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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상반기 통권 6호로 발행된 <작가와 비평>
ⓒ 컬처뉴스
1990년대 우리 문학이 ‘내면의 문학’으로 호명됐다면 2000년대 이후 우리 문학을 호명하는 대표적인 방식은 ‘새로운 상상력’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상상력’은 2007년 봄, 여전히 유효한 명제다. 올 봄 문예지들은 이 ‘새로운 상상력’의 양상을 짚기도 하고 정체를 묻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새로운 상상력’의 기제로서 ‘하위문화’의 가능성을 묻는다.

반년간지 <작가와 비평>은 이번 상반기 특집에서 ‘경계를 넘어서’라는 주제로 최근 우리문단의 새로운 상상력이자 징후로 등장한 ‘경계 넘기’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총론을 쓴 고봉준 평론가는 '추방과 탈주 : 타자ㆍ마이너리티ㆍ디아스포라'라는 글에서 ‘타자’를 공포와 환대, 교환의 방식으로 대상화하고 있는 논의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이주노동자와 불법체류자들에게서 지고한 인간적 가치의 아름다움만을 보려는 문학적 시도는 이방인을 무조건 악/병균으로 간주하는 적대적 태도만큼이나 위험하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디아스포라 자체가 아니라 노동력의 이동에서 자본의 전 지구화와 신자유주의라는, 인권이나 평화와 같은 보편적 가치들에 동반되는 (국가) 폭력의 문제를 포착하는 일”이며 그 본질적인 폭력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타자, 마이너리티, 디아스포라 문학은 추방자들의 연대로 명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재림 평론가는 '‘우리’였다가, ‘우리’일 것이었다가, 결국 ‘그들’인'이라는 글에서 소설에 나타난 국내의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이경수 평론가는 '국경을 횡단하는 상상력 - 2000년대 시를 중심으로'에서 시에 나타난 탈국가적 상상력을, 최강민 평론가는 '초국가 자본주의 시대의 다양한 탈국가적 상상력'에서 우리사회를 비롯한 문단이 국경 안팎의 ‘타자’들을 형상화하는 방식을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또 정은경 평론가는 '젠더를 넘는 둘 혹은 하나의 방법-천운영과 배수아 소설을 중심으로'에서 앞선 ‘국경’의 문제와는 다르지만 마이너리티의 시선에서 젠더와 이성애 지배 담론을 비껴가는 동성애 문제를 다루고 있다.

▲ '새로운 상상력의 정체'를 특집으로 다룬 계간 <문학수첩>
ⓒ 컬처뉴스
계간 <문학수첩>은 특집에서 ‘새로운 상상력의 정체’라는 주제로 우리 시대의 핵심적 문학 코드인 ‘새로운 상상력’의 근원과 현상, 위상 등을 분석하고 있다. 소영현 평론가는 '~이 불가능한……을 위한 소설‘들’, 트랜스-문학 시대의 타자/윤리'라는 글에서 2000년대 이후 문학을 가로지르는 ‘탈-의 상상력’을 90년대 문학의 그것과 비교하면서 2000년대 문학의 ‘새로움’의 속성을 점검한다.

“2000년대 문학에서 자명한 모든 것을 회의하는 위반과 전복의 상상력은 보다 일상화되고 전면화된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과연 그 세계는 보다 확장되었으며 자유로워졌는가. 2000년대 문학이 성취한 다원주의는 문학의 파편화/게토화와 얼마나 다른가. 위반의 의식마저 희미해진 위반의 상상력은 과연 위반인가 유희인가.” - 소영현 '~이 불가능한…' 중에서

정혜경 평론가는 '최근 연애서사의 문제적 지평'에서 연애를 모티브로 한 연애서사에 주목하면 박현욱, 정이현, 이해경이 보여주는 상상력의 위상을 살펴보며, 이경재 평론가는 '2000년대 역사소설의 새로운 모습'에서 김훈, 성석제, 김연수 소설을 통해 오늘날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소설들이 보여주는 새로운 모습을 검토한다.

또 김신정 평론가는 '다른 얼굴들, 타자의 기미(幾微)를 향한'에서 김경주, 이준규, 이기인 시인이 보여주는 새로움의 연원을 탐색하며, 서영인 평론가는 '새로운 문학을 호명하는 방법들'에서 우리 시대 문학을 진단하는 평론들을 통해 비평의 현재를 짚는다.

▲ 계간 <문학동네>는 '한국문학과 하위문화적 상상력'이라는 주제로 특집을 다뤘다.
ⓒ 컬처뉴스
계간 <문학동네>는 최근 우리의 문학을 이해하는 새로운 키워드로 ‘하위문화적 상상력’을 제시하면서 그것의 배경과 양상을 짚는 특집 ‘한국문학과 하위문화적 상상력’을 마련했다.

김예란 한림대 교수는 총론격인 '하위문화는 어떻게 사는가?'라는 글에서 하위문화를 “단일과 전체라는 극단에 반발하는 존재의 집합성과 재현의 과정성”으로 정의하면서 6,70년대 청년문화세대, 80년대 민중민주세대와 단절하며 등장한 90년대 ‘신세대’ 문화를 파헤친다.

스스로를 ‘신세대’라 밝히고 있는 김 평론가는 “우리 세대에 속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일상이 오렌지족만큼 화려하거나 서태지만큼 도발적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신세대 담론은 그것이 위기였든 도전이었든, 급속한 이행을 욕망하고 동시에 요청받는 사회의 괴로운 고백이자 혼돈의 비명”이었으며 “신세대 아이들은 이 사회가 겪어온 암울한 역사를 뒤바꾸어 쓴 얄궂은 자화상인 것이다”라고 말한다.

김수이 평론가는 '스타일과 카운터펀치'에서 황병승과 이승원의 시에 나타나는 대조적인 하위문화적 상상력을 살펴보며, 조연정 평론가는 '‘충분히 근본적인’ 교란을 위하여'에서 백가흠과 이기호의 소설을 통해 하위적인 스타일에 머물지 않고 경직된 사유를 교란시키는 ‘하위문화’의 힘을 분석한다. 또 류보선 평론가는 '별종의 전복성, 혹은 전복적 별종'에서 김언수의 <캐비닛>에 나타난 혁신적 규범으로서의 기발함의 단상을 살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컬처뉴스>(http://www.culturenews.net)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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