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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5일 열린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에서 무명에 가까웠던 <어글리베티>의 여배우 아메리카 페레라가 막강한 후보자들을 물리치고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어 화제에 올랐다. 시상식장은 물론 텔레비젼앞에 앉은 시청자들마저 눈물 흘리게 했던 감동적인 수상소감 때문인지 지난 2월 3일 KBS2TV에서 첫방송을 시작한 외화시리즈 <어글리베티>에 대한 시청자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 못생긴 베티. 그러나 아름다운 베티
ⓒ KBS
키 작고 통통하고 얼굴까지 못생긴 여자 '베티'. 열악한 외모 조건 때문에 번번히 입사시험에서 실패를 맛보아야 했던 베티가 세계적인 패션잡지인 '모드'사의 편집장인 데니얼의 비서로 발령을 받는다. 최고 미모와 패션을 자랑하는 '모드'사의 여직원들에게는 천재지변에 가까운 핵폭탄급 인사발령이 아닐 수 없다.

파격적인 인사에 술렁이는 회사분위기는 곧 진정된다. 베티의 입사는, 그녀의 능력이나 외모보다는 비서와의 애정행각에 열을 올리는 데니얼의 버릇을 들이기 위한 회장(데니얼의 아버지)의 포석이라는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이다.

<어글리베티>를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브리짓존스의 일기>를 적당히 섞어 놓은 듯한 로맨틱 코미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악마는 프라다...>와 <브리짓존슨...>에는 결코 못생긴 여성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녀들은 단지 일시적으로 뚱뚱하다거나 관리를 잘못했다거나, 패션에 대한 센스가 떨어진다는 설정을 했을 뿐이며 누가 봐도 아름다운 여배우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들이 패션에 대해 알아가고 다이어트와 자기관리 끝에, 지저분한 외모나 촌스러운 패션감각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아름다움과 능력을 발휘해 사랑과 성공을 모두 이룬다는 틀에 박힌 이야기. 결국 기본적인 미모가 따라주지 않았다면 그녀들의 성공도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쁜 여자들의 못생긴 척, 촌스러운 척에 때로는 심기가 불편해지지 않는가?

'르네 젤위거니까 당연하지. 엔 헤서웨이가 보통 미모야? 저 정도 되면 거적을 쓰고 다녀도 빛이 날껄….'

예쁜 여배우들의 못생긴 척에 짜증이 난다면 외회 시리즈 <어글리베티>를 보며 위안을 삼을수 있다. <어글리베티>는 예쁜 여배우를 못생기게 분장을 시키거나, 설정이 그러니까 무작정 못생긴 것으로 상상하라고 우기지 않는다. 대신 미모와는 거리가 있는 여배우를 등장시킨다. 작은 키와 통통한 몸매, 검은 뿔태 안경에 치열교정기까지 착용한 베티. 이보다 더한 리얼리티는 없다.

▲ <어글리 베티>의 등장 인물들
ⓒ KBS
바비 인형들만 가득한 텔레비전 안에서는 못난이 인형같은 베티는 오히려 신선하고 푸근하다. 자신이 못생겼다는 것을 알면서도 절대로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할말은 하고 마는 그녀. 실수를 연발하지만 언제다 진실을 최상의 것으로 여기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된다. 네티즌들이 그녀를 '훈녀(따뜻하고 훈훈한 여자)'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명석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 그리고 주변을 감동시키는 진실을 가진 여성이 당당하게 사회에서 인정을 받으며 일에서도 성공을 거두게 된다면 그건 개가 사람을 무는 일 만큼이나 당연한 결론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뚱뚱하고 못생겼으며 촌스러운 옷차림을 한 남미계 소수민족이라면?(실제로 베티를 연기한 아메리카 페레라의 부모는 온두라스인이다)

못생겼다, 촌스럽다, 괴롭히고 무시하는 바비인형들 속에서도 그녀는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녀가 좋아하는 "진실보다 중요한 것 없어"라는 말처럼 언젠가는 그녀의 진실을 알아줄 날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15일 못생긴 '베티'의 진실은 드디어 통했다. <위기의 주부들>과 <그레이 아나토미>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여배우들과 함께 골든글로브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얼굴을 드러낸 아메리카 페레라. 시상식에서도 그녀의 외모는 확실히 티가 나게 평범했지만 결국 골든글로브는 못생긴 훈녀 '베티'(아메리카 페레라)의 차지였다.

놀란 표정으로 눈부신 미녀들 사이를 걸어나와 수상을 한 그녀의 소감 역시 평소 '베티'의 모습 만큼이나 훈훈하고 감동적이다.

"제가 연기한 베티는 이제까지는 TV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얼굴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것보다 깊은 곳(보는 곳 저 넘어)에 진정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진정 아름다운 메시지를 전합니다."

▲ 베티가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이유
ⓒ abc
결코 예쁘지 않은 '베티'에게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는 것은 그녀만이 가진 남다른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진실되고, 명석하고, 친절하고, 정직하며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솔직한 여자 '베티'야말로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현실적인 우리들의 모습이며 우리가 꿈꾸어야 할 인간의 모습은 아닐까?

머리가 비어있는 플라스틱 인형만 가득한 텔레비전 속에서 오랜만에 무공해 식품같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베티'들의 등장을 기대하며 늦었지만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못생긴 베티' 아메리카 페레라에게 박수를 보낸다.

덧붙이는 글 | TV리뷰기자단 응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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