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여성신문
[권지희 기자]'사람'은 관습상 '남성'이라며 남성 회원에게만 참정권(선거·피선거·투표권) 주기를 고집해왔던 서울YMCA가 결국 한국Y 전국연맹과 세계Y 연맹으로부터 제명 처리됐다.

1903년 창립된 한국 시민단체의 맏이인 데다 한국Y의 모태로서 역할을 해온 서울Y가 퇴회 조치된 것은 세계적으로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번 사태가 서울Y를 넘어 그동안 구태의연한 성차별 관행을 유지해온 한국의 시민운동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 파장이 주목되고 있다.

한국Y 전국연맹은 지난달 27일 입장문을 발표하고 "그동안 수차례에 걸친 권면과 한국Y 전체 회원들의 간절한 기대를 저버린 서울Y는 재론할 필요도 없이 양성평등의 정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를 했다"며 서울Y의 퇴회를 공식 선언했다.

이에 따라 한국Y는 당분간 서울Y의 기존 업무를 대행하는 것과 함께 'YMCA' 명칭 사용금지 등 퇴회 결정에 따른 후속조치를 취해나갈 예정이다. 이미 각 정부기관과 산하기구에 공문을 보내 “서울Y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므로 계약이 체결된 용역사업에 대해 적절하게 처리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서울Y 이사회가 한국Y의 퇴회 명령을 ‘사형선고’ 성격의 상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공방은 계속될 전망이다. 당장 서울Y가 소유하고 있는 종로의 건물과 관광호텔 등 4000억원에 달하는 ‘재산’을 돌려받기 위한 법적 소송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송진호 한국Y 대외협력국장은 “재단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Y와 서울Y간에 재산을 둘러싼 법적 공방은 없겠지만 서울Y가 퇴회 조치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조정해야 한다”며 “후속 실무팀을 꾸려 법적 검토를 해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성차별이라는 오명을 달게 된 후유증이 큰 상황에서 재산 분쟁까지 벌이게 되면 한국Y까지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게 된다는 우려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단법인 서울기독교청년회(서울Y) 유지재단 정관에 따르면 재산은 이사 3분의 2 이상이 법인을 해산하겠다고 결정해야 법인의 목적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공익단체에 기부할 수 있다. 그러나 서울Y 이사회가 단체 이름을 바꿔 재산을 그대로 유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서울 YMCA 성차별철폐회원연대회의 소속 여성회원 20여명이 지난달 24일 종로 서울Y 앞에서 소복시위를 벌였다.
서울 YMCA 성차별철폐회원연대회의 소속 여성회원 20여명이 지난달 24일 종로 서울Y 앞에서 소복시위를 벌였다. ⓒ 여성신문
서울Y 성차별철폐 회원연대회의 등 지난 6년간 고된 싸움을 이어온 여성 회원들도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한다. 한국Y로부터 ‘추방’된 것은 서울Y 이사회뿐 아니라 소속 회원들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앞으로 작게는 서울Y 비상대책기구에 들어가 내부 개혁에 제 목소리를 내는 것부터, 크게는 여전히 다양한 성차별에 노출돼 있는 NGO 조직을 변화시켜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실제로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미 현장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서울Y처럼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많은 NGO 단체들이 남성 중심적이고 비민주적이며 가부장적인 조직문화를 끌어안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김성희 연대회의 공동위원장은 “이번 사건은 서울Y와 같이 낡은 관습과 차별을 고수하고 있는 시민단체에 던지는 ‘돌’과 같다”며 “앞으로 YMCA를 비롯한 한국의 시민단체에 만연한 성차별 문제를 유엔에 제기하는 방안을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서울Y 여성 회원 50명이 지난해 1월 서울Y 이사회를 상대로 제기한 총 2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결과가 오는 15일 나올 예정이다. 연대회의는 1심 판결 결과에 따라 향후 대응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서울Y의 여성 참정권 배제 문제로 불거진 한국 시민운동의 오랜 성차별 관행이 이번 기회에 뿌리 뽑힐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댓글

(주)여성신문은 1988년 국민주 모아 창간 한국 최초의 여성언론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