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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 날도 풀리고 햇살도 달달한 것이 오랜만에 평상에 나와 분위기 잡으며 커피나 한잔 땡기려 했다. 물론 또 배추도사가 빗자루 들고 올라와 낭만은 남태평양 너머로 사라져 버렸지만..

'저 영감은 전생에 넝마주이 짐보따리였나, 뭐가 떨어져 있는 꼴을 못 봐.'

속으로 궁시렁거리다 결국 물청소까지 하게 된 꼬냥이. 호스를 들고 먼지도 없는 옥상에 물을 뿌리고 있으려니, 참 내 모습이 어찌나 가련한지, 1년에 한번 불쑥 고개를 드는 자기연민에 새삼 사색에 잠겼다.

지금은 배추도사에게 쥐어 살며 하루하루 무사히 지나감에 감사하는 세렝게티의 톰슴가젤 꼬냥이이지만 꼬냥이도 과거에는 조폭을 쥐락펴락하던 시절이 있었다. 훗, 또 무슨 사기를 치려냐는 듯한 눈빛, 부담되니까 거둬주시라. (넣어둬, 넣어둬)

홀아비 조폭 3종 세트의 출몰!

@BRI@때는 꼬냥이 파릇파릇하던 스물 셋 시절, 집에서 팡팡 용돈 받아쓰고 게임만 하며 도끼자루 썩히고 있을 때였다. 부산 사는 할매 쌈짓돈 보내줘, 아버지 생활비 보내줘, 꼬질하지만 자잘한 글 써서 원고료 타, 출퇴근 일 안하고도 한달 수입이 백 단위는 넘었으니 참 좋아, 좋아. 그리워, 그리워.

그러니 게임하고 싶으면 밤새도록 게임해, 쇼핑하고 싶으면 맘대로 긁어, 여행하고 싶으면 훌쩍 떠나버려… 이건 뭐 세상에 두려울 게 없었다.

하루는 며칠 머리 좀 식히련다 하면서 혼자 섬에 들어갔다가 4일만인가 집엘 들어왔는데 내 집 문 앞에 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것이 아닌가. 옆집에 이사를 온 것이다. 아니, 이사는 이사고 남의 집 대문 앞에 짐을 쌓아놓으면 사람이 어떻게 들어가라고… 날은 더운데 성질이 솟구쳐서 발로 짐을 툭툭 치며 말했다.

"아저씨, 이거 치워요. 사람 들어가는데…"

그때 짐을 나르고 있던 남자들은 대략 4명. 40대부터 2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라 홀아비 3대로 봤다.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는 홀아비 3대. 허리춤에 손을 떠억 올리고 발로 짐을 툭툭 차는 꼬냥이. 지나고 생각하니 그땐 참 뇌를 어디 태평양 바닷물에 담가놨던 것 같다. 어려서 철이 없었다고 봐주시면 감사, 감사.

"아니, 아가씨, 옆집 아가씬가 본데 그래도 짐을 발로 차면 안되지."
"들어가야 된다고요! 피곤해 죽겠구만."

누가 들으면 철야근무라도 하고 들어온 줄 알겠네, 지가 좋아서 여행 다녀와서 왜 그리 까탈스러웠던지.. 홀아비들은 뭔가가 울컥 하다가 참는 듯 짐을 턱턱 옆으로 옮겼다.

"들어가쇼."
"췟."

고맙단 인사도 안하고 쾅! 문을 닫고 들어가는 꼬냥이. 아.. 내가 왜 그랬을까. 정말 그 나이 때 꼬냥이를 지금의 내가 봤다면 거꾸로 매달았을 것 같다. (사약을 내리라!!) 그땐 몰랐지만 나중에 그들이 조폭이라는 사실을 알고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덜덜덜 떨렸다.

조폭들에게 전쟁을 선포하다!

▲ 덤벼라, 3종 세트!
ⓒ 박봄이
홀아비 조폭들이 이사를 오면서 밤이고 낮이고 시끄러워 살 수가 없었다. 그윽한 커피를 음미하며 음악을 켜놓고 사뿐사뿐 리!니!지!를 즐기려는 엘레강스한 꼬냥이의 취미&일상이 깨져버린 것이다. 젠장!

밤만 되면 어디서 언니들을 그렇게 끌고 기어들어 가는지 왜 또 그 언니들은 술만 마시면 울고불고 웃고 무슨 버라이어티쇼를 찍는 것도 아니고.. 도저히 꼬냥이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불건전한 모습이었다. 그들이 웃으면 너도 웃으라, 그들이 울면 너도 울라. 그렇다, 그들이 술에 취해 소리를 지르면 꼬냥이도 볼륨을 최대한 올렸다.

물론 다른 앞집 뒷집 사람들은 죄도 없이 희생양이 된 꼴. 그 작은 주택에 밤새도록 술 취한 사람들의 부산 갈매기~ 노래 소리와 게임 속 몬스터들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부산~ 꾸웨엑! 갈~매기! 크엉! 켕켕켕!)

그렇게 연달아 3일을 집들이 때문인지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난 후, 좀 한산해진 어느날 밤이었다. 새벽 3시,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누구쇼?"
"나 옆집사람이에요."

홀아비 3대 중에 막내 홀아비였다.

"왜요?"

아니, 이 새벽에 무슨 일? 혹시 지난 3일 동안의 일로 행패라도 부리려는 걸까? 순간 겁이 아주 조금, 아주 아주 조금 나긴 했다. 흥!

"아 옆집인데 통성명이나 하자고요."
"새벽에 무슨 통성명이요, 됐거든요."
"그러지 말고 물 한잔 줘요."
"그 집에는 수돗물 안나와요?"
"안나오네? 커피 한잔 합시다."
"웃기시네!"

방으로 냉큼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누굴 칠득이로 아나.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삭히고 다시 엘레강스한 취미 생활에 몰입했다.

엇, 그런데 갑자기 게임이 멈춰버리는 것이다. 이상하네? 이상하네? 약 끊긴 중독자처럼 바들바들 떨며 인터넷으로 들어가 보니 인터넷도 연결이 안됐다. 아 렙업이 눈 앞인데… 죽었으면 어쩌지. 아이템이라도 떨궜으면 어쩌지. 하는 수 없이 그 새벽에 게임방으로 달려갔다. 하나의길 통신사를 원망하면서.

게임 캐릭터의 무사함을 확인하고 아침까지 게임을 즐기고 들어와 하나의 길에 전화를 해 기사 아저씨를 불렀다.

"아저씨! 내가 하나의 길을 몇 년 사용했는데 왜 이래요, 아 정말!!"

죄 없는 하나의 길 아저씨. 묵묵히 죄송하다며 인터넷 선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이상하네요."
"뭐가요!"
"선에 손댔어요?"
"아뇨!!!!! 아무 짓도 안했거든요!"
"어? 왜 인터넷 케이블이 티비 유선 케이블에 연결돼있지?"
"뭐요?"
"옆집 티비 유선 줄이 연결돼있네요, 옆집에서 그랬나 봐요."

아오!!! 저 홀아비들!! 하나의 길 아저씨도 어이가 없다는 듯 작업을 다시 했고 옆집 문을 두드렸으나 자는지 없는지 인기척이 없었다. 하나의 길 아저씨는 다시 한번 무단 연결 시 손해배상 청구한다는 내용의 쪽지를 적어 주셨다.

화해? 웃기시네~!!

그날 밤, 대문을 활짝 열고 그들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내 너희를 응징하리라!! 새벽 2시쯤, 터덜터덜 들어오는 홀아비들. 꼬냥이는 냅다 쪽지를 들고 뛰어나가 홀아비들 앞에 던졌다.

"이거 TV 선 아니거든요! 컴퓨터 인터넷 선이거든요! 아저씨들 때문에 밤새도록 아무 일도 못했단 말이에요!" (일은 무슨.. 웃기시네)

놀라는 듯한 홀아비들, 막내 홀아비가 주춤주춤 다가왔다.

"아 죄송해요. 몰랐어요. 유선줄인줄 알고…"
"됐거든요! 통신사에서 한번 더 그러면 손해배상 청구한다니까, 알아두세요!"

휙 돌아 문이 부서져라 닫고 들어갔다.

'오우케이~!! 이 정도면 알아들었겠지.' (아주 신났구나, 신났어.)

알 수 없는 뿌듯함, 이겼다는 성취감!!! 든든한 마음으로 다시 게임에 몰입했다. 그날따라 왜 그리 좋은 아이템은 잘 나오고 적 캐릭터는 칼질 한두방에 쭉쭉 뻗어주시는지, 나 지존될까봐.

그날 아침, 목도 마르고 슈퍼에서 음료수나 사올까 하고 나갔다. 그런데 문 앞에 뭔가 딸깍 걸리는 것이 아닌가. 문 앞에 놓여 있던 건 웬 과일들. 더군다나 업소에서나 있을 법한 하늘색 넓은 접시에 다소곳하게 놓여있는 흡사 과일안주와 같은 모양새.

"뭐야, 이거."

랩에 착하게도 싸여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과일안주와 그 위에 쪽지 한 장.

'미안해요, 먹던거 아니에요. 화 풀어요.'

어디서 업소용을 들고 와서 화해야? 쪽지에 덧붙여서 적었다.

'웃기시네.'

옆집 문 앞에 접시를 턱 밀어놓고 랄랄라~ 발걸음도 가볍게 슈퍼로 고고! 왜 그리 아침 바람이 상쾌하던지….

시끄러워! 요란해! 민폐야! 즈질이야! 싫어! 싫어!!

지금 생각하니 나름 매너를 차려 화해를 시도한 것이었고 지금의 꼬냥이 같았으면 그깟 화난 거 수백 번도 더 풀었겠지만 그때의 꼬냥이는 싫은 건 죽어도 싫은, 싫은 사람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는 많이 까칠한 백조언니였다. 꼬냥이로서는 시끄럽기만 하고 민폐나 끼치는 그들이 너무너무 싫었기에 사과를 받을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죽이 되나 밥이 되나 한번 해보자는 마음 뿐, 앞으로 저 홀아비 3종 세트와의 전쟁에 단단히 대비하자고 마음먹는 철닥서니 칠득이 꼬냥이였다.

그리고 그날!

두둥!!

덧붙이는 글 | 다음 편에 계속 됩니다.


태그:#조폭, #홀아비, #꼬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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