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한국 근현대사>교과서 파문을 일으킨 교과서포럼 홈페이지
ⓒ 교과서포럼
얼마 전 전경련과 교육부가 공동으로 제작한 <경제> 교과서가 반노동적 시각과 시장 만능주의적 서술로 한차례 파문을 일으키고, 뒤이어 저작권자 표기 문제로 인쇄가 중단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교육부가 전경련이라는 특정 이익집단과 공동으로 교과서를 제작한다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지만, 자체 예산을 투자해 만든 책에 대하여 스스로 저작권자에서 삭제하는 것도 전무후무한 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교과서 문제가 이번 경제 교과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작년 11월 30일에는 '교과서포럼'이라는 뉴라이트 계열 시민단체에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시안을 발표하는 심포지엄을 개최했다가 4월 혁명 격하 문제에 격분한 희생자 유족들의 방해로 심포지엄이 난장판이 되는 일이 있었다.

4월 혁명 단체와 교과서 포럼 간의 어설픈 봉합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교과서포럼이 야심 차게 내놓은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는 상당한 내상을 입었다.

<경제> 교과서와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둘러싼 문제는 보수 세력이 모두 기존 교과서를 비판하면서 출발하였다. <경제> 교과서에 대해서는 반시장적 정서를 부추긴다는 비판이 전경련과 경제학계, 교과서 포럼 등의 단체로부터 전방위적으로 쏟아졌고, <한국 근현대사>의 경우 금성출판사가 출간한 교과서에 대해 '교과서포럼'이 집중적인 문제 제기를 하면서 한나라당까지 나서 교과서 개정을 주장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기존 교과서에 대하여 좌파적, 혹은 반시장적인 편향적 서술에 대하여 중도적 입장을 견지한다면서 내놓은 대안들이 모두 우편향 혹은 시장만능주의라는 역편향의 한계를 나타내며 파문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진보의 성장과 보수의 반격

▲ 2006년 11월 30일 난장판이 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심포지엄
ⓒ 오마이뉴스 남소연
우리는 진지하게 이 질문을 던져 봐야 한다. 우리는 흔히들 사회에 문제가 있으면 교육이 원인이라고 하지만, 사실 교육은 사회적 원인이기보다는 모든 사회 문제의 결과일 때가 많다. 교과서 내용을 둘러싸고 사회적 파문이 일어나는 것은 교육의 장이라는 단일 차원의 문제가 절대 아니다. 교육의 장에 사회적 제 세력들이 모두 링에 올라 거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 싸움의 일단이 바로 교과서였던 셈이다.

포문은 보수세력이 먼저 열었다. 기존의 <경제>교과서가 재벌을 비판하고 반시장적 내용으로 가득 차 있으며,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좌편향적 시각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세에 대하여 진보 세력은 방어적 위치에 있다가, 보수 세력이 대안으로 만든 교과서가 나오고 이를 계기로 역공을 취하면서 일정 정도 성공을 거뒀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것이 여기서도 어김없이 나타난 것이다.

참여정부 들어 진보와 보수의 대립은 심화되었다. 혹자는 노무현 대통령이 이념대립을 촉발시켰다고 하지만, 실상은 진보세력의 성장에 그 비밀이 있다. 진보세력의 성장은 DJ와 노무현의 연속 집권을 가져왔다. 이것은 보수 세력의 입장에서 불과 몇 년 전까지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진보 세력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어느 한 쪽이 다른 일방을 무시할 수 없는 게임의 장이 대한민국 땅에서 형성되어 버린 것이다.

공교육 체계 내에서 교과서는 절대 진리를 국민들에게 강요하는 효과를 낳는다. 민주화가 되면서 언론의 위치는 많이 격하되었지만, 아직도 철옹성처럼 권위를 형성하는 것이 교과서이다. 교과서에 그렇게 써있다는 것이 확인되면 어지간한 논쟁은 그것으로 일단락이 된다.

교과서는 국가의 공식적인 이데올로기이자 모든 지식의 표준이 된다. 그래야 된다는 당위가 아니라 국민들이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가치 중립적인 자연과학의 영역은 상관이 없지만, 인간의 해석이 작용하는 인문사회교과의 경우에는 사실을 둘러싼 해석을 두고 치열한 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다음은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파문에 대해 중앙일보의 중앙시평란에 실린 칼럼의 일부분이다.

“4.19를 혁명으로, 5.16을 쿠데타로 칭하는 것이 한국사의 정설이다. 얼마 전 뉴라이트 내 교과서포럼이 전자를 혁명이 아닌 운동으로 격하시키고, 후자를 쿠데타가 아닌 혁명으로 격상시키는 가치전도를 시도했다가 거센 저항을 받고 후퇴했다. 하지만 이 싸움은 결국 재연될 것이다. 이 싸움의 최대 승부처는 올해 말 치를 대선이다.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느냐를 둘러싸고 민주세력과 성장세력 사이의 진검승부가 펼쳐질 전망이다.”

교과서를 둘러싼 문제들이 어떻게 현실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너무나 정확히 보여주는 칼럼이다. 개인적으로 이 내용에 대한 찬반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역사의 해석을 둘러싼 사태를 보수 세력이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리트머스 시험지로 이 칼럼을 바라보면 될 것이다.

왜 <경제>와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인가?

세계체제론으로 유명한 월러스틴이라는 사회학자는 사회과학을 과거 사회를 연구하는 역사학과 현재 사회를 연구하는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으로 구분하였다. 이 구분이 일반적인 사회과학 분류법은 아니라 할지라도 교과서를 둘러싼 사건을 분석하는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한국 근현대사>는 정확히 일제시대와 해방 이후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해방 이후의 역사이다. 해방 이후의 역사는 분단과 전쟁, 독재와 민주화, 북한 현대사 문제 등 보수와 진보가 사사건건 대립하는 역사적 사건들의 연속이다. 오늘날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이러한 사건들의 역사적 구성물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건들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오히려 이상한 일이 될 것이다.

<경제> 교과서는 현재에 대한 해석이다. 월러스틴은 사회를 3분법에 따라 국가, 시장, 시민사회로 분류하고 이를 해석하는 학문으로 국가는 정치학에, 시장은 경제학에, 시민사회는 사회학에 연결시켰다. 이중 대중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경제학을 배경으로 하는 <경제> 교과서가 될 것이다. 차기 대통령에 필요한 제1조건이 ‘경제 살리기’라고 하지 않던가! <경제>는 오늘날 한국사회를 어디로 이끌 것인가에 대한 해석을 가장 관심 있게 제시하는 교과이다.

전경련이나 미국식 주류 경제학으로 무장한 일군의 경제학자들은 기존의 교과서가 반시장적인 서술로 가득 차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하여 노동계는 그렇다고 수긍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대안으로 제시한 교과서는 말할 것도 없고, 기존의 교과서도 신자유주의적 발상으로 편향적 서술이 되어있다고 비판을 한다.

같은 <경제> 교과서를 두고 한 쪽에서는 반시장적 서술로, 다른 한 쪽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서술로 비판을 받고 있는 형국이다. 마치 <경제> 교과서가 처한 상황이 참여정부의 성격을 두고 벌이는 진보와 보수의 논쟁과 비슷하다. ‘좌파’라는 비판과 ‘신자유주의’라는 비판이 정확히 공존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성장을 우선해야 하는가, 아니면 분배를 통한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개인적 확신이 아니라, 온전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표준화된 <경제> 교과서는 이를 요구하고 있고, 그래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해결방안은 없나

▲ 보수세력의 근현대사관을 읽을 수 있는 서적
ⓒ 두레시대
솔로몬이 재판관으로 다시 온다 해도 이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봉합만이 가능할 뿐이다. <근현대사> 교과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하여 4월 혁명 단체와 교과서 포럼 간에 합의된 공동성명서는 참 두루뭉술하기 짝이 없었다. 문제의 촉발은 4월 혁명과 5.16군사 쿠데타를 둘러싼 해석의 문제였는데, 이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고 올바른 역사발전을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만 성명서에 있었다.

그나마 상대가 4월 혁명 단체와 교과서 포럼이었으니 이 나마의 합의도 가능했을 것이다. 노동계와 전경련이 <경제> 교과서를 두고 내용 없는 공동 성명서라도 채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사태의 적당한 봉합은 교육부가 저작자 이름에서 빠지는 것이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 한 보수적 정치학자는 현재 대한민국의 이념대립을 ‘마키아벨리적 순간’으로 표현하였다. 마키아벨리적 순간이란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어느 일방도 정권의 정당성이나 헤게모니를 장악하지 못한 채 권력 쟁투가 벌어지는 상황을 설명한 것이다. 즉, 한국 사회는 어느 누구도 이념 대립에 있어서 온전한 승리를 말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이다.

위에서 인용한 중앙일보 칼럼에서는 이번 2007년 대선이 이에 대한 승패를 가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이것은 오산이다. 마치 진보세력이 노무현의 집권으로 완전한 헤게모니를 장악한 것으로 착각한 것만큼의 동일한 계산착오이다.

대한민국 사회는 한 번의 대통령 선거로 모든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단일한 사회가 아니다.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중 특히 금성출판사 교과서가 집중 공격을 받았는데, 현재 이 교과서의 채택률은 전체 고등학교 중 50%에 육박한다. 이 교과서를 채택한 역사 선생들의 성향이 고스란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정권을 바꿔 교육 내용을 좌지우지 한다는 것은 다시 독재시대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 나왔던 반론이기도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문제가 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참여정부 들어 본격 채택되기 시작했지만, 이 교과서 시안이 확정된 것은 1997년으로 김영삼 정부 때 일이다. 다시 말해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이 집권당이던 시절 열심히 연구하고 제작한 교과서 시안에 대해 보수 세력이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전경련 <경제> 교과서는 참여정부의 ‘교육부’와 공동으로 제작하였으니, 이쯤 되면 보수 세력에게는 아군과 적군도 구별하기 어려울 것이다.

내부와 외부의 구별이 사라지고 적과 아군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것이 탈근대 사회의 한 특징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탈근대를 바라보고 있는 시점에서 진보와 보수, 혹은 좌와 우라는 지극히 근대적인 가치를 둘러싼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은 아주 난망한 상황이다.

몇 년 안에 전면적인 교과서 개정이 있을 것이다. 교과서를 둘러싼 진보와 보수의 전면적인 대회전이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현재의 판도를 보건데, 몇 년 내에 진보와 보수, 어느 세력도 확고한 우위를 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뜬금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마지막으로 헌법에 대하여 언급하자. 여기까지 읽어 온 사람이라면 교과서는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오늘을 있게 한 과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이자, 오늘의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하는 해결책의 문제이다.

헌법은 교과서보다 더한 국민 생활의 근간이 되는 규범이다. 얼마 전에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임기에 대한 원포인트 개헌이라는 헌법 개정을 제안한 바 있다. 정략적 해석을 배제하고 원포인트 개헌이라는 형식에만 집중하자면, 우리는 보수와 진보의 세력 균점이라는 사회 현실을 읽어낼 수 있다.

개헌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진보세력 내부에서는 토지공개념이나 생태적 문제, 혹은 통일 시까지 영토 문제 등의 진보적 개념을 넣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진보세력에게는 진보적 내용을 헌법에 강제할만한 사회적 힘이 없다.

물론 이는 보수 세력도 마찬가지다. 헌법 개정을 한다면 보수 세력은 자유로운 시장경제의 틀을 헌법에 확실히 규정하고, 1987년의 시대 분위기에 어쩔 수 없거나 혹은 몰라서 받아들인 진보적인 내용을 삭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보수 세력의 전략은 일절 개헌 논의에 말려들지 않고 정권 교체 이후에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지만, 보수 세력도 자신의 힘을 과신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의 주기 조정과 같은 극히 기능적인 문제를 제외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헌법의 내용을 두고 합의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보수 세력이 정권을 장악한다 한들 진보세력의 동의 없이는 헌법 개정이 불가능하다.

헌법을 두고 내용적인 부분을 건드린다는 것은 마치 한국 사회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다.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이야 교육계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개 전투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헌법은 한국사회의 과거와 현재의 해석에 대한 강제력을 둘러싼, 그야말로 모든 힘을 쏟아 부어 벌이는 일국적 차원의 전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경제>와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의 문제이며, 또한 자라나는 세대에게 이를 어떻게 가르칠 것이냐는 미래의 문제이다. 이 문제가 헌법으로 향한다면 준영구적인 해석 강제력을 둘러싼 권력투쟁의 문제로까지 확장될 것이다.

한국 현대사는 혁명과 학살이라는 극단적인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사회적 합의를 거치는 과정에 대한 경험도 부족하고, 대통령 선거와 같은 전부 아니면 전무식의 극단적인 대립만이 이어져 왔다. <근현대사> 교과서 심포지엄과 같은 강제력을 수반한 합의 과정이 노사문제부터 국회에 이르기까지 두루 통용이 되었다.

교과서를 둘러싼 진보와 보수의 대립은 이러한 사회적 문제가 새로운 관행과 질서로 해결이 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한국 사회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하여 교과서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이 해결되지 않는 것처럼, 한국 사회에서 과거와 현재에 대한 해석 투쟁은 교과서를 두고 진보와 보수 양측 사이에서 지루하게 전개될 것이기 때문이다.

태그:#교과서파문, #교과서포럼, #근현대사, #교육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등어 사전(메디치미디어)>,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세상을 보는 경제(인포더북스)> 등이 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