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안혜령의 <농부의 밥상>.
안혜령의 <농부의 밥상>. ⓒ 소나무
전남 진도 김종북, 장금실 댁에는 온갖 푸성귀가 등장한다. 상추, 쑥갓, 방아, 왕고들빼기, 샐러리, 가죽나물, 방가지똥, 참나물, 싱아, 고수 등등.

제일 부러운 말은 "뭐든지 먹기 직전에 바로바로 거두어 상에 올린다"는 대목이다. 이야말로 싱싱함 그 자체가 아니고 무엇일까?

그런데 푸성귀도 제철에 먹어야 제격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제철을 무시하고 자란 푸성귀는 몸이나 입맛이나 당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금실씨가 가장 정성을 쏟는 것은 된장이라고 한다. 어떻게 담그는지 궁금하다. 우선은 쓰는 콩부터 남다른 것 같다. '옥광'이라는 종자인데 당도가 높고 일반 콩에 비해 좀더 굵고 크단다. 그럼 들어보자.

(제일 큰 종자만) 골라낸 콩을 불려서 압력솥에다 찐다. 이때 물을 버리는 일이 없도록 양을 맞춤하게 잡는 일도 중요하다. 이렇게 하면 일반 솥에 "버글버글 끓인" 콩으로 만든 메주에 견주어 단단하고 잘 흩어지지 않는다. 잘 익은 콩을 절구질을 해서 또 "꽉꽉 눌러 갖고" 메주를 띄운다.(28~29쪽)

@BRI@울산의 김제홍씨는 농부이자 짚 공예가다. 재료가 재료이다 보니 좋은 볏짚을 얻기 위해 고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반드시 낫으로 베어 발 타작을 한다. 그래야 길이도 유지하고 이삭 부위도 손상을 입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집 신응희씨의 대표 음식은 '메밀'이다. 메밀은 집에서 직접 가루를 내는데 이때 사용되는 맷돌은 완전히 갈아내는 맷돌이 아니라 '곡식 껍질을 깨는' 맷돌이다. 맷돌에 간 것을 체에 치고 키로 까불어 메물쌀을 만들고 이것을 물에 하룻밤 재워두었다가 방앗간에 가 빻아 와서 다시 한 번 체로 치면 고운 메밀가루가 된다.

전남 벌교의 강대인씨는 산야초와 해초로 만든 '백초액'의 개발자이다. 그래서 이 집의 마당은 이를 담가둔 독들로 즐비하다. 이 집의 밥상이 기대된다.

강대인씨가 일명 '벼박사'여서일까? 이 집의 밥상에는 '오행미'가 올라온다. 오행미는 각각 색깔이 다른 백미, 현미(황색), 적미, 녹미, 흑미의 다섯 가지 쌀을 한데 묶어 이르는 말이다.

아삭아삭 씹히는 '매실 절임'이 올라오고 쌉쌀하면서도 매콤한 '가죽 자반'도 올라온다. 전양순씨가 알려주는 고추장 만드는 법도 들어보자.

찹쌀을 씻어 이십 일 동안 항아리에 담아둔다. 찹쌀이 상하지 않을까 염려스러운데, 절대 안 상한다. 그 전에 콩하고 밀을 함께 섞어서 띄웠다가 말려 가루를 내 놓는데, 이 가루하고 찹쌀 씻어놓은 것을 함께 옹기 시루에 쪄서 고두밥을 해서 담아놓으면 잘 삭는다. 여기에 소금물을 부어서 익반죽(가루에 끓는 물을 쳐 가며 하는 반죽)을 한다. 이것을 항아리에 넣어 두면 발효되고 숙성이 되면서 색이 좀 칙칙해진다. 그러나 맛은 기막힌 고추장이 된다.(73~74쪽)

한두 과정은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도 같다. 그러면서 동시에 '항아리'가 참 신통하다는 생각도 든다. 음식을 받아들이고 또 그 안에서 맛 들게 만들어내는 신묘한 기운이 놀랍다.

전양순씨는 음식을 만들 때 즐거워야 음식도 맛있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부엌도 밝은 쪽에 잡았다.

경북 울진의 강문필, 최정화 부부는 전통적인 김치 저장법을 이야기한다. 김칫독보다 흙을 사오십 센티미터쯤 더 깊게 파고 항아리를 묻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지난해 김치를 올해까지도 먹을 수 있다.

이 집도 신나는 일이 있다. 일종의 농법으로부터 벌어지는 일이다. 천둥번개가 치자 진딧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착안한 것이라는데 밭에서 징 치고 꽹과리 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해충들이 떨어져나가고 작물들도 더 잘 자란다고 한다.

이야기 중에는 '마음공부'라는 말도 와 닿는다. 욕심 없이 그저 제 먹을 것 제가 지어가며 그렇게 농사지으며 마음공부 한다는 말이겠다. "토종 농사꾼"이 되고 싶다는 이들 부부의 바람이기도 하다.

자연 안의 모든 존재물이 다 하느님을 깨닫던 그 초심을 온전히 회복하고 이루는 "마음공부"를 깊이 하고 싶다. (중략) 좀더 나이 들면 "둘 먹을 밭뙈기 조금 하면서" 남들 돌보는 자원봉사 같은 일을 하고 싶다. (101쪽)

책장을 넘기다가 군데군데 만나는 고향 풍경은 반갑다. '옥수수 말리는 것', '나란한 솥', '호박 쌓아놓은 것', '막 따온 듯한 소쿠리의 콩꼬투리', '아궁이에서 활활 타들어가는 장작불' 이런 것들이 바짝바짝 다가드는 느낌이다.

책을 읽다 보면 심심찮게 고향말도 함께 실려 오는데 어떤 것은 알겠고 또 어떤 것은 도통 모르겠다. 그럼에도 문맥을 살살 긁어보면 알 듯도 싶은 것은 고향을 늘 마음속에 두고 있기 때문인가 보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안혜령 / 찍은이: 김성철 / 펴낸날: 2007년 2월 5일 / 펴낸곳: 소나무 / 책값: 1만1000원


농부의 밥상 - 유기농 대표농부 10집의 밥상을 찾아서

안혜령 지음, 김성철 사진, 소나무(2007)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