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하얀거탑
하얀거탑 ⓒ MBC
MBC 주말드라마 <하얀거탑>이 '의료사고냐, 아니냐'를 두고 법정 2라운드에 돌입했다. 드라마는 장준혁(김명민)과 최도영(이선균)에 초점을 맞춰 재판의 승패에 무게 중심을 두고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의학 드라마의 특성상 전문 의학용어가 많이 등장하고 재판의 승패를 좌우하는 법정공방이 펼쳐지면서 더욱 생소한 의학용어들이 많이 나와 이해가 다소 어려운 것이 사실. 최근 <하얀거탑>은 '폐색전증'으로 사망한 환자 권순일의 직접적인 사망원인과 '오진'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 유가족 측이 항소하면서 극중 긴장감을 높여가고 있다.

하지만 궁금한 게 있다. 드라마와 달리 실제 병원에서는 극중에서 사망한 권순일 같은 환자를 어떻게 진료할까? 정말 장준혁처럼 환자를 방치하고, 외과 1년차인 염동일(기태영)처럼 죽어가는 환자 앞에서 우왕좌왕하며, 내과교수인 최도영은 전혀 손을 못 쓰고 힘없이 병원을 그만두어야 할까?

<하얀거탑>, 그 중심에 '장준혁과 최도영'이 있다면 그 주변부에는 '시청자'들이 있다. 드라마에서 환자 권순일의 '죽음의 진실'을 알기 위해 법정공방을 벌이듯 시청자들은 방송이 전해주는 것이 의료계 상황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 필요가 있지 않을까?

드라마 속 병원과 실제 병원의 '차이'

구미병원 나목찬 외과과장은 "장준혁처럼 환자를 방치하거나 염동일처럼 우왕좌왕하는 일은 실제 의료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구미병원 나목찬 외과과장은 "장준혁처럼 환자를 방치하거나 염동일처럼 우왕좌왕하는 일은 실제 의료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 전득렬
드라마 속 병원과 실제 병원,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극중 등장하는 질병들이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도 발생할까? <하얀거탑>을 더 사실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을 나목찬 구미병원 외과과장과 전 포천중문의대 구미차병원 내과교수인 서영배(의학박사) 강심내과 원장을 통해 알아봤다.

"드라마 속 병원과 실제 병원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시청자들이 의료계의 '진실'을 모른 채 방송만을 보고 드라마 속 의료계가 '진실'이라고 믿는다면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나목찬 구미병원 외과과장은 "실제로 종합병원의 내과는 <하얀거탑>의 권순일같은 환자가 입원하면 내과에서 췌장암의 '병기(병의 진행정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선행 된다"고 설명한다. 이후 췌장 이외의 부위에 암세포의 전이가 있다면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를 해야 하고, 췌장암에 국한된 암이라면 '외과적인 수술(근치적 절제술)'이 필요하다고 한다.

또 그 자료를 토대로 내과와 외과가 긴밀하게 협진하며 진료한다고 한다. 외과에서는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수술을 집도하기 때문에 <하얀거탑>과 같은 '의료분쟁'의 극한상황이 발생하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라고 설명한다.

혈전이 폐동맥 막아서 생기는 '폐색전증'은 어떤 병?

시장에서 포목상을 운영하며 어렵게 살아가고 있던 권순일 부부. 부부는 남편인 권순일씨의 기침이 심해지자 명인대학교병원을 찾는다. 그리고 '췌장암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시작한다.

이때 최도영은 '폐생검(폐조직검사)'을 권유했지만 외과과장 장준혁에게 묵살 당한다. 최도영은 췌장암이 폐로 전이돼서 환자의 병세가 더 나빠진 것일 수도 있으니 '폐생검'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장준혁은 흔한 폐결핵의 흔적이라 단정 짓는다.

장준혁은 환자를 염동일에게 맡기고 제주도에서 열리는 세계외과학회에 참석한다. 권순일은 췌장암 수술을 받고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응급상황으로 빠져든다. 이때 염동일은 장준혁에게 연락을 취하지만 도움을 받지 못하고, 부랴부랴 최도영을 찾았지만 환자는 결국 사망하고 만다.

폐동맥을 막아 발생하는 '폐색전증'은 수술 사망률도 6.6∼23%로 높게 보고되고 있다.
폐동맥을 막아 발생하는 '폐색전증'은 수술 사망률도 6.6∼23%로 높게 보고되고 있다. ⓒ 전득렬
권순일을 죽음에 이르게 한 '폐색전증'의 정확한 명칭은 '폐동맥 색전증'이다. 전 세계적으로 1년에 수 백 만 명의 '폐색전증' 환자가 발생하며, 이 중 15%가 사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발병률의 통계가 아직 없는 상태며 미국의 경우 매년 60여 만 명이 발생한다고 한다. 항공료가 저렴한 '이코노미 클래스' 좌석에서 오랫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장시간 비행을 하면 나타날 수 있는 질병이라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이라도 한다.

오랫동안 앉아 있는 자세를 취할 경우 누구나 걸릴 수 있다. 폐렴이나 심부전, 비만, 흡연, 당뇨, 중풍 같은 병으로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을 때 발병할 수 있는 질병이다. <하얀거탑>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지면서 조금은 익숙해진 병명이 된 것은 <하얀거탑>이 주는 긍정적인 측면이다.

'폐색전증'은 '심부정맥(다리의 깊은 곳에 있는 정맥)'에서 피가 정체되면서 혈전(혈액의 응고덩어리)이나 지방덩어리, 이물질 등이 폐동맥을 막아 호흡 능력이 감소하고 폐조직을 괴사시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질병이다. <하얀거탑>에서 염동일은 '폐색전증'으로 호흡곤란이 시작된 환자 권순일의 가슴을 응급 마사지하고 전기쇼크를 주는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는데, 이는 호흡능력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폐전이 여부 확인되면 수술 하지 않아야"

갑작스런 권순일의 죽음으로 아내는 망연자실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주위의 도움으로 소송을 시작한다. 그리고 '췌장암'으로 입원한 남편이 부검결과 '폐색전증'으로 사망했다는 것을 알고 '오진'이라 판단한 것이다.

소송의 이유는 폐에 암 전이가 있으면 췌장암 수술을 하면 안 되는데 장준혁은 췌장암 수술을 집도했기 때문. 장준혁의 잘못된 진료와 적절치 못한 대응으로 죽은 남편을 위해 거대 병원조직과 맞선다는 것이 극중 소송 내용의 핵심이다.

하지만 <하얀거탑>의 진료장면과 설정 자체가 실제와 많이 다르며, 과장된 면도 적지 않다는 것이 의사들의 의견이다.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외과과장 투표제는 제쳐두고라도, 중환자의 진료 시스템마저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는 것.

먼저 의사들은 췌장암 환자인 권순일의 경우, 내과 교수인 최도영이 흉부 X선상에서 전이가 의심되는 병변이나 과거 결핵의 병변이 있었다는 것을 쉽게 발견했을 거라고 말한다. 발견 후에는 곧바로 '흉부전산화단층촬영(CT)'이나, 폐조직 검사(폐생검) 등으로 췌장암의 전이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이후 폐전이 여부가 확인되면 수술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서영배 박사의 설명. 하지만 <하얀거탑>에서는 이 모든 검사를 생략한 후 곧바로 외과 장준혁에게 전과되어 수술을 시행하는 것으로 나온다. 나목찬 과장과 서영배 박사는 "이것은 전혀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외과 장준혁과 내과 최도영 협진은 진료의 '공식'

전 포천중문의대 구미차병원 내과교수인 서영배 박사는 <하얀거탑> 속의 '폐색전증'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질병이라고 설명한다.
전 포천중문의대 구미차병원 내과교수인 서영배 박사는 <하얀거탑> 속의 '폐색전증'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질병이라고 설명한다. ⓒ 전득렬
드라마에서처럼 췌장암 수술 후 폐렴증상이 심하고 숨을 제대로 못 쉬는 상황이 발생하면, 염동일처럼 혼자서 좌충우돌하면서 우유부단하게 아무런 결정을 못 내리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나목찬 외과과정은 설명한다.

외과 1년차인 염동일 선에서 진료가 안 되면 2년차, 3년차, 4년차 그리고 전임의(임상강사)에게로 차례로 연락이 취해져서 외과의 모든 의사가 함께 치료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 그래도 여의치 않으면, 내과에 협진을 의뢰하고 최도영에게 전과되어 집중적으로 재검사를 하고 치료를 하는 게 현 의료계 상황이라고 한다.

이처럼 드라마와는 달리 외과수술 전에 내과에서 보다 정확한 검진을 해서 병변을 알아보는 것은 진료에 있어서 '공식'이라고. 드라마에서는 X-레이 검사만 한 것으로 나와 있는데 실제 '컴퓨터단층촬영'과 '폐생검'은 기본이라고 한다.

이를 통해 암세포가 폐로 떠내려갔는지(췌장암의 폐 전이), 혈전(피떡)이 생겨 폐동맥이 막혔는지(폐색전증)는 바로 확인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얀거탑>에서의 '폐색전증'은 장준혁의 췌장암 수술로 인한 합병증으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췌장암이 폐로 전이 될 경우에는 수술이 아닌 항암치료로 바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 의사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대한내과학회지 최근호에 의하면 췌장암은 수술을 하더라도 5년 이상 생존할 확률이 10% 밖에 되지 않는, 예후가 매우 나쁜 '악성종양'이라고 한다. 또 '폐색전증'의 수술 사망률도 6.6∼23%로, 꽤 높은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 그렇다면 드라마에서 요구하는 '오진'은 무엇을 의미할까. 생존할 수도 있지만 사망할 확률이 더 높은 질병들을 '설정'하고, 또 '오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장준혁의 '도덕성'에 기준을 둔 듯하다.

이처럼 현 의료상황과 드라마 속 설정은 다르다. 때문에 시청자들은 이를 제대로 알고 드라마를 시청해야 한다. 드라마 속에서는 병원 측의 '오진'으로 결론지어질 수 있지만, 실제 생활에선 병원에 대한 '오인'으로 나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