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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와 애들이 잡초를 뽑고 있다.
ⓒ 박철
지난 월요일 아내와 아이들 함께 광주 5·18묘지를 다녀왔다. 지난 2월 초 아내는 YTN-TV <진실> '죽음의 시대,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동생 김의기 문제로 출연하였다. 민주화 과정에서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했던 김의기, 김세진, 이재호, 송광영 열사 등을 다룬 프로그램이었다.

@BRI@장래가 촉망되던 꽃다운 청춘들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여 외치고자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살아남은 자들의 생생한 증언이 50분 동안 이어졌다. 이 프로그램을 제작한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방송 이후, 아내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아들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쓸쓸하게 지내시던 장모님(권채봉)이 2005년 여름 세상을 떠나셨고 장인 어른은 그보다 오래 전에 떠나셨다. 어머니를 십분의 일만이라도 닮고 싶어 했던 아내는 그 어머니마저도 세상을 떠났으니 그 상실감이 오죽하겠는가? 가끔 이불 속에서 눈물을 쏟는다.

한 달 전, 교회에서 성경 고린도전서 13장을 암송하기로 했다. 아내가 첫 번째로 암송을 했다. 교인들 앞에서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한 가지만 얘기해 보라고, 그러면 들어주겠노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내는 대뜸 "동생 산소에 데려다 주세요. 5·18묘지에 가고 싶어요" 그러는 것이었다. 그게 무엇이 어렵겠는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 처남 김의기 무덤 앞에서.
ⓒ 박철
그러다 지난 월요일 처남, 김의기가 묻혀 있는 광주 5·18묘지를 가게 되었다. 약속을 지키게 된 것이다. 아내는 동생의 무덤에 앉자마자 서럽게 흐느껴 울었다. 오랫동안 침묵만이 흘렀다. 아내가 울자 아이들도 말이 없다. 산소에서 잡초를 뽑고 집에서 준비해 간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봄 햇살이 따스하다. 아내는 오랜 침묵을 깨고 아이들에게 말한다.

"의빈아, 은빈아! 지금부터 엄마 말 잘 들어. 너희 삼촌이 여기 왜 묻혀 있는지 알고 있지? 1980년 너희 삼촌은 대학교 4학년이었어. 지금 살아 있으면 50살이 되었을 거야. 그때는 학생이어서 장가도 못 가고 죽었어. 그러니 부인도 없고 자식도 없지.

지금은 엄마 아빠가 이렇게 삼촌을 찾아오지만 엄마 아빠가 죽으면 아무도 찾아올 사람이 없어. 사람들 기억에도 잊혀지겠지. 그러니 너희들이 삼촌을 기억하고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삼촌이 덜 쓸쓸할 것 같아서. 엄마 말 명심해. 알았지?"

두 아이는 짧고 분명하게 "네" 하고 대답한다. 내가 막내 은빈이에게 묘비문을 크게 읽으라고 했다. 그러자 은빈이는 큰 소리로 비문을 읽는다.

두어 시간 머물다 대학 시절, 은사였던 서남동, 명노근 교수님 무덤에도 들러 안부 인사를 올리고, 내려오는 길에 참배단에도 들렀다. 5·18민주화 운동과 관련되어 희생된 분들의 영정 사진이 빼곡하게 걸려 있다. 저 분들 때문에 우리나라가 이만큼이라도 된 것이지 싶으니 더욱 숙연해진다.

▲ 김의기 묘비.
ⓒ 박철
둘째 의빈이에게 물었다.

"의빈아, 어떻게 해서 광주 5·18항쟁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니? 네가 알고 있는 대로 얘기해 봐라."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으려고 했는데, 학생들을 비롯해서 온 국민들이 전국적으로 데모를 하고 반대를 하니 다급한 나머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민주인사들을 잡아들이고, 광주를 타깃으로 삼고 무고한 시민들을 총으로 무참하게 죽인 거 아니에요? 그것도 북한 간첩들의 조정을 받은 폭도들에 의해 저질러진 폭동이라고 선전을 하고…."
"그래 맞다. 비교적 잘 알고 있구나."

"아빠, 그런데요, 전두환 일당이 정권을 잡겠다고 수많은 광주 시민들을 총으로 쏴 죽였는데, 왜 전두환을 살려두었어요? 죽여야 나라가 바로 서는 거 아녜요?"
"그렇지. 아빠도 잘못된 역사의 심판은 엄중하고 엄격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정치하는 사람들은 자기들 이해타산 때문에 그게 그리 쉬지만은 않은가 보다."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부산으로 오는 길, 아내는 차 안에서 몇 번이고 고맙다고 한다. 고마울 게 무에 있겠는가. 아내의 마음을 잘 살피지 못한 내가 나쁜 사람이지.

어제 서재에서 주일 설교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내가 들어왔다.

"여보, 동생 의기 이야기가 한국근현대사 고등학교 2학년 교과서에 나왔어요. 오늘 의빈이가 학교에서 새 교과서를 받았는데 거기에 의기가 남긴 유서가 실렸어요."

아내가 둘째 의빈이 교과서를 펼쳐들고 말하는 것이었다. 책 중간쯤에 우리나라 민주화 과정에 희생당한 김의기, 아내의 동생 김의기가 1980년 5월 30일 서울 기독교회관 6층에서 광주학살의 진상을 촉구하며 투신할 때 뿌렸던 유서 <동포에게 드리는 글> 일부가 다음과 같이 실려 있었다.

"피를 부르는 미친 군홧발 소리가 고요히 잠들려는 우리의 안방에까지 스며들어 우리의 가슴과 머리를 짓이겨 놓으려 하는 지금, 동포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보이지 않는 공포가 우리를 짓눌러 우리의 숨통을 막아버리고 우리의 눈과 귀를 막아 우리를 번득이는 총칼의 위협 아래 끌려 다니는 노예로 만들고 있는 지금, 동포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장한 살육으로 수많은 선량한 민주시민들의 뜨거운 피를 뜨거운 오월의 하늘아래 뿌리게 한 남도의 봉기가 유신잔당들의 악랄한 언론탄압으로 왜곡과 거짓과 악의에 찬 허위선전으로 분칠해지고 있는 것을 보는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 김의기의 동포에게 드리는 글에서


▲ 초등학교 5학년 은빈이는 수많은 영정 사진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 박철
세월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할 것인가? 세월이 많이 달라진 것이 아닌가. 아들의 죽음도 억울한데 거기에다 빨갱이 취급을 받으며 살아오신 부모님의 눈물과 아픔을 아는가. 부모님은 이미 세상을 떠나셨고 단 몇 줄이라도 처남의 이야기가 27년 만에 외손자 교과서에 실렸으니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동생을 끔찍하게 사랑했던 아내, 김주숙. 내가 백 마디의 위로의 말을 전해준들 무슨 위로가 되겠는가. 아내에게 작은 위로와 기쁨이 되었으면 좋겠다. '정의가 불의보다 강하고, 역사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경구가 새롭다. 세상이 조금 밝아지려는가. 희망이 오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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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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