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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 집 마당에 핀 크로커스
우리 집 마당에 핀 크로커스 ⓒ 조명자
사방이 산에 둘러싸여 면소재지보다 2~3도 낮다는 우리 동네에도 드디어 봄이 찾아왔습니다. 눈 속에서도 삐죽삐죽 싹을 틔우던 크로커스가 노란 꽃잎을 활짝 열어젖힌 것입니다. 이른 봄답잖게 한 사나흘 따시더니 무려 십여 송이나 무리 져 피었습니다.

병을 끼고 사는 환자들 대부분 그렇듯 춥고 음산한 겨울이 지나면 나도 모르게 이젠 살았다 하는 안도감과 함께 자신감이 솟구치는 느낌입니다. 더구나 따사로운 봄볕에 무리 져 피어있는 봄꽃을 보고 있노라면 이 땅에 살아 숨 쉴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눈길 닿는 곳마다 고맙고 행복하고 예서 무엇을 더 바랄까?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복수초 군락의 출발지
복수초 군락의 출발지 ⓒ 조명자
마당에 핀 봄꽃을 보자니 그동안 잠잠했던 본 병이 도졌습니다. 내 사주에 역마살이 장난이 아니어서 발에 바퀴가 세 개나 달린 짝이라니 사주 값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른 봄 눈 속에서도 화려한 꽃 잔치를 벌이던 복수초(福壽草)가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나를 처음 환영해준 복수초 자매
나를 처음 환영해준 복수초 자매 ⓒ 조명자
우리 마당이 이 정도면 아마 산속의 복수초는 만개 수준 아닐까 싶네요. 햇살 짱짱한 오후 2시쯤. 복수초의 노란 꽃잎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쨍하는 봄 햇살에 부서지는 형광색 노란 빛깔. 13개의 꽃잎이 둥글게 포개져 있는 모습을 보면 노란 색동저고리 차려입고 강강술래를 하는 계집아이들을 보는 것 같습니다.

수줍은 이팔청춘
수줍은 이팔청춘 ⓒ 조명자
우리 집에서 차로 30여분, 작은 계곡 따라 산기슭 접어드는데 20여분. 1시간도 채 안 걸리는 어느 마을 뒷산이 바로 복수초 군락지입니다. 마을에 가려 당최 별 볼 일 없을 것 같은 평범한 산봉우리. 그 속에 바로 이런 요지경 속이 숨어있는 것입니다.

복수초 군락
복수초 군락 ⓒ 조명자
참나무, 꾸지뽕나무, 가문비나무, 개두릅나무, 느릅나무, 으름, 머루…. 그 작은 산에 얼마나 다양한 수종이 분포했는지 상설 약재상이 따로 없을 지경입니다. 나무만이겠습니까? 계곡과 산비탈 따라 옹기종기 몰려있는 야생화. 정말로 보물급입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꽃봉오리
솜털이 보송보송한 꽃봉오리 ⓒ 조명자
복수초를 시작으로 춘란, 생강나무꽃, 진달래, 산철쭉, 백양꽃, 석창포, 산자고, 현호색…. 알만한 야생화가 이 정도니 봄, 여름, 가을 줄지어 피고 지는 이름 모를 들꽃들은 또 얼마이겠습니까. 불과 4~5년 전만 해도 알 만한 사람들 십 수 명이 보물단지 훔쳐보듯 들락날락 했는데 언제 입소문이 퍼졌는지 야생화 동호회, 사진 동호회들의 헌팅 장소가 된 것 같습니다.

산등성이가 온통 복수초...
산등성이가 온통 복수초... ⓒ 조명자
무수한 발길에 다져진 오솔길. 그 길 따라 길게 늘어선 복수초 군락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다가서기 쉬운 장소에선 복수초를 뿌리째 캐갔는지 여기저기 파헤친 흔적이 장난이 아니군요.

난처럼 생겼지요? 백양꽃 새 순이랍니다.
난처럼 생겼지요? 백양꽃 새 순이랍니다. ⓒ 조명자
참, '식자우환'이라고 야생화의 아름다움과 귀함에 눈 뜬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자연을 훼손하는 일이 빈번해 집니다. 산과 들에 핀 야생화는 그 자리에 저희들끼리 있어야 온전한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데 인간의 욕심이 꼭 제 집 마당에 옮겨 코앞에 놓고 봐야 성에 차니. 자칫 잘못하면 야생화 죽이기 일쑤고, 꽃이 피었다 한들 초라하고 초췌하기만 한 것을….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우리들의 양식은 언제나 갖춰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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