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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덕진
부득이한 가정사때문에 쳐다보기도 싫은 미국 땅을 1년에 한 번씩 밟고 있다. 올해는 거기에 사연이 하나 더 겹쳐 하와이를 먼저 밟고, LA로 옮겨 가게 되었다. 한창 바쁘고, 투쟁하는 시기에 혼자 휴가를 떠나오게 되어 마음이 무겁던 차에, 내 평생 화두인 '소극적 투쟁'이라는 운동방식을 미국에서도 적용시켜 보기로 하였다.

하와이 최대 쇼핑몰 주차장을 시작으로, 명품매장 앞, 우리 선조들이 일제때 강제징용으로 끌려와서 모진 노동으로 죽어간 파인애플 농장 앞, 유명한 관광명소들, 와이키키 해변가 등에서 FTA와 전쟁에 반대하는 깜짝 1인시위를 진행하기로 했다.

특별히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피켓을 잘 접어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시간이 나면 펼쳐서 들고 서 있거나, 들고 길을 걷거나, 이동시 차의 유리창에 끼워두거나 하면서 그냥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BRI@루이비통 경비원에게 끌려갈 뻔도 했지만, 버스정류장에 서 있을 때는, 버스타고 가던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도 했다. 간혹 질문을 던지는 야속한 이들에게 유창한(?) 영어로 설명하느라 진땀도 빼고 있다.

3월 8일부터 시작되는 한미FTA 8차 협상에서 대부분의 쟁점들이 타결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동지들이 총력 투쟁을 결의하고 있다는 것을 듣고, 난 조금 "덜 소극적 투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캘리포니아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는 로컬 대형마트 몇 곳(Albertson's, Ralph's, Vons, etc)을 돌며, 조금 덜 소극적인 게릴라 시위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운전을 담당해주던 내 사촌 동생 Sean은 작년에 UCLA에 입학한 집안의 희망인데, 미국 시민권을 얻기 위해 얼마전 시험과 인터뷰를 마쳤기 때문에, 운전만 시켰다.

사진 촬영은 미국 어학연수를 위해 비자를 받는 과정에서 철저한 '반미주의자'가 된 내동생 김경진이 맡았다. 그는 굉장히 설렜다고 말했다. 특히 내가 일부러 CCTV 카메라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겠다고 하자, 진열장 사이를 빠른 걸음으로 오가며, 경비원이 오나 망을 봐주었다. 다행인지 마켓들에서는 잠시 멈춰서 쳐다보는 이들은 있었지만, 시비를 거는 미국인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FTA가 뭔지 관심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미국 동네 마켓에서도 엄청난 양의 고기들을 볼 수 있다. 대부분 포장육인데, 그 가격이 매우 싸다. 내 생일날 미국에 있는 온 가족들이 모여 LA 갈비 BBQ 파티를 했는데, 고기를 다 먹은 후 할머니로부터 충격적인 증언을 들어야 했다. 고기를 양념하기 전, 한 조각 한 조각 흐르는 물에 손으로 박박 비벼 닦아야 했다는….

ⓒ 김덕진
뼛가루가 굉장히 많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이강택 PD가 찍어온 미국 도축장의 전기톱을 보았던 나는, 혹시나 먹게 되었을지 모를 뼛가루를 씻어내기 위해 한국 마켓에서 4.3불에 판매되는 참이슬을 줄창 들이부었다.

미국으로 취업 이민을 온 지 1년이 조금 넘은 내 친구는, 미국에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인과 함께 쇠고기를 사다가 배터지게 먹었었다는 말을 했다. 한국에서는 비싸서 엄두도 못 내던 쇠고기를 양껏 먹을 수 있다는 현실에 기뻐하는 친구에게 미국 쇠고기는 광우병 위험이 있다더라고 지나가는 말처럼 속삭여 주었다.

캘리포니아에는 우리나라의 재래시장이나 동네슈퍼 같은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7/11 편의점들과 술과 담배를 파는 Liqour store들이 있을 뿐이다. 대부분 한 동네에 서너개씩 있는 대형마트에서 장보기가 이루어진다. 매우 싱싱해 보이는 과일과 채소들이 꽤 탐스럽다.

정말 엄청난 종류의 가공 육류들이 마켓을 가득 채우고 있다. 칠면조, 닭, 소, 돼지 등으로 만든 소시지와 햄…. 베이컨과 각종 부위별 가공육…. 육류의 살과 피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포장방식은 사람들에게 "저것들을 집에 가져가서 불에 구워 먹고 싶다"는 충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듯하다. 저런 것들도 우리 동네 슈퍼에서 팔리게 되는 날이 곧 올 것 같아 두렵다.

인권활동가지만 연극과 영화에 대한 로망을 품고 있는 나에게 스크린쿼터 사수 싸움은 매우 절실했다. 많은 배우들과 감독들이 1인 시위를 하는 것이 화제가 되기는 했지만, 본격적인 한미FTA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한국영화는 미국에게 제물로 바쳐지고 말았다.

한국영화의 수준이 매우 높아졌고, 대박 영화도 늘어났지만, 여전히 한국영화의 제작 환경은 열악하며, 대박나는 몇몇 영화를 제외하고는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고 할지라도, 10개 미만의 스크린에서 일주일 미만 동안 걸렸다가 내려지는 일이 다반사이다. 미국 최대의 비디오 대여점 체인인 'Blockbuster Video'는 그 이름에서부터, 할리우드 대작들의 돈 냄새가 난다.

지금 미국에서는 <300>의 열풍이 대단하다. <글레디에이터>보다 큰 스케일과 재미있는 스토리라며 연일 매진이 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개봉했을 텐데…. 할리우드 초국적 자본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이 쏘아대는 문화침략 미사일들을 거부한다.

글리벡 싸움을 보기 전까지는 제약회사들의 횡포라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었다. 미국에서는 그냥 마켓에서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약의 종류가 엄청나다. 그리고 그 가격이 매우 싼데, 150알이 들어있는 타이레놀이 9불 정도에 판매되고 있는 것을 보면, 한국에서 비싸게 팔리고 있는 이 약이 매우 싸구려 약이라는 생각이 안들 수가 없다.

집안 대대로 물려받은 '속알머리 탈모'가 심각해져서 '프로페시아'라는 대머리인들의 '꿈의 약'을 사먹으려고 피부과를 찾았을 때, 처방전 한 번에 1만5000원, 약 28알에 6만6000원이라는 소리를 듣고 눈물을 머금은 적이 있다.

이 부분의 FTA 협상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우리와 늘 함께 했던 의사, 약사님들이 흰 가운을 입고 거리에 나와 "절대 안돼"라고 외치시는 것을 보면서, FTA 협상 이후 비싼 의료비와 약값 때문에 죽어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끔찍하기만 하다. 우리한테 비싸게 팔고, 자기 나라에는 싸게 팔고….

교육시장 개방은 사실 매우 두려운 일이다. 80~90년대 한국, 대만, 일본 등지에서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미국으로 유학왔다. 유학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간 그 엘리트들은 대부분 철저한 친미주의자들이 되어, 친미적인 정책을 입안하는 일에 앞장서고는 했다. 그들을 비꼬는 말로 'Banana Republic'이라는 말이 있다. 겉은 노란데, 까보면 속은 하얗다는 뜻이다. 물론, '바나나 리퍼블릭'은 미국의 유명 옷 브랜드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가뜩이나 대한민국의 공교육은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고, 돈만 조금 있으면 자식들을 미국에 유학을 보내려고 안달하는 부모들이 넘쳐나고, 영어마을이네, 영어수업이네 하면서 영어 맹신을 제도적으로 양산하고 있는 대한민국에, 미국 학교들이 들어와서 영어로 교육하고, 본토 대학과 교환수업을 하고, 대학원이나 MBA 진학에 특전을 준다고 하면 참 많이들 좋아하겠다.

엄청나게 넓은 UCLA의 캠퍼스에서는 UCLA라는 로고를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중에서 버클리를 이제 제치고 1등이 되었다는 UCLA의 교정을 돌아봤다. 그래도 대학인지라, 많은 내가 든 종이에 관심을 가지고 쳐다보곤 하였다. 학생회에서 부착한 것으로 보이는 '3·8 세계 여성의 날' 행사에 관한 선전물들이 곳곳에 붙어 있는 것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한미FTA 저지 싸움에 혼신의 힘을 다하지 못했던 것이 항상 스스로에게도 죄스러웠다. 부지런히 밀린 일들을 해놓지 못했던 게으름을 탓할 수도 있었겠지만, 평택 싸움에서 얻은 영광의 상처들이 날 조금은 위축되게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우리는 싸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싸우기를 즐기기 때문이 아니라, 여전히 싸우지 않고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세상 많이 좋아졌다"는 말을 어디서든 듣게 되지만, 난 도대체 무엇이 좋아진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지하철을 타고 천안까지 갈 수 있고, 핸드폰을 TV를 볼 수 있으면, 그게 세상이 좋아진 것일까. 벌써 두 달이 훌쩍 지난 2007년. 정말 열심히 싸울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한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와 싸이월드 홈피에도 올려놓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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