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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 도쿄에서 '한일 시민기자 친구만들기' 행사가 열렸다. 도쿄대학 정문 앞의 한일 대학생 시민기자들. 앞줄 오른쪽이 일본 대학생 시민기자인 야마바타 사토미이고, 그 뒤가 필자.
ⓒ 허환주
"갑작스럽고 미안합니다만, 동생과 함께 다음 주의 월요일부터 한국에 가요. 오빠는 비어있는 날이 있습니까? 어디선가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정말 갑작스럽고 아슬아슬한 메일이 지난 2월 10일 왔다. 메일 제목도 '아슬아슬합니다(ぎりぎりです, 기리기리데스)'이다. 지난해 12월 도쿄에서 만난 일본의 <오마이뉴스 재팬> 대학생 시민기자인 야마바타 사토미(山畠 さとみ, 23)의 메일이었다.

잊고있던 추억, 그러나 그녀의 메일에 가슴설레고

▲ 지난해 12월 일본에서 만난 야마바타 사토미씨.
ⓒ 김귀현
2006년 12월, 일본의 도쿄에서 '오마이뉴스 한일 시민기자 교류회'가 열렸다. 나는 한국 대학생 시민기자의 일원으로 교류회에 참가하였고, 여기서 사토미를 비롯한 일본의 대학생들을 만났다.

이 교류회의 제목은 '한일 시민기자 친구 만들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뿐이었지만, 서로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되지도 않는 일어와 영어를 섞어 가며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짧은 시간의 만남이었지만, 헤어질 때만은 서로 아쉬움에 잡은 손을 놓지 못했다. "다음에 다시 꼭 만나자"고 얘기했지만,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갔고 그들은 일본에 남았다. 그리고 우리의 만남이 계속 이어지리라 생각지 못했다.

일본에서의 추억을 잊고 살 무렵, 사토미의 갑작스러운 메일이 내 가슴을 설레게 했다. 짧은 만남 동안 큰 감동을 주었던 일본인이었기 때문이다. 한국가요가 좋아서 배운 한국어로 한국 대학생 시민기자들에게 따스한 인상을 주었던 그녀였다. 특히 처음 보자마자 "오빠"라는 말로 복학생뿐이었던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기도 했다.

메일을 보고 솔직히 만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갑작스러운 메일이었기에 사토미가 서울에 온다는 것도 믿기지 않았다. 부랴부랴 준비를 했다. 메일로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한국에 도착하면 전화를 해달라고 했다. 인터넷으로 일본인들이 좋아할 만한 관광코스를 알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사토미가 한국에 오기 바로 전날(2월 12일), 나는 오랜만에 잠을 설쳤다.

명동역 4번 출구와 이승엽의 상관 관계?

▲ 남대문에서 찍은 사진을 확인하고 있다.
ⓒ 김귀현
사토미가 한국에 오기로 한 날, 전화기를 한 손에 꼭 붙잡고 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번호가 핸드폰에 뜨자, 사토미임을 직감했다. 외국인과 나눈 전화통화는 처음이었다. 만나서 얘기할 땐 어떻게든 손짓 몸짓으로 얘기를 할 수 있지만, 전화는 오로지 언어만으로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나의 4개월짜리 어설픈 일본어로 어찌 통화할까 걱정되었다. 사토미의 한국어 실력을 믿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오빠, 사토미에요. 한국에 왔어요."
"네, 지금 어디에요?"
"예?"


한국어를 할 줄 하는 사토미지만, 전화로는 잘 들리지 않았나 보다. 한국어로 이런저런 말을 하니 대부분 못 알아들었다. 결국 일본어로 급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어설프게 일본어로 얘기하니 어찌 대화는 되었다. 사토미의 따스한 배려로 그의 대답은 쉽고, 명확했고, 짧았다. 이제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정할 일만 남았다.

일단 일본인들이 많이 찾는 명동에서 만나기로 하고, 만날 장소를 정하는 일만 남았다. 우리나라 사람 같으면 'A 쇼핑몰 앞에서 보자'라고 하면 바로 알아들을 텐데, 외국인이 알 리가 없다. 결국 여기서 또 고민하기 시작했다.

순간 떠오른 것이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이승엽 출전 야구 중계방송. 방송을 보다 보면 항상 '욘방(4번) 이승엽'이란 장내 멘트가 흐른다. 그리고 이것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명동 에끼, 욘방 게이또, 이이데스까?(명동역 4번 출구, 좋아요?)"
"이이요!(좋아요)"


결국 이승엽이 날 살렸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다. 만남에 필요한 정보를 다 공유한 이후 이제는 전화를 끊어야 할 시간. 하지만 서로 전화 끊을 때 쓰는 말을 몰라, 또다시 정적이 흘렀다. 이 땐 사토미가 순발력을 발휘했다.

"바이바이."
"아! 바이바이."


역시 한국어도 일본어도 안 될 때는, 영어가 만국 공통어다. 사토미의 '바이바이' 끝내기 홈런으로 내 첫 외국인과의 전화 통화를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난 '명동역 욘방 게이토'로 향했다.

한국인도 처음 봤다. '김치맛 초콜릿'

▲ 만득이 핫도그와 핫바를 먹는 사토미(왼쪽)과 마나미.
ⓒ 김귀현
명동에서 감격의 상봉을 했다. 정말로 일본에서 보았던 그 사토미가 맞았다. 기다리는 동안 동반자인 사토미의 동생이 남동생일지 여동생일지 궁금했다. 동생이라고만 했기 때문이다. 내심 기대하는 쪽이 있었는데…, 다행히 기대한 대로 귀여운 여동생이었다.

사토미의 동생 마나미는 고교 2년생이다. 이번 여행은 고3에 올라가는 동생을 위한 여행이라고 했다. 마나미의 학교 때문에 2박3일의 짧은 일정으로 한국에 왔다. 나와 함께 하는 동안만은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줄 만한 좋은 곳들로 안내하고 싶었다.

하지만, 일본인들에겐 한국의 날씨가 너무 추웠다. 그렇게 추운 날씨가 아니었지만, 올 겨울 유난히 따뜻했던 도쿄에서 온 아가씨들은 이런 추위가 익숙지 않았나 보다. 도쿄는 겨울 내내 평균기온이 10도를 웃돌았고, 눈도 한번 오지 않았다고 한다. 마나미는 계속 "돗떼모 사무이(너무 추워)"라고 말하며, 한국 동장군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었다.

명동의 상점들을 거쳐, 남대문으로 향했다. 일본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답게 내가 할 말이 없었다. 상인들이 모두 능숙한 일본어로 설명해주었다. 일본어 배우러 남대문에 어학연수를 가도 되겠다.

핫도그로 군것질을 하는 동안 지나가던 아주머니들께서 마나미를 보고 연예인 아유미를 닮았다고 신기해하셨다. 마나미는 한국에서 받는 이 뜨거운 관심에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감자 조각이 붙은 '만득이 핫도그'는 이들에게 신기한 대상이었다. "왜, 만득이에요?"라고 묻길래 "만득이는 못 생긴 사람들 뜻한다, 핫도그가 못생겨서 만득이다"고 알려주었다.

▲ 김치 맛 초콜릿. 과연 어떤 맛일까?
ⓒ 김귀현
나도 남대문 시장은 생소했다. 평소 갈 일이 없으니 나에게도 매력적인 관광지가 따로 없다. 특히 '김치맛 초콜릿'은 나도 난생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무슨 맛일지 궁금해졌다. 김치맛 초콜릿을 권하자 사토미는 "나는 매운 거 못 먹어요"하며 손사래 쳤다. 과연 김치맛 초콜릿은 매울까? 미스터리다.

이후 사토미는 가족들에게 선물을 사기 위해 식품가게에 들렀다. 김이 그렇게 일본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다고 한다. 상인 아저씨는 김 한 봉지에 8000원을 불렀다. 여기서 난 "한국에서는 값을 깎을 수 있으니 '깎아주세요!' 하면 되요"라는 멋진 멘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 사토미가 "깎아주세요!"라고 또박또박하게 말해버렸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값을 깎는 문화가 없다. 한국의 '깎기' 문화가 일본인들에게 큰 매력으로 작용하여 '깎아주세요'라는 말은 꼭 배워온다고 한다. 결국 사토미는 혼자 힘으로 1000원을 깎아 7000원에 김을 손에 쥐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난 말했다.

"사토미, 한국사람 다 됐네."

사토미와 나의 공동기사, 상상만 해도 좋아

▲ "깎아주세요"란 말로 1000원을 깎았다.
ⓒ 김귀현
사토미와 <오마이뉴스>에 관련된 이야기도 나누었다. 사토미는 "기사를 너무 쓰지 않아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마이뉴스>에서 화낼지도 모른다"며 장난스럽게 겁을 먹은듯한 표정을 살짝 지어 보였다.

나는 "우리 한일 대학생 시민기자가 공동으로 기사를 쓰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제안을 했다. 사토미는 고개를 끄덕였고, 꼭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다. '남대문 조약'이다. 언젠가 우리 이름이 동시에 쓰인 기사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상상만으로도 멋지다.

매서운 추위에도 사람들의 온기로 따뜻한 남대문 관광을 마쳤다. 사토미와 마나미는 남대문 시장의 한국 사람보다 더 많은 일본인 관광객에 놀라는 눈치였다. 일본에서 매일 보는 일본인만 보니 좀 싫증이 났나 보다. 그래서 다음 행선지는 일본인을 찾기 힘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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