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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유럽에서 공정무역을 제일 먼저 시작한 나라고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공정무역 제품 수입과 소비에 열심히 나라다. 특별히 지금은 지난 2월 26일부터 시작된 공정무역 홍보 기간이다. 3월 11일까지 진행되는 이 행사의 목적은 공정무역 운동을 널리 알리고 상품 소비를 촉진하는 것이다.

영국 공정무역 재단에 의하면 현재 영국 내 공정무역 상품은 2천 가지에 달한다고 한다. 품목으로는 바나나, 망고, 파인애플, 설탕, 꿀, 쥬스 등 기본 먹거리부터 커피, 초콜릿, 차, 포도주 등의 기호 식품, 그리고 꽃, 면직물, 축구공 등 비식품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이중 먹거리 종류가 압도적으로 많다.

공정무역에 열심인 영국

@BRI@공정무역은 부자 나라의 소비자가 가난한 나라의 생산자에게 공정한 대가를 지불하고 이를 통해 가난한 나라 생산자들이 가난을 벗는데 도움을 준다는 정신에 기초하고 있다.

공정무역 상품을 공급하기로 계약을 맺으면 자영생산자는 나은 값을 받고 물건을 팔 수 있고 대량생산을 하는 업주는 나은 값을 받는 대신 노동자들의 근무환경과 임금을 개선시켜야 할 의무를 지니게 된다.

인류보편의 윤리관을 가졌다면 공정무역 정신에 반대론을 제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공정무역 물품을 사는 것이 대단한 자선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평범한 영국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씁쓸한 느낌이 든다.

많은 가난한 나라들이 21세기에도 20세기 초와 비슷한 가난에 시달리며 살고 있는 이유는 대부분 부자 나라들 때문이다. 영국을 비롯한 많은 부자 나라들이 예전에 식민제국이었고 가난한 나라들이 현재 겪고 있는 문제는 대부분 그때부터 시작됐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아프리카 나라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다. 식민지 시대 유럽 제국들이 칼로 무 자르듯 자기들 편할대로 그어 놓은 국경 때문에, 그리고 식민통치를 쉽게 하기 위해 악용한 부족 정책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들이 독립 직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는 내전에 시달리고 있다.

남미나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아프리카와 사정은 좀 다르지만 대부분이 식민시대를 겪었다. 이들 국가들은 오랜 세월동안 식민제국의 물품 공급지 역할을 해왔으며 제대로 근대화의 수순을 밟을 기회를 놓쳤다.

가난한 나라에서 값싸게 들어오는 물품이 없다면 물가 비싼 영국에서 사는 것도 지금보다 훨씬 힘들어질 것이다. 영국과 같은 부자 나라들이 현재의 부를 축적할 수 있던 이유는 식민시대부터 식민지의 값싼 노동력으로 생산된 물품과 천연자원에 의존해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축적된 부로 대를 이어 또 다른 부를 재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불평등한 공생관계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자신들이 소비하고 남는 것을 파는 것도 아니고, 자신들이 주도적으로 생산 품목을 결정하지도 못한다. 이들은 부자 나라 사람들이 주도하는 세계 시장에서 항상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값싸게 생산해야 하는 '사명'을 주문받고 있다.

결국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부자 나라 소비자들을 위해 자신들의 먹거리보다는 돈이 될 농산물을 경작한다. 그나마 하지 않으면 굶어죽기 때문이다.

공정무역 권장해야 할 운동이지만...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커피다. 부자 나라 사람들의 커피 소비가 증가해 커피 원두 생산이 많아졌고 결국 커피 원두 값만 폭락했다. 공정무역 대표 상품 중 하나가 커피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막대한 노동력이 들어가는 커피를 너무 싸게 먹다보니 한마디로 미안해진 것이다.

공정무역 상품이라 해도 사실 가격 차이가 많이 나지는 않는다. 일반 상품보다 대략 1.5배 정도 비싼 것 같다. 그리고 거기에서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것은 결코 크지 않다. 결국 공정무역으로 수입이 조금 늘어봤자 가난한 나라 생산자는 배가 좀 덜 고프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정도의 생활 개선 밖에는 기대할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공정무역은 부자 나라 소비자들을 위해 계속 값싼 상품을 들여오는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하다.

물론 공정무역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가난한 나라와 부자 나라의 부당한 역학관계까지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자 나라 사람들은 자기가 현재 누리고 있는 부가 어디에서 왔는지, 자신이 왜 그렇게 싸게 상품을 살 수 있는지 생각하지 않고 자선하는 기분으로 공정무역 상품을 산다. 안사는 것 보다야 낫지만 그런 무지함과 오만함이 안타깝다.

공정무역은 정당한 것이고 권장해야 할 운동이다. 그러나 과연 공정무역이 가난한 나라-부자 나라의 부당한 역학관계를 개선하고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데 기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10년, 20년 후에도 이들은 부자 나라 소비자들을 위해 배를 채울 수도 없는 싼 커피를 계속 생산할 것이라는 불길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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