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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을 맞은 방앗간은 분주함으로 가득하고
설을 맞은 방앗간은 분주함으로 가득하고 ⓒ 김혜원
창 밖으로 뜨거운 김이 쏟아져 나오는 방앗간. 어느새 우리집 쌀들은 얌전히 빻아져 시루에 얹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김이 충분히 오른 시루에 눈처럼 흰 쌀가루를 얹고 적당한 시간 동안 뜸을 잘 들여가며 정성껏 쪄내면 백설기같은 떡이 됩니다. 그런 떡을 가래떡 방아에 넣고 두 번을 빼주면 쫄깃하고 담백한 가래떡이 완성되는 것이지요.

"예전에는 쌀가루로 하지 않고 밥을 지어서 했거든요. 그러면 떡이 곱지가 않아요. 힘도 더 들구요. 시루도 커다란 재래식 시루를 쓰다보니 가끔씩은 중간에 밥이 설기도 하고 그래서 고생도 많이 했지요."

떡을 뽑으며 한바탕 수다를 떨고 있는데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들어서며 떡값을 물어봅니다.

"가래떡 하려면 얼마 들어요?"
"한 말에 2만원이요. 써는 값은 말에 오천원받구요."
"그렇게 비싸요? 쌀도 한 말에 1만7000~1만8000원이면 사는데 떡하는 삯이 2만원이에요? 거기다 썰어까지 가면 한 말에 얼마야. 가래떡 한 말이 4만3000원이네. 남편이 떡값하라고 개미 눈물만큼 보너스를 줬는데 정말 떡 해먹고 나면 아무것도 없겠네요."
"요즘 돈 가치가 있어야 말이죠. 그래도 킬로로 조금씩 사다 드시는 것보다는 하시는 게 싸요."

방앗간 아저씨는 예전처럼 방앗간에서 나락을 탈곡하고 했더라면 떡 삯은 받지 않았을 거라고 합니다. 나락 터는 값이 충분하니 떡 정도는 서비스로 빼주고 그랬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도시에서 나락을 털 일이 없으니 오직 떡만 빼주는 것으로 방앗간을 운영하는데 공임을 적게 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방금 나온 따끈한 가래떡. 적당히 굳은 후에 썰어야 합니다.
방금 나온 따끈한 가래떡. 적당히 굳은 후에 썰어야 합니다. ⓒ 김혜원
"요즘 누가 방앗간 하려고 하나요? 공임이 비싸다고 해도 떡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사라지느니 방앗간이고 떡집이지요. 요즘 애들 떡 안 사 먹어요. 빵이니 피자니 몸에도 좋지 않다는 서양음식은 잘 먹어도 떡 좋아하는 아이는 별로 못 보았다니까요. 그래도 우리집 떡이 맛있다고 오시는 손님들 때문에 방앗간 문을 못 닫아요."

방앗간을 찾는 단골손님들 때문에 힘들어도 문을 닫지 못한다는 아저씨의 말이 기쁘신지 엄마는 얼른 맞장구를 치십니다.

"그럼 그럼, 방앗간이 사라지면 쓰나? 비싸니 싸니 해도 한국사람은 떡국을 먹어야 나이 한 살을 더 먹는 건데 방앗간이 없어지면 나이를 어떻게 먹어?"
"하하하. 맞아요. 할머니 우리가 떡을 해야 떡국을 먹고 나이를 먹지요. 하하하."
"호호호. 할머니같은 분만 계시만 앞으로도 우리 방앗간 잘 될 것 같아요. 떡 좀 자주 해서 드세요."

방금 빼서 김이 무럭 무럭 나는 떡을 커다란 그릇에 담아 머리에 이고 오시는 엄마의 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볍습니다. 설날 새배를 올 일가 친척들에게 끓여 내실 떡국을 생각하고 계신 것입니다.

뽀얀 사골국에 만두 몇 개 넣고 얌전하게 끓여낼 엄마표 떡국. 잘 익은 김장김치와 시원한 동치미를 곁들이면 그보다 더한 호사는 없겠지요.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이지 않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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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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