질 듯 배부르지는 않아요."

그 대답에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터트린다. 웃음소리가 노을 지는 후타오샤 골짜기를 맴돌다 사라진다. 아, 가슴 가득 차오르는 희열은 이곳이 적막 천지, 히말라야의 산중이기 때문이리라.

길은 아득하게 산 허리에 걸려있다. 그 길을 걸어가면 세상 끝으로 갈 것 같다. 늦둥이 진형이가 지친 표정으로 그 길에 서 있다.
길은 아득하게 산 허리에 걸려있다. 그 길을 걸어가면 세상 끝으로 갈 것 같다. 늦둥이 진형이가 지친 표정으로 그 길에 서 있다. ⓒ 최성수
저녁 후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자, 다시 마당에 술상이 차려진다. 위룽쉐산 너머로 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다. 장엄하다. 노을을 한 번 보고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바람 한소끔 쐬고, 술 한 잔 마시고, 그렇게 후타오샤의 밤이 깊어간다. 누가 시작했는지, 서로 돌아가며 노래 한 자락씩 부른다. 부르는 노래는 저 80년대, 치열한 삶을 담아낸 그러나 슬픈 노래들이다. <광야에서>는 <그날이 오면>으로 이어지고,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로 넘어간다.

정말 우리가 걸어온 길은 무엇이었던가? '오랜 고통 다한 후에', 정말 우리는 '한 줄기 강물로' 흐르고 있기나 한 것일까? 누군가 부르는 <그날이 오면>의 노랫말을 듣다 나는 갑자기 눈물이 글썽해진다. 한때는 거리에서 목청껏 자유와 민주를 외쳤다.

때론 경찰서 유치장에서 밤을 새우기도 했다. 직장에서 쫓겨나 한낮의 햇살 속에 멍하게 서 있기도 했다. 그렇게 걸어온 우리의 길은 무엇이었던가? 그런 애상에 젖는 것은, 이곳이 히말라야 깊은 산중이라는 것, 칠흑 어둠 속 깎아지른 벼랑 끝에 서 있다는 것 때문이라고 나는 자신에게 살며시 위로의 말을 건넨다.

술자리는 이어져 주방의 난로 곁으로 자리를 옮기고도 계속된다. 차마객잔의 주인인 허 선생이 티벳 술을 신나 통에 가득 내온다. 적당히 얼큰해진 나는 술자리를 나와 캄캄한 위룽쉐산을 한 번 올려다보고, 방으로 들어와 자리에 눕는다. 나무로 지은 집이라 방음은 전혀 안 되지만, 향긋한 소나무 향이 콧가에 그윽하게 머문다.

그 내음에 젖어 저절로 깊은 잠에 든다. 그 밤 꿈속에 나는 히말라야의 잔도(棧道)를 걷는 마방(馬幇)이기도 했고, 후타오샤를 건너뛰던 호랑이이기도 했다. 아니, 무엇보다도 히말라야에서 작은 밭 일구며 사는 얼굴 검게 탄 범부(凡夫)였다. 밤새도록 그런 꿈속에서 나는 죽음보다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황소걸음으로 티나 게스트 하우스까지

아침에 일어나 어제 남은 닭죽과 삶은 계란으로 요기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언덕을 오르자 길은 산허리를 따라 길게 이어져 있다. 매화 꽃 피고 보리 이삭 파랗게 돋아난 마을을 지나자 벼랑으로 좁은 오솔길이 나타난다.

모두들 앞서 가버려 진형이와 나만 뒤에 남아 걷는다. 어제 트레킹이 힘겨웠는지, 진형이의 걸음이 한없이 느리다. 그래도 불평은 없다.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녀석과 나눈다. 간간이, 후타오샤를 넘은 아이는 네가 가장 어릴 거야, 하며 녀석의 힘을 북돋워 준다. 내 말에 힘을 얻었는지, 아니면 앞서 간 엄마를 놓칠세라 걱정이 되는지, 녀석의 걸음이 조금 빨라진다.

길 가로 무덤이 몇 기 놓여있다. 산비탈에 비석 대신 돌을 쌓아놓은 주위로는 고사리를 꺾어 울타리를 쳐 놓았다. 이 깊은 산중에 돌을 깎아 비석을 만들기는 힘들었으리라. 돌을 쌓아 만든 아담한 무덤이 정겹기까지 하다. 히말라야 산자락에 어깨 기대고 살아온 사람들은 죽어서도 저렇게 소박한 모습으로 남아있구나.

관음폭포. 어디서 저 물은 흘러오는 것일까? 세상 끝?
관음폭포. 어디서 저 물은 흘러오는 것일까? 세상 끝? ⓒ 최성수
앞선 사람들은 자취도 없다. 아무도 없는 길을 나와 진형이 둘이만 걷는다. 한 굽이를 돌면 걸어온 길과 똑같은 좁은 길이 산허리로 이어져 있다. 돌아보면 걸어온 길도 벼랑 위에 아득하게 걸려있다.

나는 지쳐 땀범벅이 된 진형이의 손을 꼬옥 잡아본다. 이 아이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굽이 길을 걸어야 할 것인가. 삶의 굽이와 맞닥뜨렸을 때, 진형이가 아빠와 걷던 이 산길을 기억하며, 아빠와 나눈 이야기를 떠올리면 좋겠다는 생각에 나는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후타오샤 트레킹은 어쩌면 우리 부자에게는 행복한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길은 벼랑 끝에 계속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다. 아래로는 아득한 비탈, 그 비탈의 군데군데 집이 몇 채 놓여있다.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것 같은 집이다. 이렇게 험한 곳에도 사람은 자리 잡고 사는 존재다. 집이 있는 곳에는 호스나 나무로 된 파이프가 있다. 그 파이프는 산꼭대기로 연결되어 있다. 산 위의 물을 집으로 끌어들여 쓰는 모양이다. 생존을 위한 힘겨운 몸부림이 그 파이프를 통해 느껴진다.

얼마를 걷다 보니, 아슬아슬한 바위 벼랑 아래 몇 채의 집이 있다. 오지산(五指山) 마을이다. 아마 뒷산이 오지산이리라. 그래서인가, 바위 봉우리가 다섯 개다. 저렇게 큰 바위 아래 마을을 만든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정도다. 금방이라도 뒷산 바위가 무너져 내릴 것 같다.

그런데도 집 곁의 밭에서 야채 밭을 가꾸는 아주머니들은 태평하기 그지없다. 사람은 자신의 삶의 뿌리를 내린 곳이 세상에서 가장 평안한 곳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이방인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위험해 보일 뿐이리라.

몇 구비 산길을 돌자 길 저편으로 거대한 폭포가 나타난다. 깎아지른 90도 절벽 위에서 아래로 제법 큰 물줄기가 떨어지고 있다. 길은 그 폭포 허리로 나 있다. 관음폭포다. 올려다보니 위는 그냥 바위산이다. 저런 바위산에서 어떻게 이 많은 물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일까? 폭포 아래로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시원하다.

"와, 염소다."

폭포 옆으로 깎아지른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염소 떼들이 달라붙어 풀을 뜯어먹고 있다.

"어떻게 저런 데서 풀을 뜯지요?"

녀석은 신기한지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 구경을 한다. 대단한 생존력이다. 폭포를 지나자 조금 오르막길이 나오더니, 이내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잘못 발을 디디면 그대로 굴러 떨어질 것 같다. 진형이도 나도 조심조심 발걸음을 뗀다.

이제 계속 내려가면 트레킹의 종착지인 티나 게스트 하우스가 나온다. 눈으로는 금방일 것처럼 가까워 보이지만 걸어도 걸어도 도무지 길이 줄지 않는 것 같다. 진형이도 더 지친 발걸음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된다며, 그런 아이를 다독거린다.

내리막길에는 곳곳에 불탄 흔적이 있다. 산불일까, 아니면 일부러 태운 것일까? 저 불탄 자리에 또 새싹이 돋아나리라. 그 새싹으로 히말라야의 산천이 푸르러지고, 봄이 오리라. 나와 진형이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조금씩 조금씩 걸어 내려온다. 아침에 떠나 꼬박 네 시간 남짓 걸어온 셈이다.

티나 게스트 하우스 마당에 다가서자 일행들이 모두 박수를 쳐 준다. 진형이의 트레킹 무사 성공을 축하하는 박수다. 힘든 길을 걸어와서인지, 밥맛이 꿀맛이다. 진형이 녀석도 허겁지겁 밥을 먹는다.

얼마간의 휴식 뒤 다시 트레킹의 출발지였던 치아터우로 차를 타고 돌아온다. 차가 다닐 수 있는 아랫길이다. 그러나 말이 길이지 가는 것 자체가 공포스럽다. 길은 곳곳이 무너져 돌더미가 쌓여있고, 길 위로는 집채만한 바위가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다.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것 같다. 어떤 곳은 바위 벼랑 아래로 길을 뚫어놓았다. 마치 바위 지붕 아래로 차가 달리고 있는 것 같다. 아래는 아득한 절벽의 협곡, 그 사이에 진사지앙이 흐른다.

리지앙, 그리운 흔적은 사라지고

치어터우를 거쳐 다시 리지앙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고개를 돌려 내가 걸었던 후타오샤쪽을 바라본다. 거기 나와 진형이가 1박 2일 동안 함께 걸었던 길이 눈앞에 선히 그려진다. 봄 햇살처럼 따사롭던 길과, 매화꽃 핀 마을, 가슴 뛰게 우뚝 솟아있는 위룽쉐산 바위 벼랑과 늦둥이와 나눈 온갖 이야기들도 고스란히 살아나는 것 같다. 아마 그 아득한 풍경들은 오래도록 내 기억속에 남아 리지앙을, 후타오샤를 기억하게 만들 것이다.

리징앙으로 돌아와 객잔에 든다. 용원객잔의 삐걱거리는 이층 방에서 후타오샤의 물소리를 환청처럼 들으며 그 밤,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여닫이 창문을 여니, 거짓말처럼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은 잠깐 기와집 지붕 위로 내리더니, 이내 빗방울로 바뀌었다. 갑자기 모든 것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내가 걸었던 그 길도, 내가 본 모든 풍경들도 어쩌면 저 스러지는 눈처럼 덧없는 것이 아니었을까?

아침, 우산을 쓰고 나는 고성 밖 언덕길을 올라간다. 그 길은 몇 해 전 여름 내가 묵었던 민박집 같은 숙소가 있었던 곳이고, 숙소 밖 시앙빠라오라는 식당이 있던 곳이다. 그때 시앙빠라오의 젊은 부부와 통하지 않는 말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사천성 시창(西昌)에서 왔다는 그 신혼부부는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자리 잡고 힘겨운 삶을 견뎌내고 있었다. 내게 '시창에 가봤느냐?'며 고향에 대한 자랑과 그리움을 아련히 내비치던 남편 지앙용타오(蔣勇濤)와 임신 3개월의 부인이 소박하게 꾸려가던 작은 식당은 내 기억 속에 그리움으로 남아 있었다.

나는 빗줄기 속으로 그리운 사람을 찾아가듯 시앙빠라오를 향한다. 그러나 시앙빠라오는 그 자리에 없다. 다른 식당으로 이름조차 바뀌어 있고, 내가 궁금한 얼굴로 새 식당 주인에게 묻자 그는 아침부터 텔레비전에 눈을 박은 채 고개를 가로젓는다. 시앙빠라오가 있던 허름하던 길가로는 새로운 가게들이 많이 생기고, 식당도 몇 군데 더 늘어났다. 고성의 상가들이 점점 밖으로 넓혀지고 있는 것 같다.

"전 사장이었던 지앙용타오를 아느냐?"

내 말에 새 식당 주인은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무어라고 길게 대답한다. 도무지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나는 허전한 발걸음을 돌리고 만다. 마치 아끼던 보물 하나를 잃어버린 것 같다. 부인이 임신 3개월이었는데, 아니는 잘 낳았을까? 가게 세가 올라서 다른 곳으로 갔나? 도시의 팍팍한 삶을 견뎌내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간 것일까? 내 마음 속에서는 그런 궁금증과 그리움이 뒤섞여 일어난다.

아, 사람은 얼마나 헤어지기 쉽고 만나기 힘든 존재인가! 리지앙 하면 나는 늘 시앙빠라오의 젊은 부부를 떠올렸는데,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는데, 그 생각은 얼마나 헛된 것이었던가!

갔던 길을 되짚어 내려오는 길, 빗줄기는 촉촉하게 고성을 적시고 있다. 성 입구에는 목련이 빗줄기에 젖고 있다. 누군가 내놓은 화분에서는 매화가 곱게 피어 아침을 밝히고 있다. 목련과 매화꽃을 보는 마음이 더 허전하다.

어쩌면 앞으로 나는 리지앙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 구석 허전함을 상처처럼 되살려 낼지 모른다. 리지앙, 그곳은 아들과 함께 걸었던 후타오샤의 뿌듯함과 동시에 사라져버린 시앙빠라오의 그리움이 공존하는 곳이니까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리지앙 및 후타오샤에 대한 더 많은 사진은 제가 운영하는 카페 http://cafe.naver.com/borisogol.cafe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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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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