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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무(常無) 김동주
그동안 겨울은 어디에 있었을까? '바다 이야기' 마냥 처음에는 고래가 수십 마리 튀어나올 것처럼 (수사한다고) 설치다가도 끝내 송사리 몇 마리 뱉어놓고 마는, 기어코 힘 한 번 못쓰고 엉거주춤 물러가는 이번 겨울은 그동안 어디에 눌어붙어 있다가 핫바지에 무엇 빠지듯 슬며시 새어버린 것이었을까. 전매특허인 매서운 추위도 세상을 깔아뭉개 버릴 눈 한 번 제대로 뿌려보지 못하고.

그래서인지 어쩌면 어딘가에는 겨울이 아직 물러가 버리지 않고 눈망울을 빤짝이며 개구쟁이처럼 숨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또 그렇게 쉬이 보내버리면 그나마 너무 허망할 것 같은 생각도 들어, 겨울이 사라지는 길목, 태백산으로 겨울의 꼬리를 찾아나서기로 했다.

서울에서 태백 가는 길은 구절양장으로 봄날 아지랑이의 어름거림 같았으나, 차에서 내려 유일사 매표소 길로 접어들자 그곳은 아직 겨울이라 불릴만했다. 달아나기에 바쁜 도마뱀이 꼬리를 끊어 피해가듯, 채 멀리 가지 못한 겨울이 그의 긴 꼬리를 그곳에 남겨두었다.

눈이었다. 눈은 아직 길 가상자리로 발목이 빠질 만큼 남아있었고, 응달의 경사진 곳에서는 제법 농가의 두엄더미처럼 오롯이 쌓여 있기도 했다. 그것들은 퇴로가 차단된 패잔병처럼 보급 줄이 끊긴 채 옹송거리며 태백산 속에 숨어 있었다.

우리는 그 겨울의 꼬리를 밟으며 산행을 시작했다. 등산객들은 줄을 이어 마치 겨울을 붙잡기라도 하려는 듯 겨울이 달아난 북쪽 산정을 향하여 부지런을 떨었다. 바람 몇 줄기 지나가다 쉬다 하며 존재를 알렸으나 주목나무 위에 눌어붙은 눈꽃 몇 송이를 날려버리지는 못하였고, 산새 몇 마리 나무 뒤에서 높게 울었으나 사람들의 떠들썩함을 잠재우지 못했다.

유일사를 지나서 가파른 오르막에 들어섰다. 몇 년 전 아내와 아이와 처음 겨울의 태백에 왔던 생각이 났다. 그날 눈은 엄청 내렸고 산행에 초행인 아내는 힘들어하여 이곳에서 우리는 되돌아섰었다. 잠시 그때 생각이 났다.

ⓒ 제정길
그날 날씨는 적당히 추웠고 바람은 조용하고 그리고 눈은 우리의 기대대로 충분히 와 있었다. 산행은 아이같이 들떠서 시작되었다.

아이젠을 하고, 털모자를 쓰고, 방한복을 입고,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며, 전나무가 높이 서서 지시하는 손짓에 따라 우리는 선계(仙界)로 희희덕거리며 들어갔다.

조금 가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전나무와 소나무와 아직 어린 주목들이 기도하며 서 있는 사이로, 눈은 처음엔 엽서처럼 편편이 흔들리며, 그리고는 이내 시무룩한 아내같이 말없이 잽싸게, 이윽고 별이 쏟아지듯이, 하늘이 엎어져 별이 전부 한꺼번에 쏟아지듯이 그렇게 내리고 있었다. 눈은 모두를 조용하게 하였다. 재재거리며 오르던 등산객들도, 산새도, 나무도, 바위도 그리고 또 눈 자신도 조용조용히 내렸다. 산은 가만히 엎드려 눈을 조용히 받았다.

ⓒ 제정길
그때 나는 보았다. 태백에서의 눈은 산을 덮는 것이 아니라, 내려서 산을 채우는 것이라는 것을.

서울에서, 도시에서의 눈은 거리를 덮으며, 차를 덮으며, 가로수를 덮으며, 높은 빌딩의 이 맛 자락이라도 덮으려 하며 내려, 몇 시간을 도시를 흰색으로 페인팅해둔다. 단지 몇 시간만을. 마치 먹다 남긴 아침상 위에 점심을 위하여 흰 밥상 보를 서둘러 덮어놓듯이.

그러나 태백의 눈은 그저 소리없이 내려 산을 차곡차곡 채우고 있었다. 눈이 산의 한 부분인 것처럼. 눈이 쌓여서 산은 비로소 하나의 개체로서 완성되고 그래서 더욱 황홀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쌀독에 소담스럽게 담겨 있는 쌀이 있어 농가의 부엌 풍경이 아늑해지는 것처럼….


ⓒ 常無 김동주
차차 천제단이 가까워지자 경사는 느슨해지고 하늘은 실개천보다 넓어졌다. 주목 수십 그루, 여기저기에서, 산 것도 죽은 것도 묵묵히 세월을 내려다보고 있고, 사람들은 숨을 몰아쉬면서도 세월이 스쳐간 주목을 주목하여 바라보았다. 그것들은 시간이 헤집고 간 흔적이며 세월의 꼬리처럼 보였다.

ⓒ 제정길
겨울의 꼬리 끝은 천제단까지 내내 이어졌다. 천제단에는 드러난 햇살 아래 겨울의 꼬리는 꼬리를 감추고 봄날의 돌담 아래처럼 아늑하였다. 볕 바른 곳에서 점심을 하고 망경사를 거쳐 당골로 내려오니 해는 아직 노루 꼬리만큼 남아 있었다.

산행은 좋았다. 비록 북으로 재빠르게 피신한 겨울의 몸통은 붙들지는 못했으나 그가 도마뱀처럼 떼어 놓고 간 눈으로 만든 꼬리는 다리가 아프도록 밟아 볼 수 있었다.

왜 사람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지나가는 것을 자꾸 붙잡으려 하는 것인지, 결코 되돌릴 수 없음을 번연히 알면서도 가버린 것에 헛손질을 하는 것은 무슨 종류의 노탐이라 불러야 하는 것인지, 구절양장길을 차를 타고 되돌아 내려오면서 생각은 내내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함이란….

스님은 이 눈밭에 무엇의 꼬리를 찾으려 고행을 하고 계시는고?
스님은 이 눈밭에 무엇의 꼬리를 찾으려 고행을 하고 계시는고? ⓒ 상무(常無) 김동주
이제 돌이켜 보면 백수에 이른 나의 인생은 어디에 내리는 눈이었을까? 도시의 번잡한 아스팔트 위에 내려, 차바퀴에 깔리고 염화칼슘에 부식되어, 질척이며 하수구를 헤매고 있은 것은 아닐까? 시작은 빌딩이라도 덮을 듯이 호기롭게 내리나, 밥상보 만큼의 쓰임새도 없이 이제 해빙(解氷)을 기다리고 있는 나의 눈(雪).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내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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