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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뱃돈 받고 좋아하는 손자.
세뱃돈 받고 좋아하는 손자. ⓒ 정현순
"우진아, 왕 할머니 어디 가셨는지 알아?"
"응 알아. 왕 할머니는 하늘나라에 가셨어."
"하늘나라가 어떤 곳인데?"
"하늘나라는 멋진 궁전도 있고 좋은 데야."
"그런 거 어디서 배웠어?"
"음 만화영화에서 나와서 내가 알았어."


어린손자는 '왕 할머니'가 안계시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설날을 이틀 남겨놓은 16일 보통의 명절 때처럼 난 고기와 술을 사가지고 손자와 함께 친정에 갔다.

행여 어린손자가 왕 할머니를 찾을까 봐 미리 물어본 이야기인데 그 조금한 녀석이 오히려 나를 위로해준다. 친정에 도착했다. 올케는 명절준비로 바쁜 모습이었다.

"올케 명절준비 하기 힘들지?"
"힘든 것은 없는데 어머니가 안계시니깐 집안이 텅 빈 것 같아요."
"그러게 올해는 세배 드릴사람이 한 분도 안 계시네."
"우리 집도 하나는 군대가서 딸내미 하나한테 세배 받으면 끝이네요."


참으로 쓸쓸한 명절분위기다. 난 작년 설날까지만 해도 엄마한테 올해 세배를 하지 못할 거란 상상은 꿈에도 하지 못했었다.

1년 전, 2006년 1월29일 설날이었다. 친정으로 세배를 간 우리가족들은 차례대로 친정 어머니께 세배를 했다. 제일 먼저 나와 남편이 세배했다.

"엄마,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그래 너희들도 하는 일마다 다 잘 되고 건강 하거라."


어머니는 1000원짜리 세뱃돈을 하나씩 나누어 주셨다. 어미니가 내미는 꼬깃꼬깃한 쌈지 세뱃돈을 안 받으려했지만 노모께서는 "안 받으면 내가 서운하다"고 하셨다. 남편과 나는 "고맙습니다"하며 세뱃돈을 받았다.

자식들이 주는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 두었다가 설날이면 어린 증손자, 손녀사위, 손녀, 손자들에게 세뱃돈을 나누어 주시던 그 모습이 눈앞에 아련히 그려진다.

자식들한테는 1000원씩을 주셨지만 손녀와 손녀사위에겐 세뱃돈으로 10000원씩을 주시면서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던 엄마, 증손자한테는 세뱃돈과 함께 엉덩이를 톡톡 두들기며 "우리 강아지 올해도 많이 크거라"하시면서 뽀뽀도 같이해 주시던 엄마.

그랬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어머니께 받은 세뱃돈과 세배가 너무나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용돈을 넉넉히 드리지 못한 것이 또한 후회로 남는다.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와는 앞으로 다가올 설날도 언제까지나 함께 보낼 줄만 알았다. 그러나 그해 3월 어머니는 갑작스럽게 병원응급실로 실려 가셨다. 병원에 실려 가셨지만 그래도 회복이 되어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우리 옆에 오랫동안 계셔줄 줄만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일이란 한치 앞을 모르는 일이었다.

이틀 동안 응급실에 계시다가 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지셨다. 자식들한테는 아무 말씀도 하시지 못한 채 갑자기 먼 길을 떠나고 말았다. 5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지만 '고아'가 되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슬프고 믿어지지 않았다. 병원 중환자실에 계시는 혼수상태의 엄마의 귀에 대고 "엄마 퇴원하면 내가 예쁜 속옷도 사드리고 맛난 음식도 많이 먹으러 같이 다녀요"라고 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소용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그때 고통스러워하시던 엄마의 모습도 마치 어제 일 같기만 하다. 앞으로 이틀 후면 엄마가 돌아가시고 맞이하는 첫 설날. 엄마가 안 계신 설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쓸쓸하고 허전할 것만 같다. 고아가 되었다는 것이 설날이 돌아오니 더욱 실감이 나기도 하다.

또 앞으로 다가올 설날에도 엄마의 비밀장소에서 꺼내어 주셨던 꼬깃꼬깃한 세뱃돈이 무척 그리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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