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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두리지킴이 중 한 명이 무당분장을 하고 '사이비무당굿'을 벌이고 있다.
도두리지킴이 중 한 명이 무당분장을 하고 '사이비무당굿'을 벌이고 있다. ⓒ 배민
"내가 무당인데, 굿 하는 걸 한 번도 못 봤어! 굿도 처음 해 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데 굿 도중에 부채를 놓치질 않나, 여기저기 쌀을 흘리고 다니질 않나, 하는 모양이 영 심상치 않다. 탈춤 추는 광대마냥 우스꽝스런 몸짓에 구경 나온 사람들은 연신 웃음을 멈추지 못한다. 어설픈 무당 화장으로 가리긴 했지만 화장 넘어 앳된 얼굴이 비친다.

"이 땅이 어떻게 만든 땅인 줄 알아? 마을 사람들이 갯벌에다 지게로 흙 날라서 만든 땅이여. 근데 또 쫓겨나게 생겼어."

풍악 소리가 커지고 살풀이가 계속되면서 굿판이 깊어 가는가 싶더니 진짜 처녀 귀신이라도 씌었는지 '사이비' 무당 얼굴에 쌀알 같은 눈물이 툭툭 떨어진다.

"뭐가 억울한지 알아? 우리 마을 사람들 몇 십 년 동안 평화롭게 살았어. 우리 땅 못 버린다고 싸우다가 마을 사람들 하나둘씩 떠났지. 근데 그 사람들이 미운 게 아니여. 평화로운 우리 마을에 들어와서 마을 사람들 교묘하게 이간질시키고 갈라놓고 찢어놓은 그 나쁜 놈들 때문에 한이 생겼어. 한이…."

25일 오전 9시, 오랜만에 평택 도두2리 마을회관 앞이 분주하다. 잠시 후 열릴 평화기원제 준비 때문이다.

도두2리 마을 주민들은 대추리와 함께 오랜 시간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했다. 하지만 대추리 주민들이 정부와 공동이주단지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것과 달리, 도두2리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져 마을을 떠나고 있다.

지금은 주민 7가구와 도두리지킴이 4명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이번 평화기원제는 이들의 마음을 북돋아주고 마을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준비됐다.

오전 10시, 돼지머리가 고사상에 오르면서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됐다. 행사를 준비한 지킴이들을 대표해 김정애(여·27)씨가 인사했다. 김씨는 "처음 도두리에 온 지난 여름에는 36가구가 있었는데 지금은 얼마 남지 않아 마음이 아프다"며 "하지만 우리 마음속에 이곳을 기억하고 담아둔다면 우리는 이 싸움에서 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행사 의미를 설명했다.

평화기원제에 참가한 사람들이 평화를 외치고 있다.
평화기원제에 참가한 사람들이 평화를 외치고 있다. ⓒ 배민
이어서 도두2리 이상렬 이장이 고사문을 읽었다. 고사문에서 이 이장은 "우리 자식 같은 생명의 땅이 미군기지가 되는 것을 막아주시길 빈다"며 "평화를 위협하는 미군귀신, 주민들 분열시키는 경찰귀신·분열귀신 물렀거라"며 마을 평화를 기원했다.

이날 도두리를 찾은 마을 주민, 한신대학교 학생, 청년학교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고사상에 절을 올리며 1부 행사가 끝났다.

이어서 열린 2부 행사에서 사람들은 고기를 굽고 떡을 돌리며 정을 나눴고 노래, 풍물 등 다양한 공연이 어우러졌다.

먼저 한신대학교 학생들의 몸짓 공연이 열렸고, 노래패 휘파람 공연과 '보챙'씨의 민중가요 공연에 이어 '사이비 무당 굿'이 펼쳐졌다.

행사를 마치며 참가자들은 깨진 기왓장에 평화를 기원하는 글을 써 평화의 돌탑을 쌓았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한 시민단체 회원은 "정부와 언론에서는 협상이 거의 완료됐다고 알리고 사람들 관심도 많이 줄었지만, 이곳에선 여전히 평화를 바라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며 "진정 평화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 우리 모두 다시 고민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행사에 참가한 한 어린이가 평화의 돌담에 쌓을 기왓장에 평화를 기원하는 글을 적고 있다.
행사에 참가한 한 어린이가 평화의 돌담에 쌓을 기왓장에 평화를 기원하는 글을 적고 있다. ⓒ 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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