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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도의 유행'을 분석한 <중앙일보> 15일자 신문.

중도가 '길'인가? 과연 '중도'가 길을 낼 수 있을까?

<경향신문>과 <중앙일보>, <한국일보>는 오늘(2월 15일) '중도'에 주목했다. <경향신문>은 '파장 커지는 황석영 총대론'(황윤정·박영환기자)에 대한 각계 반응을 다뤘고, <중앙일보>는 '중도가 왜 인기 끄는지'(배영대 기자)를 살폈다. <한국일보> 고종석 객원논설위원은 '고종석 칼럼-중도라는 농담'을 통해 정치판의 복음이 되고 있는 중도론에 대한 신랄한 해부 보고서를 내놓았다.

최근 제기된 중도론은 <경향신문>이 잘 정리하고 있다. 정치적 이해에 따른 열린우리당·한나라당이라는 '가건물' 해체와 선진적인 보수·진보 양당체제로의 재편을 이야기하는 황석영씨의 '총대론',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의 '개혁적(혹은 변혁적) 중도', 김지하 시인의 '좌우간의 기우뚱한 균형', 통합적 해결력을 강조한 홍윤기 동국대 교수의 '강한 중도'로 대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향신문>이 주목한 점은 황석영씨의 '내심'이다. 황씨의 '총대론'이 과연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는 데 초점을 맞췄다. 명분이야 어떻든, 결국 현실정치세력의 특정 세력을 염두에 둔 '발언'이자 '행보' 아니냐는 의구심이 그 배경에 깔려 있다.

"황석영 씨는 과거 진보진영의 단결을 호소했지만 그들은 이미 변화의 동력을 잃었으며, 새로운 감성의 문화 창조자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안병진 창원대 교수의 비판적 언급이나 "참여정부의 패배 원인을 혁신하는 차원에서의 노력이 필요하지, 세를 불리거나 지지자를 확대하는 식으로 사고해서는 진보진영의 성공가능성은 없다"는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의 발언이 소개됐다. 더 직설적으로는 "황석영씨가 70년대부터 손학규씨와 절친하다는 걸 알고 있는 터라 그(황석영)의 현실정치 참여는 킹메이커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승철 시인)이라는 비판도 전한다.

물론 "과거 우리가 진보라고 했던 것도 지금 보면 중도 정도이니 굳이 진보·보수 편 가르지 말고 새로운 시대에 대비하자는 것"(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이라는 적극적 동조론과 "내막은 잘 모르겠으나 작가가 현실정치에 대해 발언한 게 한두 번이냐. 좀 더 지켜보자"(최원식 인하대 교수)의 유보론도 같이 소개하고 있다.

그 결론은 유보적이다. "'민주화 운동, 통일 운동의 고비마다 온몸을 던졌던 그의 광대기질이 다시 발동한 것 아니냐'는 평가와 '손학규 선거운동'이라는 시각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쏟아지는 조롱, 힐난, 냉소

어제 홍윤기 교수의 인터뷰를 실었던 <중앙일보>의 '중도 왜 인기 끄나'는 진보진영의 중도론에 대한 보수진영의 시각을 전하고 있다.

"진보의 새로운 생존술 차원에서의 중도"(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라거나 "말로만 중도를 떠들고 실제로는 시류에 영합하는 사이비 중도가 많다"(박세일 서울대 교수), 혹은 "우리 사회가 점차 이념적 균형을 잡아간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너도나도 중도를 외치니 다소 공허해지는 것 같다"(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등 주로 부정적인 반응이다.

<한국일보>의 '고종석 칼럼'은 더 냉소적이다. 문단 명망가들 입에서, 대학과 언론사 둘레의 논평가들 입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야 정치인들 입에서 시대정신의 열쇠어로 추앙받고 있는 '중도'에 대해 한마디로 "이철승씨의 중도보다 더 좋은 중도일까"라고 묻는다.

그가 그렇게 묻는 것은 한마디로 똑같은 길을, 그것도 오른쪽 차로에서 누가 조금 더 빨리 가나 다투고 있는 마당에 도대체 어디서 '중도'를 찾겠다고 하느냐는 힐난이다.

이 나라를 이끄는 원리를 공유하고 있는 '집권세력'과 '주류야당',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다른 패거리(가 아니라면 패밀리?)일 뿐인 '청와대 사람들'과 '과점 언론', 저잣거리 언어의 격렬함으로 각자의 '패밀리'에 대한 충성심을 뽐내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길을 걷고 있는 '조기숙'씨와 '전여옥'씨 사이에서 무슨 '중도'를 찾느냐고 일갈한다. 기껏해야 지금 "근육을 움찔거리는 중도는 민낯(요즘말로 '쌩얼') 우익 노선과 화장한 우익 노선 사이의 중도"라고 일축한다.

"이름값을 하는 중도는 이 치우친 중도보다는 훨씬 왼쪽으로 뻗어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중도'가 아니라, 아예 '새 길'을 열어야 한다는 이야기 일 것이다.

새 길, 새로운 패러다임…. 그렇다면 이제는 '개혁적 사고'가 아니라 '혁명적 발상'이 필요한 때인가?

태그:#백병규의 미디어워치, #백병규, #미디어워치, #한꼭지 조간신문 리뷰, #조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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