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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남소연
ⓒ 오마이뉴스 남소연
청와대가 또 다시 안다리 걸기에 걸렸다. 경제교과서 모형의 제작·배포에 청와대가 개입한 의혹이 있다고 한다.

'조·중·동'(<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이 보도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과 공동으로 개발한 경제교과서 모형에 자신들의 이름을 넣으려 했다가 돌연 빼기로 결정했는데 이 과정에서 청와대가 개입한 의혹이 있다고 했다.

근거는 딱 한 가지. 교육부가 경제교과서 모형 저자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빼기로 결정한 시점이 지난 13일인데, 그 직전 교육부 관계자가 청와대를 다녀왔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청와대의 분위기가 어떤 식으로든 반영된 것 아니냐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조선>)고 한다.

청와대와 교육부는 부인한다. 경제교과서를 만든 배경을 설명하러 간 것일 뿐 저자 명의에서 교육부 이름을 뺀 건 전적으로 교육부의 자체 판단이라고 한다.

'전경련 교과서'에 들어간 혈세 5천만원

조·중·동의 '추측'이 정확한지, 청와대와 교육부의 해명이 정당한지를 잴 이유는 없다. 쉽게 확인될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 때문이 아니다. 논점이 일탈됐기 때문이다.

핵심 논점은 그게 아니다. 교육부가 특정 이익단체인 전경련과 손잡고 교과서 모형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 근본문제다.

<경향신문>이 지적했다. "교과서 모형 개발이 검·인정 교과서 제도의 취지와 배치된다는 점"을 비판했다. "출판사나 단체가 교과서를 만든 뒤 교육부의 검·인정을 받아야 하지만 이 교과서 모형은 교육부가 발간에 직접 참여했기 때문에 사실상 '국정교과서'의 지위를 갖게 된 것"이 문제라면서, 교육부가 저자 명의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빼기로 결정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했다.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교육부는 특정 이익단체의 입장이 스며든 교과서 모형을 개발하는 데 국민 세금 5000만원을 지원했다. 나아가 그 교과서 모형 저자에 '교육부' 이름 석 자를 올림으로써 교과서 모형의 권위를 살려주려 했다. 편향도 이런 편향이 없다.

욕을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한다. 청와대가 개입을 해서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청와대가 개입을 하지 않아 문제가 더 커진 측면이 있다.

교육부가 전경련과 손을 잡은 시점은 지난해 2월. 김진표 당시 교육부총리가 강신호 전경련 회장과 협약을 맺었다. "교육부는 경제교육과정 개발 및 교과서 편찬, 수정·보완 과정에 경제단체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는 내용이었다.

그에 앞서 요구가 있었다. 2005년 10월 재정경제부와 한국개발연구원 등이 전경련과 함께 "현행 교과서에서 나타나는 반시장적 시각 등 442가지를 수정하라"고 요구했다.

돌이켜보면 경제교과서 모형 파문의 책임 주체는 정부다. 재경부가 대본을 쓰고 교육부가 주연을 맡았다.

재경부 각본에 교육부 주연, 팔짱 낀 청와대

ⓒ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런데도 청와대는 팔짱을 끼고 있었다. 교과서 심의기준을 중립적으로 재설정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아예 공동개발하겠다는 협약까지 맺었는데도 제동을 걸거나 시정을 요구하지 않았다.

순간적인 직무 태만이 코미디와 비슷한 상황을 연출한다.

조·중·동이 제기하는 청와대 개입 의혹은 결국 청와대의 이념성을 부각한다. 교육부가 전경련과 뜻을 합쳐 반시장적 시각을 수정한 결과물을 청와대가 다시 비튼 것 아니겠는가. 따라서 청와대는 반시장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곳이 된다.

이런 착시 효과는 교육부 관계자의 말이 퍼질수록 더 극대화된다. 이렇게 말했다. 경제교과서 모형 내용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따라서 저작권도 계속 가질 것이며, 일선 학교에 대한 배포도 예정대로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경제교과서 모형 표지에 실리는 저자 명의에서 '교육부'란 이름 석 자를 빼기로 한 조치와 배치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은 접어두자. 앞서서 말했다. 그러면 '국정 교과서'가 된다고 했다.

경제교과서 모형 내용의 잘못을 인정하고 저작권을 포기하면 국민 혈세 5000만원을 허공에 날리는 꼴이 되고 교육부 관계자의 귀책사유는 뚜렷해진다. 바로 이 점을 우려해 교육부가 강변을 하고 있다는 짐작도 있지만 이 또한 거두자.

면피용이든 아니든, 교육부가 경제교과서 모형 내용의 정당성을 극구 강조하면 할수록 청와대의 개입 의혹은 정치적 성격을 띠게 된다. 청와대가 교육부, 더 나아가 재경부의 전문적 판단조차 무시하고 반시장주의에 경도돼 부당한 관리·감독을 하는 것이 된다.

바야흐로 이데올로기 투쟁 전선이 하나 더 그어지는 것이다.

태그:#청와대, #교과서, #경제, #조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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