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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소희
라데라니 사원
라데라니 사원 ⓒ 왕소희
아버지는 뭄바이 빅토리아역의 높은 사무관이었다. 람의 아버지. 만약 그가 정당하지 않은 방법을 썼다면 금세 부자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덕분에 람이 자라면서 느낀 것은 가난하고 억울한 인도였다.

람은 뭄바이의 큰 호텔에서 일을 했다. 그런데 거기서 만난 외국인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경이로웠다. 인도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본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외국에 나가겠다는 꿈을 가졌다. 거의 10년 동안 모든 방법을 총 동원해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인도는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는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

삶에 한계를 느낀 그는 집을 떠났다. 사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힌두교 성지 '마투라'로 순례 여행을 떠났다.

성지 마투라는 그에게도 낯선 곳 이었다.

"라데."
"라데."
사람들은 이렇게 인사 했다.

'왜 라데라고 하지?'
마음속엔 호기심이 생겼다. 그리고 며칠 후 그는 '라데 라니'사원으로 향했다.

몹시 더웠던 그때 사원엔 아무도 없었다. 땡볕아래 그는 두 개의 가방을 들고 끝없이 길고 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마침내 계단 끝에서 신을 향해 절을 올리려던 그는 그만 가방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앗!"

데굴데굴 굴러 내려가던 가방은 모서리가 부딪히며 뚜껑이 열려버렸다. 하늘 위로 온갖 서류와 옷가지들이 휘날렸다. 그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 보았다.

'이건 마치 내 인생 같군. 내 인생은 정말로 운이 따라주지 않았어. 십년동안 외국으로 나가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지. 사랑도 결국 이뤄지지 않았고. 더 이상 세상 속에 머물고 싶지 않아.'

그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그리고 느릿느릿 흩어 진 물건을 줍기 시작했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반지 상자를 주우려고 했을 때였다. 상자 안에 무언가 빛났다! 그것은 원래 가방 안에 있던 빈 상자였다. 그런데 거기에 낯선 반지가 생겨났다!

그 상자는 호텔 배지를 담는 것이었는데 배지를 반납해 원래 텅 비어있었다. 사원으로 올라오기 바로 전 나무그늘에서 가방을 열고 물건들을 정리했었다. 그때 분명 상자가 비어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지금 반지가 틀에 꽂혀있다. 원래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서두른 흔적도 없이. 그조차도 이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꽤나 뜨거운 오후여서 사원엔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어쩌면... 어쩌면 이건 라데라니 신의 선물일 지도 몰라!'
그는 신심으로 반지를 받아들였다.

라데라니 사원으로 올라가는 계단. 가방을 떨어뜨린 그 곳이다.
라데라니 사원으로 올라가는 계단. 가방을 떨어뜨린 그 곳이다. ⓒ 왕소희
반지를 얻은 후 람은 오르차 시골마을로 갔다. 그때부터 가난한 아이들 대여섯 명을 모아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소식을 듣고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학생은 금세 80명으로 늘어나고 두 곳에 학교를 세우게 됐다.

그는 이 일로 자신감을 가졌다. 라데라니가 그를 돕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사두가 되기를 포기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 그들의 삶에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 일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지금 람은 마투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나와 함께. 우리가 마투라를 찾아온 이유는 다시 라데라니 사원에 가기 위해서였다. 사원에 가기 전날 밤 나는 꿈을 하나 꾸었다.

"내가 흰 색 지프차를 타고 오솔길을 달려가고 있었어. 그런데 차 안에 타지 않고 지붕 위에 타고 있더라고. 무심코 고개를 돌렸는데 반대편에 흰색 사두 옷을 입은 람이 앉아 있는 거야. 하지만 람은 내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았어."
다음 날 람에게 이 꿈 이야기를 했더니 무척 놀랐다.

"라데라니 링을 얻은 날 정말로 흰색 지프차 지붕에 타고 그 곳에 갔었어!"

난 그 곳에서 낡은 흰색 지프차가 교통수단으로 쓰이는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라데라니 성으로 갈 때서야 직접 그 차를 보았다. 거기에는 몇 종류의 흰색 지프가 있었는데 내가 꿈에서 본 것과 예전에 그가 타고 간 지프차는 정확히 같은 종류였다. 소름이 끼쳤다. 어쩌면 람이 삶을 등지고 라데라니 사원으로 가던 그때부터 오르차와의 인연은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인도 여인의 사진을 보며 라데를 상상해 본다]
[인도 여인의 사진을 보며 라데를 상상해 본다] ⓒ 왕소희
우리는 라데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라데라니 링. 모든 것은 운명의 반지에서 시작된 이야기였다. 믿는 것은 자유. 그러나 우리에겐 믿는 게 이익이었다. 기적은 믿는데서 시작되니까.

람과 나는 라데에게 꽃을 바치고 그녀의 발끝에 이마를 댄 채 한참동안 웅크리고 있었다. 라데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우리는 앞으로 어떤 곳으로 흘러가게 될까? 궁금한 것은 참 많았다. 어쨌든 미래는 펼쳐지겠지. 어떤 모습으로든. 나는 웅크렸던 몸을 천천히 펴고 다시 일어섰다.

ⓒ 왕소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maywang.co.kr 행복닷컴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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