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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드디어 MBC 드라마 <주몽>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시청률 50%를 넘나들며 새로운 '국민 드라마' 반열에도 그 이름을 올렸다. 나 또한 <주몽>의 애청자였던 만큼 뭔가 모를 뿌듯함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왜 그렇게 인기가 많았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본적으로 <주몽>이 '승리의 역사'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드라마가 시작될 무렵 세간에 논란이 되었던 중국의 동북공정과 맞물려 있다.

KBS의 <불멸의 이순신>이 묘하게도 일본의 독도 도발과 맞아 떨어지며 큰 인기몰이를 했던 상황과 비슷하다. 광개토대왕을 다룬다는 MBC 드라마 <태왕사신기>는 아마 엄청난 대박을 터뜨리지 않을까 싶다.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지금까지 거의 다루지 않았던 고구려의 건국이라는 배경, 소서노라는 새로운 캐릭터의 발굴이 주효했다. 여기에 제작진이 적극적으로 내세웠던 '판타지'라는 요소도 새로움을 갈구하는 시청자들의 감각에 어느 정도 부응했다. 특히 건국과정을 다루는 다른 대하사극에서 볼 수 없었던 비교적 화려한 색감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연기자들의 혼이 담긴 연기 또한 나무랄 데 없었다.

그러나 아쉬운 점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왜곡에 대한 논란은 그 자체가 큰 문제이기는 하지만 일단 내가 잘 모르는 내용들이고 또 다른 사람들이 많이 지적했으니 여기서는 그냥 넘어가자.

내가 <주몽>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으로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판타지와 실사(實事)의 부조화이다.

주몽, 즉 동명성왕은 우리에게 신화로 알려져 왔다. 제작진은 그 신화를 "신화보다 거대한 영웅"의 이야기로 들려준다고 했었다. 어느 누구라도 주몽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이 신화적 요소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드라마 <주몽>에도 이 신화적 요소, 아니 판타지적 요소가 적극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현란한 액션, <반지의 제왕>의 흑기사를 연상시키는 철기군, 흡사 컴퓨터 게임의 캐릭터 같은 주요 인물들의 갑옷, 롤플레잉 게임과도 같은 주몽의 성장과정, 그 속의 획득 아이템 같은 고조선의 신물들, 화려한 색감, 신녀라는 존재, 그리고 막바지에 마우령 신녀에 내리꽂힌 천지신명의 번개에 이르기까지.

그런데 <주몽>에서는 이 모든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지 않고 따로따로 놀고 있었다. 특히 주된 스토리라인과의 긴밀한 밀착에 실패함으로써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비유컨대 양념과 고기가 따로 겉도는 아귀찜을 먹었을 때의 찝찝함 같다고나 할까.

'신성'에 대한 필연성이 거의 없는 <주몽>

ⓒ iMBC
신화적 요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성(神聖)', 혹은 절대자의 계시 따위다. <주몽>에서는 삼족오, 신녀, 3가지 신물 등 그 소재는 꽤나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신성이 스토리의 핵심과 전혀 결부되지 못하고 있다. 잘 선택된 신성과 그를 중심으로 한 스토리는 많은 다른 작품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구도이다. <다빈치 코드>나 <반지의 제왕>, SBS의 <서동요> 등이 그러하다. 신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영원한 제국>의 선대왕의 금등지사나 영화 <한반도>의 옥새는 그에 필적할만한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

이런 작품들에서는 그 신성이 성배이든 절대반지든 금등지사이든 그 존재이유가 너무나 명확하고도 분명하게 설정되어 있다. 거기에는 뭔가 그 작품 나름대로의 '필연성'이 부여되어 있는 셈이다.

<주몽>에서는 그 신성에 대한 필연성이 거의 없다. 다물활이 왜 신물인지, 고조선의 갑옷과 청동거울은 또 왜 고구려 건국에 '필연적'인지 (갑옷은 이해의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전혀 알 길이 없다. 그저 잠시 등장하고 사라질 뿐이다. 그러다보니 이와 연결되어 있는 신녀의 존재 또한 무게감이 갈수록 떨어진다. 여미을 이후 소령과 벼리하는 하는 일이 거의 없고 비금선의 등장 또한 뜬금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주몽이 새 나라를 건국해야 한다는 대의는 그와 가까운 몇몇 사람만이 되뇌는 동어반복에 그치고 말았다. 신명(神命)과 대의(大義) 사이의 필연성을 확보하는 데 실패한 것이 기본적인 스토리라인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까.

@BRI@판타지적 요소와 사실적인 요소의 결합이 겉도는 것은 기본 스토리라인에서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 <주몽>은 그 스토리 전개 상 액션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다. <불멸의 이순신>이 역사왜곡과 평면적인 인물묘사로 그렇게 욕을 들었지만 한국 사극에 당당하게 한 위치를 점하는 이유는 바로 그 '해전신' 때문이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불멸의 이순신>은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다. <주몽>의 작가 중 한 명인 정형수는 <다모>를 통해 이른바 '퓨전사극'이라는 새 장을 열었다. 다른 성공요인들도 많겠지만, 무협적인 와이어 액션이 어떻게 무리 없이 정통사극에 접목될 수 있는가를 <다모>는 정말 제대로 보여줬다.

<주몽>에도 그런 액션은 있다. 해모수의 공중 몸 비틀어 창끝 차 날리기라든지 주몽의 신들린 연속 활쏘기나 막판에 보여준 검술 등은 충분한 볼거리였다. 그러나 이런 소규모 판타지 액션이 어떻게 대규모 전투 혹은 '전쟁'과 결합될 것인가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다.

빈번한 납치, 기습당하는 군대가 일부러 모른 척하는 것 같은 매복, 스토리를 위한 자의적인 전투중단 등등은 드라마의 내적 일관성에 심각한 의문을 던져줬다. 이는 마치 영화 <매트릭스 3>에서 시온의 첨단 방어로봇에 기본적인 조종사 보호 장치하나 없는 황당함과도 같다.

기대 이하로 그려진 실제 전투나 전쟁 장면

ⓒ iMBC
특히나 <주몽>은 철기군, 강철검 등 군사적인 요소들이 중요 모티브로 등장하지만 그런 판타지적 요소들이 실제 전투나 전쟁과 결합하는 과정은 기대 이하였다. <주몽>을 봐 온 시청자는 당연히 '판타스틱'한 전투씬을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2만 명 분 군량미 대신 '식권' 2만 장을 싣고 가는 수레 석 대였다.

내 생각엔 이런 문제들이 MBC 사극이 진정한 '대하사극'으로 나아가기 위한 성장통으로 여겨진다. MBC가 물론 <조선왕조 오백년> 등 그동안 나름대로 '한 사극'을 해 왔지만 90년대 이후로는 한 국가의 흥망성쇠 정도 되는 규모까지 소화하지는 못했다(<신돈>? 좀 약하지 않은가?).

KBS의 <용의 눈물>이나 <태조 왕건>과 비교해 보라. 게다가 <주몽>의 작가들 또한 <허준> <상도> <다모> 등 디테일에 강한 작가라는 점도 한계로 작용한 것 같다. 섬세한 감정표현과 꽉 짜인 구성은 인정할만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선이 굵은 큰 이야기 속에서 모든 것을 녹여 내는 통합력을 가로막은 것처럼 보인다. 연필로 정밀 묘사하는 화가가 집채만한 병풍에 산수화 그리겠다고 나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주몽>의 아쉬움을 들여다보면 결국 남는 문제는 역시나 탄탄한 스토리라인이라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된다. 온갖 진기한 아이템들조차도 하나의 이야기 속에 유기적으로 자기 역할을 찾지 못하면 금세 잊혀질 뿐만 아니라 전체 스토리에 오히려 거슬린다.

그러나 어쨌든 한민족 고대사로 눈을 돌려 어떻게든 이야기를 만들어 낸 작가와 제작진들의 그 도전정신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사실 우리 사회가 언제 고구려에 관심을 가졌으며 그 연구과 유적 발굴 및 보존에 과연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나. 제작진의 한계는 어쩌면 우리 사회 전체의 한계가 반영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고구려 전문가들이 존재해서 그들이 숱하게 많은 이야기를 찾아내었다면 드라마 <주몽>은 훨씬 더 탄탄한 스토리라인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좀 더 나아간다면 '한류'의 새로운 동력 또한 이렇듯 우리 사회의 '기본'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 어쨌든, 그 동안 나의 일주일은 월요일 <주몽>으로 시작해서 일요일 <주몽>재방송으로 끝나곤 했다. 그 행복했던 시간들을 허락해 준 제작진에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태그:#주몽, #고구려, #판타지, #역사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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