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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평양=연합뉴스) 이재정 남측수석대표와 권호웅 북측수석대표가 2월28일 오전 평양 고려호텔에서 열린 제 20차 남북장관급회담 전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 ⓒ 사진공동취재단 | | 뭐라고 해야 할까? 너무 잘 알아서 병인가? 아니면, 심사가 꼬일 대로 꼬여서일까?
어제 평양에서 열린 남북장관급 회담 '풍경'을 전한 <중앙일보> '북측 권호웅의 실언?'(이영종 기자)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언론계에서는 북한 전문기자로 널리 알려진 이영종 기자가 권호웅 북측 단장(내각 책임참사)의 '실언?'으로 지목한 대화는 김구 선생과 관련한 대화였다.
어제(28일) 남북장관급 회담 첫 전체회의에서 남측 수석대표인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우리 민족의 가장 위대한 인물이 김구 선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죠?"라고 말하자 권 단장이 "예"라고 맞장구를 친 것이 '실언'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친절하게 그 대목을 기사의 소제목으로 뽑기도 했다.
<중앙>이 보도한 권호웅 북측 대표의 '실언'
기자 제목만 보고 도대체 그 말이 왜 실언일까 궁금했다.
이 기자의 분석을 보자.
"김일성을 민족최고위인으로 치켜세우며 '조선민족=김일성민족'으로까지 칭해온 북한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답변이었다. …권 단장 자신도 '실언'을 깨달은 듯 몇 분 뒤 "김구 선생뿐 아니라 여운형·김규식 선생 모두 애국지사"라고 수습에 나섰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 기자의 해석에 따르자면 그런 김일성 북한 전 주석을 제쳐놓고 '우리 민족의 가장 위대한 인물'이 김구 선생이라는 말에 맞장구를 쳤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렇다면 그런 북한체제에서 내각 참사이자 남북회담 대표 자리까지 오른 북한의 최고 엘리트가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 다시 이 기자의 분석을 보자.
"남북 대표는 전날 첫 대면부터 신경전을 벌였다. 권 단장은 이 장관의 말을 두세 차례 끊으며 "98년에는 단장이 아니었죠. 그 땐 민간 대표였는데 이번엔 당국 대표단장으로 상상할 수 없는 도약을 했다"며 심기를 건드렸다. 15살 위인 이 수석대표가 당국대화 경험이 없는 걸 겨냥한 말이었다. 이 수석대표는 "난 해방도 겪고 6·25도 겪었다"며 연륜으로 맞섰다. 회담 관계자는 "이 장관과 초반 기싸움을 벌이던 권 단장이 방심하다 돌이킬 수 없는 실언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 초반 기싸움을 벌이던 권 단장이 방심하다 한 실언이었다! 그런데 의문이다. 초반 기싸움을 벌이던 사람이 방심은 왜 하나?
당시 현장에 있지 않았으니, 이 기자가 쓴 기사 내용의 문맥이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 없다.
같은 현장, 그러나 <조선>은...
하지만 같은 정황을 전한 <조선일보>의 '너무 뻣뻣한 권호웅-쌀·비료 요청하면서도 할 말은 다해'(안용균 기자)를 보면 이 기자의 '전언'이 정확한 것인지, 그 맥락이 과연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안용균 기자의 기사를 보자.
"권 단장은 또 이 수석대표가 김구 선생 이야기를 꺼내자 "여운형·김규식 선생께서…"하며 외세배격이 중요하다는 식으로 받아치기도 했다."
정리해보자. 이영종 <중앙일보> 기자의 기사에 따르면, 이재정 장관이 해방 정국 당시 남북이 갈라질 위기에 어떻게 해서든 민족이 하나가 돼야한다고 온 몸을 던졌던 김구 선생을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 치켜세운 데 대해 권호웅 단장이 '민족의 최고위인 김일성'을 망각하고 맞장구치는 실언을 했다가 뒤늦게 여운형·김규식 선생까지를 애국지사로 거론해 실언을 수습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용균 <조선일보> 기자는 이 장관이 그런 김구 선생을 치켜세운 데 대해 (김구 선생 까지를 포함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여운형·김규식 선생을 거론하면서 '외세배격'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하나의 공통점은 발견된다. 권 단장이 김구선생은 물론 여운형·김규식 선생을 모두 애국지사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김구 선생을 민족의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 맞장구 쳤다는 것이 '실언'이라는 이 기자의 '해석'이다.
말 이라는 것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한다. 그런 만큼 말은 아주 복잡미묘하다. 하지만 '아'라고 말하든, '어'라고 말하든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 또 말이기도 하다. 큰 맥락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대강'과 '본심'을 읽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권 단장의 '네'라는 '한마디 응답'에서 '실언'을 족집게처럼 뽑아낸 이 기자의 그 섬세하고 예리한 포착력은 정말 놀랍다. 그런데, 그것이 진정 '실언'이라면서 정색을 하고 쓸만한 '실질적인 내용'과 '무게'를 갖는 발언이었을까?
<중앙>은 남북 '신경전' - <경향>은 남북 '화기애애'
<경향신문>이 전한 이재정·권호웅 남북 수석 대표간 대화 분위기는 이와는 딴 판이다("겨울없는 남북관계 만들자", 유신모 기자). 권 단장은 "겨울이 없는 북남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고, 이 장관은 "봄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어 "이번 회담은 자연기의 해빙기가 북남관계의 해빙기와 절묘하게도 일치되는 계절에 진행된다.
계절적으로나 상황적으로나 의미가 깊은 회담"(권호웅)이라는 말에 "눈 내릴 들판을 걸어갈 때는 내 발자국이 이정표가 될 것이기 때문에 발걸음을 어지럽게 가지 말아야 한다"(이재정)는 화기애애한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고 한다. 둘이 함께 회담장으로 걸어가는 사진 또한 아주 정겨워 보인다.
이 기자의 지적처럼 권 단장이 '있을 수 없는 실언'을 한 것이라면 두 대표가 이처럼 서로 죽이 너무 잘 맞아 '방심'해 별 생각 없이 '맞장구'친 것인지 모른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또 왜 북측 기자도 아닌, 남측 기자가 그렇게 문제를 삼나? 북한을 너무 잘 알다 보니까 이제는 북측 인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도 '북측 시각'에서 철저하게 '검열'하는 수준에까지 오른 것일까?
기자야말로 전문성도 전문성이지만 '마음'과 '태도'를 항상 가다듬어야 할 사람들이 아닐까. 3·1절 아침, 텅 빈 사무실에서 신문 뒤적이며 문뜩 떠오른 단상이다.
그나저나 북한의 3·1절 풍경은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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