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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장천 상류에 있는 정암사, 산자락에 수마노탑이 보인다. 계곡에 열목어가 산다는 것은 혹 전설이 아닐까.
ⓒ 강기희

지난 22일 오후 폐광지역인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을 찾았다. 강원랜드가 들어선 고한 사북지역은 평일임에도 활기가 넘쳐 흘렀다. 외국인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관광버스도 봄을 맞은 듯 먼지를 일으키며 거리를 질주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만 하는 빌딩들이 폐광지역이라는 오명을 넘어 서는 듯 했지만 도시를 가로지르는 하천인 지장천을 눈여겨 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하천은 여전히 죽은 듯 말이 없었다. 생활 하수와 폐광에서 흘러나온 침출수들이 한데 뒤섞인 하천물은 물이라 칭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검은 탄물이 흐르던 예전이나 붉은 녹물이 흐르는 요즘이나, 지장천은 하천의 구실을 하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강을 어떻게 보여줘야 하나

@BRI@오래 전 이 지역 아이들이 크레파스로 검은 강을 그리던 때를 생각하면, 요즘 아이들은 황토색으로 강을 그리진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개울에서 피라미잡이는 커녕 수영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에게 세상의 색이란 무엇으로 정의될 지 그 속내가 궁금했다. 거리를 지나치는 아이에게 강물의 의미를 물었다.

"물이 몸에 닿으면 피부병 생길까봐 가까이 가지도 않아요."

다른 아이는 "똥물이래요!" 라고 말한다. 어른된 입장으로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뻔한 질문에 당연한 답이 돌아오는 걸 모르고 아이들을 시험에 들게 했다. 아이들에게 강은 '무섭고 더럽고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대상'이었다. 안에 들어가 첨벙첨벙 물장구칠 수 없는 하천은 혐오의 대상이었다.

개울 가까이 내려가 보았다. 하천의 기능을 상실한 지장천에서 살아있는 생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폐광에서는 여전히 오염된 물이

▲ 폐광에서 흘러나온 붉은 침출수, 뒤로 폐광된 삼척탄좌의 수직갱이 보인다.
ⓒ 강기희
▲ 지장천은 하천의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다.
ⓒ 강기희
지장천을 그렇게 만든 원인을 찾아 상류로 올라가보았다. 고한시장 근처에 해발 700m라는 표지석이 보인다. '해발 700m'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와 죽은 하천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았다.

고한과 사북의 거리는 여전히 공사 중이다. 공사장을 출입하는 차량들로 거리는 먼지로 가득하다. 햇살을 쪼이며 한가롭게 걸을 수 없는 거리는 봄이 왔음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듯 하다. 어쩌다 걷는 이들은 입을 막은 채 지나치는 차량을 향해 눈을 흘긴다.

어수선한 거리를 지나 정암사 방향으로 간다. 정암사는 질퍽한 도시를 정화 시켜주는 한 포기의 연꽃이다. 정암사로 이르는 길은 차량 통행이 뜸해 길을 따라 걷는다 해도 견딜 만 하다.

그러나 눈을 돌려 하천을 내려다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상류는 하천보다 더 심각하다. 붉은 뻘이 깔려 아무리 마음좋은 사람이라도 고개를 돌리고 싶어질 정도다.

산중턱엔 폐광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위용을 자랑하던 삼척탄좌의 수직갱은 고철 역할도 하지 못했다. 삼척탄좌에서 흘러내리는 폐광의 침출수가 폭포수처럼 계곡으로 쏟아진다.

침출수는 지하 600m에서 양수기로 퍼올린다고 한다. 갱안에 차오르는 물을 퍼내지 않으면 그 물이 이 시간도 석탄을 채굴하는 있는 태백지역의 탄광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판단에서이다.

갱에서 퍼올리는 침출수는 고스란히 정암사 계곡으로 흘러들었다. 폐광된 삼척탄좌에서 퍼올린 침출수가 맑은 계곡물을 오염시키는 주범이었던 것이다. 침출수가 쏟아지는 지점의 상류는 맑은 물이 흘러내렸다. 열목어가 산다고 하는 차고 맑은 계곡물이 한순간에 붉은 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정화시설만 계획 중...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

계곡의 상류인 정암사에서 침출수가 나오는 삼척탄좌까지는1㎞ 남짓이다. 맑은 계곡은 겨우 그 정도 거리만 살아있는 셈이다. 하류에서 거슬러 올라오는 물고기가 없으니 살아있는 계곡의 생태계도 온전하지 않다.

작년에 설립된 광해방지사업단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폐광 침출수를 어찌 해결하려냐고 물었다. 아직 별다른 대책이 없고 정화시설에 대한 계획만 수립된 상태란다. 지장천이 살아나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실제 정선군은 증산과 별어곡, 선평을 지나치는 지장천을 살리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상류의 물이 그러한데 하류에서 아무리 많은 자금을 투입한다 한들 무슨 소용있겠나 싶다. 한강의 지류인 지장천이 살아나지 않고서는 한강의 물도 살아날 수 없다. 정부와 지자체, 광해방지사업단의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다.

▲ 사북거리를 가로지르는 하천은 죽음의 하천이다.
ⓒ 강기희

태그:#열목어, #하천, #똥물, #폐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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