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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정말 멋진 나일강 돛단배 뱃놀이를 마치고 룩소르신전으로 향했다. 룩소르신전은 나일강 강변 가까이 세워져 있어서 강변도로에서 바로 바라볼 수 있는 유적이었다. 어둠이 내려 덮이는 신전풍경은 신비로움을 더해 준다.

강 건너 서쪽 저 멀리 아득한 지평선 끝 대추야자나무 위로 기울어진 해가 뉘엿뉘엿 가라앉기 시작했다. 기다렸다는 듯 어둠이 내려깔리는 신전에는 일제히 야간조명이 비춰지기 시작한다. 낮에 보는 신전이 조금은 흉물스럽고 황폐한 느낌이라면 밤에 보는 신전은 역시 알 수 없는 신비로움이다.

▲ 대탑문 정면에서 바라본 룩소르신전과 몰려든 관광객들
ⓒ 이승철
거대한 카르낙신전을 낮에 보았으니 다른 하나의 신전은 밤에 보는 것도 좀 색다른 매력이었다. 그래서 최고의 가이드 이 선생이 야간 관광으로 룩소르신전을 권했던 모양이다. 신전 안으로 들어서자 대탑문 앞 광장에 때맞춰 들어온 관광객들이 와글와글하다.

신전의 정문격인 대탑문의 양편 입구에는 커다랗게 세워져 있는 두 개의 신상이 눈길을 끈다. 역시 신이 되고 싶었던 파라오들의 신상이다. 그 옆에는 태양신 아몬을 숭배했던 당시의 파라오들이 자신들을 내세우기 위해 기념비로 세워놓은 오벨리스크 한 개가 뾰족한 모습으로 서 있다.

이 오벨리스크는 본래 람세스2세가 세운 것으로 양쪽에 한 개씩 두 개가 세워져 있었으나 그 중의 한 개는 없어지고 한 개만 남아 있다. 북쪽의 것은 프랑스가 가져다가 파리의 콩코드 광장에 세워 놓았다고 한다.

▲ 카르낙신전과 연결된 스핑크스길 오른편 풍경
ⓒ 이승철

▲ 스핑크스길 왼편 풍경
ⓒ 이승철
뒤쪽으로 돌아서니 카르낙신전으로 연결되었던 스핑크스의 길이 열려 있다. 제법 넓은 길 양편으로 보존상태가 상당히 좋은 스핑크스들이 줄지어 서 있는 풍경이 여간 신비롭고 멋진 게 아니다. 스핑크스들의 뒤편에는 대추야자나무와 가옥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또 여간 고풍스런 모습이 아니어서 참으로 보기가 좋다.

이 길은 거리가 2킬로미터로 아몬신전인 카르낙신전과 이 룩소르신전을 연결하는 대로였지만 지금은 그 일부만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일행 한 명과 함께 사진을 몇 컷 찍고 돌아서니 대탑문 앞의 조명이 한층 밝아져 있다.

이 룩소르신전은 고대 이집트 제18왕조의 아멘호테프 3세가 건립했다, 그 후 제19왕조의 람세스 2세가 증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나일강을 따라 북쪽으로부터 대탑문, 람세스 2세의 큰 안마당이 자리잡고 있다. 이어서 제2탑문, 아멘호테프 3세의 굵은 기둥들이 쭉쭉 도열한 것 같은 열주랑과 안마당, 그리고 역시 기둥들이 빽빽하게 자리잡은 다주실 내진으로 이어져 있다.

▲ 대탑문 입구와 신전안의 파라오신상들
ⓒ 이승철

▲ 나일강변에서 바라본 신전 모습
ⓒ 이승철
그런데 대탑문 앞에서 파라오 상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우리들의 귀에 익숙한 풍물소리가 들려온다.

"어! 이거 우리 풍물소리잖아, 여기 이집트 맞아?"

누군가 놀랍다는 듯 감탄을 한다. 머나먼 북아프리카의 이집트 땅에서 정다운 우리 풍물소리를 듣다니, 다른 일행들도 모두 같은 생각을 했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가보니 커다란 스피커였다.

그리고 자세히 들어보니 우리 풍물소리가 아니다. 아마 이집트의 고전음악인 것 같았다. 이집트 고대도시 룩소르의 유적지를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아름답고 멋진 볼거리와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야간조명과 함께 고전음악을 들려주는 것이었는데 그 음악이 우리네 풍물소리와 너무나 흡사했던 것이다.

대탑문을 지나 람세스2세의 큰 안마당으로 들어서니 거대한 람세스2세의 신상이 우뚝 버티고 서 있다. 룩소르신전은 카르낙신전에 비하여 규모는 훨씬 작았지만 건물의 배치가 조화롭고 보존상태도 상당히 좋은 편이어서 카르낙신전과는 전혀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 신전안의 람세스 파라오 신상
ⓒ 이승철

▲ 대탑문 지역 전경
ⓒ 이승철
신전의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작은 방들이 나타난다. 이 방들은 후기정복자들에 의하여 기독교도들의 예배장소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또 이슬람교도들의 예배장소로 사용된 방들이라고 한다. 신전의 일부는 지금도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옛 정복자들이 사용하였던 방들과 함께 신전 이곳저곳의 벽화들이 자연의 풍화작용이 아닌 인위적인 훼손의 흔적들이 많이 눈에 띈다.

"이 벽화의 긁어낸 자국들은 바로 기독교도들과 이슬람교도들이 자신들이 섬기는 신과 다른 우상이라고 일부러 훼손한 자국들입니다. 참 안타까운 흔적이지요."
"이런 유적들은 손대지 말고 잘 보존해야 하는 건데…."

일행들이 끌끌 혀를 찬다. 이 룩소르 신전은 카르낙신전에 살고 있는 아몬신이 오페트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방문하는 축제의 장소였다. 고대 테베 시절 오페트 축제는 매년 증수기인 제2월에 11일 동안 열렸다. 이 축제 때 아몬신과 그의 처 밤의 여신 무트, 그리고 그의 아들인 콘수 신은 카르낙대신전으로부터 룩소르 신전을 방문했다.

이 기간이 바로 일반 백성들이 신전 깊숙이 살고 있는 아몬신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카르낙대신전 안에 머물던 아몬신과 가족들의 신상은 왕궁악단의 연주 속에 사제들에 의하여 나일강 위에 대기하고 있던 파라오의 배로 옮겨지는 것으로 축제가 시작된다.

▲ 신전 옆 마을풍경
ⓒ 이승철

▲ 나일강변 도로의 마차와 밀회를 즐기는 여행객 커플
ⓒ 이승철
이어서 파라오가 배에 오르면 성스러운 배는 출항하여 나일강을 남하 룩소르신전 쪽으로 향한다. 강변에서는 축제를 구경하려는 군중들이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지금은 룩소르 시에 거주하는 시민의 수가 10만 명 정도에 불과하지만 테베시절 당시의 인구는 100만 명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파라오와 아몬신 일가가 탄 배가 룩소르에 도착하면 성스러운 신상들은 신관들에 의해 룩소르 신전으로 옮겨진다. 아몬신상들이 신전 안에서 왕과 사제들의 제의를 받는 동안 밖에서는 민중들이 노래와 춤으로 밤을 지새운다. 축제가 끝나는 11일 후에 파라오는 아몬신을 모시러 룩소르 신전에 다시 온다.

파라오의 배는 아몬신을 모시고 카르낙신전으로 향한다. 이때는 파라오가 성장한 군대를 이끌고 강변을 행군하며 아몬신의 배를 호위한다. 아몬신을 카르낙신전에 다시 안치하는 것으로 11일 동안 계속된 오페트 축제는 막을 내리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수도 테베시절의 룩소르에서는 많은 제전이 있었다고 전한다. 오페트 축제도 그 제전들 중의 하나로서 이 룩소르신전이 제전을 치르는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셈이다.

▲ 룩소르 신전 풍경
ⓒ 이승철
어둠이 내려덮이는 중에 휘황찬란한 빛에 휩싸인 룩소르신전은 파라오와 신들의 이야기만큼이나 신비경을 연출한다. 신전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오자 나일강 건너 풍경도 어둠 속에 잠기고 있었다.

강변 둑길 도로에는 여전히 마차를 탄 여행객들의 낭만이 강물처럼 출렁이고, 신전 옆 둑길에 나란히 앉은 여행객인 듯한 젊은 커플의 달콤한 밀어가 신전의 전설처럼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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