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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하나의 절대운명 작품 앞뒤에는 수화자가 등장한다. 사진의 수화는 운명을 뜻한다. 둘이면서 동시에 하나인 운명과 의지 그것이 만나면 절대운명이 되는 것일까?
ⓒ 김기

부와 명예. 현대 인간사회의 최고덕목이자 목적이 돼버린 듯해도 흔치 않게 그런 것들을 과감하게 버린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많고, 그것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 잠들지 않는 욕망이기에 이제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존경보다는 의구심이 먼저 들게 된다.

눈과 비가 오락가락하던 지난 13일 토요일.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서 그런 춤꾼 하나를 만날 수 있었다. 이병헌 등과 공채동기로 TV탤런트 생활을 10년 하다가 마치 연어가 그렇듯이 춤판으로 돌아온 무용가 조하나. 무용계로 회귀한 지가 다시 외도한 세월에 가까워지도록 그녀가 스스로 만든 무대는 이번이 두 번째.

직접 대본과 안무 그리고 연출까지 도맡아서 올린 그녀의 창작춤의 제목은 ‘절대운명’이었다. 일상적이지 않은 그녀의 이력 탓에 연습실도 찾아가고, 리허설부터 본 공연까지 지켜보면서 50분 가량의 작품을 통해 그녀의 떠남과 돌아옴을 이해하고자 했다. 그 결과 얻어진 결론은 춤 추는 일은 팔자가 시켜서 하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 큰 키에 긴 팔다리를 가진 조하나의 춤은 이번 작품에 많이 나오진 않지만 인상적이었다
ⓒ 김기

춤을 춘다고 누구나 최승희가 되고, 모두 오르고자 하는 최고봉에 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 담보 없이도 수많은 사람들이 발이 부르트게 춤을 추는 것은 오로지 팔자라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고정좌석이 겨우 74석인 아주 작은 실험극장에서 두 번의 공연을 위해 몇 달 동안 머리를 쥐어짜고, 가슴을 치면서 작품 하나를 만드는 일은 비단 조하나만의 일은 아니다. 모든 춤꾼들이 그처럼 같은, 외롭고 쓸쓸한 작업에 매달려 한 해 두 해를 보내는 것이다.

조하나는 자신의 경험에서 얻어진 강한 운명의 작용을 춤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것 같다.운명만으로는 부족해서 절대운명이라 이름 붙인 이번 그녀의 작품에서는 주제의 피할 수 없는 무거움 말고도 발견되는 것이 또 있었다. 여느 춤꾼들과는 사뭇 다른 경험을 가진 그녀였기 때문이지 몰라도 작품 속에서 표현되는 춤의 구성과 오브제의 활용 등이 한국춤 창작작품들의 경향과는 구별지어졌다.

결론부터 짓는다면, 조하나의 창작에는 컨템포러리와 제의성이 적적히 안배되어 있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원시와 포스트 모던이라는 극단의 두 요소는 절대로 화합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모던의 이후, 이후, 이후는 결국 원시가 가진 무한한 발전과 맞닿는다는 점에서 불가피한 만남이다.

▲ 조하나 창작춤 절대운명 한 장면
ⓒ 김기

특히 한국춤이 신무용으로 정착된 근현대 이전에 풍부하게 담고 있던 제의성이 모던한 구성 속에서 흔들림 없이 표출됐다는 점은 칭찬할 요소가 분명하다. 궁중정재에도 이념과 철학 그리고 종교적 상징이 짙은데 민속춤은 더 말할 나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신무용의 정착 이후 한국춤에 제의성보다는 밋밋한 관념이 지배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고 창작에서 요구되는 자유로운 아이디어도 크게 발견되지 않았다. 조하나의 작품 속에서는 희미하지만 그런 경향에서 비켜가고자 하는 순수 창작의지가 엿보였다.

많은 경우 한국창작춤에서는 이 두 가지 요소의 결합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한국춤에는 서양무용과 달리 중요무형문화재라는 아주 커다란 중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춤을 추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두 가지 무형문화재 이수 경력을 필수적으로 요구받고, 그에 따라야 한다. 무형문화재가 춤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지정된 까닭에 이수자들은 보유자와 같은 춤을 요구받고 또 그것을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사람이 다르고, 인생의 경험이 다른데 어찌 같고자 한다고 같아지겠는가. 한국춤이 가진 단지 정형의 옛춤만 춘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그런 경향은 분명 개선되어야 할 요소이다. 그러나 그 경향은 많은 경우 창작작품에도 그대로 반영되는 편이다. 조하나의 많지 않은 두 번째 창작무대에서 그런 경향과 다른 점을 발견한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었다. 외부 조력없이 혼자서 다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 한국 창작춤에서 흔치 않은 콘템포러리 요소를 조하나의 작품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 김기

그렇기 때문인지 아쉬운 부분도 발견됐다. 우선 음악과 조명이 작품의 원활한 진행에 맞춰지지 않아 군데군데 삐걱거렸으며, 조하나의 작품 구성도 상징과 오브제의 연결이 거친 부분이 보였다.

예컨대, 현대적 구성의 춤이 끝나고 이렇다 할 연결고리 없이 갑자기 빨간천과 함께 굵은 새끼줄을 끌고 나오는 주제의 강요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초연작인 만큼 후일 수정과 보완을 통해 좀더 완성된 작품을 기대할 수 있는 위안은 있었다.

어릴 때 춤을 추기 시작해서 대학교 1학년에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다가 10년만에 다시 무엇에 홀린 듯 춤판으로 돌아온 조하나. 10년 연기자 생활이 그의 동기만큼의 명성을 가져다 주진 않았지만 그때의 수입과 생활은 현재 춤꾼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족했다. 밝고 화려한 브라운관을 떠나 좁고 어두운 무대로 돌아온 그녀는 그래도 춤을 추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을 한다.

어디 조하나 한 명뿐이겠는가. 수백 수천의 조하나가 먼지 투성인 무대에서 밥도 거른 채 춤을 추고 녹초가 되더라도 끝끝내 그 자리를 지키기에 한국에 아직도 순수예술이 남아있고, 미래에도 그런 후배들이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 생각없이 유행을 좇아 뮤지컬이니, 비보이니 소위 ‘뜨는 상품’을 따라다니지만 그들의 성공의 배경에 순수예술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안무가 있다고 작품이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조하나와 함께 무대를 만든 좋은 무용수들이 있었다. 이정화, 이미희 등 총 6명이 출연했다
ⓒ 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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