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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나무
생강나무 ⓒ 안준철

생강나무
생강나무 ⓒ 안준철
주말에 이틀 연속 같은 산을 찾았습니다. 걸어서 다녀올 수 있는 가까운 산이지만 전날 오른 산을, 그것도 똑같은 산길을 택하여 다음 날 다시 오른 것은 저로서도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생강나무 때문이었습니다. 산길을 가다가 생전 처음 생강나무를 직접 눈으로 본 것이지요. 생전 처음 본 나무가 어떻게 생강나무인지 알았을까요?

생강나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꽤 오래 전의 일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나종영 시인의 '상처'라는 시를 읽다가 생강나무를 알게 되었지요. 먼저 시를 감상해 볼까요?


상처

꽃이 피었다 진 자리에 수 많은 상처들

산수유 산 벚꽃 노란 생강나무
꽃이 피었다 진 자리에 물기 젖은 저 상처들
하얀 밥풀 같은 싸리꽃 바람에 지고

조금 세월이 흐른 뒤

저문 강물살에 슬픔처럼 별빛이 뜨네
꽃이 진 자리 저물어 그리운 것들
머위 잎새 가슴을 저미고 봄꽃들 피어나네.


생강나무
생강나무 ⓒ 안준철
시에 나오는 생강나무를 처음에는 흔히 알고 있는 생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왜 생강을 나무라고 부르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요. 그 궁금증은 곧 풀렸습니다. 제 주변에는 꽃나무 이름을 잘 아는 시인들이 많은 까닭입니다. 그때 지인들의 입을 통해 들었던 생강나무에 대한 지식을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쉽게 알 수 있지요.

'가지를 꺾으면 생강과 비슷한 내음이 나는 나무가 있다. 생강처럼 톡 쏘지 않고 은은하면서도 산뜻한 냄새가 나는 이 나무를 생강나무라고 한다. 정선 아리랑에 나오는 "아주까리 올동백은 다 떨어지고…"의 올동백이나, 김유정의 <동백꽃>에 나오는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는 그 노란 동백꽃이 바로 생강나무이다.'

생강나무는 이른 봄에 산길을 가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꽃입니다. 하지만 그 나무가 생강나무인 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꽃에 관심이 있는 사람조차도 산수유나무와 꽃 색깔이나 모양이 비슷하다보니 생강나무를 산수유나무로 오해하는 탓이겠지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토요일, 산길에서 생강나무를 발견하고 혹시나 해서 가지를 꺾어 냄새를 맡아보았습니다. 가지를 꺾기 직전에 잠깐 망설임이 있었지요. 꽃나무 이름을 알아보기 위해 나무 가지를 꺾는다는 것이 마음에 내키기 않았던 것인데, 그때 불쑥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가지를 꺾어 냄새를 맡아 보았기에 생강 냄새가 난 줄을 알았겠지. 그래서 생강나무라는 이름도 생겨났겠지.'

철쭉일까, 진달래일까?
철쭉일까, 진달래일까? ⓒ 안준철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져서 가지 한쪽을 꺾어 냄새를 맡아 보았습니다. 신기하게도 생강 냄새가 났습니다. 아니, 생강 냄새보다는 연한, 어린 시절 어른들의 주안상에 놓이기도 했던 편강이라는 과자 맛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은은하고 산뜻한 냄새가 났습니다. 냄새라기보다는 맛이라고 해야 더 옳을 것 같습니다.

"아, 이것이 생강나무구나!"

순간, 저도 모르게 나온 소리였습니다. 자세히 보니 산수유보다는 노란색이 덜 짙고 대신 맑아 보였습니다. 노란색에 연한 초록빛이 우러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꽃 모양도 산수유와는 퍽 달라 보였습니다. 산수유가 섬세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지녔다면 생강나무는 풍성하면서도 해맑은 모습이었습니다.

갓 태어난 노란 새끼 병아리 등짝 같은 그 연하고 해맑은 모습을 사진기에 담지 못하고 산을 내려와야 했던 심정을 뭐라 말할 수 있을까요? 사진기를 챙기지 않고 집을 나서는 날은 꼭 이런 불상사(?)가 생기곤 합니다. 그런데도 가끔은 일부러 사진기를 들고 나서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뱀딸기
뱀딸기 ⓒ 안준철
아름다운 것을 보면 그것을 감상할 시간적인 여유도 없이 사진기를 들이대곤 하다 보니 시심(詩心)이 생기기 않아 시 쓰기가 어려워진 것이 그 첫째 이유입니다.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낀 것을 언어로 형상화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시가 만들어지는 법인데, 사진기에 담아온 피사체의 아름다움에 자꾸만 빠지다보니 시 쓰기를 게을리하는 면도 있고요.

그렇다면 사진 찍는 솜씨라도 좋아야 할 텐데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보니 애써 찍어온 사진을 올리지도 못하고 버리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그것이 제가 사진기를 챙기지 않는 두 번째 이유이지요. 결국은 그래서 후회하는 일이 생기고 말았지만 말입니다.

맹감나무
맹감나무 ⓒ 안준철

딱따구리
딱따구리 ⓒ 안준철
오늘은 사진기를 챙겨 들고 산을 찾았습니다. 어제 눈여겨 두었던 노란 생강나무 말고도 막 봉오리를 맺기 시작하는 철쭉인지 진달래인지 잘 분간하기 어려운 붉고 예쁜 꽃들도 사진기에 담아왔습니다. 운이 좋게도 산에서 딱따구리도 만났습니다. 산을 내려와 들을 지나면서 냉이랑 개불알풀이랑 광대나물도 만났습니다.

오늘도 집을 나섰다 돌아올 때까지 무일푼으로 공해를 유발하지도 않고 참 즐겁고 행복한 여행을 했습니다. 그래서 기분이 더 없이 좋았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냉이
냉이 ⓒ 안준철

생강나무
생강나무 ⓒ 안준철
오늘도 생강나무 가지를 꺾어 냄새를 맡아 보았는데 어제처럼 잠깐의 망설임이 없었던 것입니다. 불과 하루 사이에 사람이 변해버린 것이지요. 집으로 돌아와 반성문을 쓰듯이 시를 한 편 썼습니다. 제목도 '반성문'입니다.

반성문

생강나무는
가지를 꺾어 냄새를 맡으면
생강냄새가 나서 생강나무라지요.

산길을 가다
산수유 닮은 노란 꽃 보고
생강나무일까 싶어
가지를 꺾어 냄새 맡아 보았지요.

잠깐의 망설임 끝에
노란 솜털이 달린 여린 가지를
지긋이 꺾어
냄새 맡아 보았지요.

그 다음 날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노란 생강나무
어린 가지를 꺾고 말았지요.

한 번 꺾다보니
아무 생각도 없이
너무 쉽게 꺾고 말았지요.

아, 제가 잘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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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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