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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 백악관 홈페이지
베이징 6자회담에서 북핵 문제 해결의 1단계 행동계획에 극적인 합의가 이뤄지면서, 미국 내 강온파 사이의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특히 부시 행정부는 강온파 양쪽으로부터 공격받는 처지에 몰리고 있다.

강경파 분위기는 한마디로 '잘 가다가 왜 딴 길로 새느냐'로 표현할 수 있다. 반면 민주당을 비롯한 온건파는 '왜 6년이나 허송세월 했느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강온파 사이에 낀 부시 행정부는 "중요한 첫걸음을 내딛었다"며 강경파의 비판을 무마하고 있고, "그래도 제네바 합의보단 낫다"는 논리로 민주당의 공세에 대응하고 있다.

존 볼튼과 라이스의 말싸움

우선 흥미로운 것은 부시 행정부 6년 동안 한솥밥을 먹었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존 볼튼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 사이의 언쟁이다. 볼튼은 6자회담 합의가 임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CNN과의 인터뷰에서 "대단히 잘못된 타협"이라며, "부시 대통령은 이를 거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그는 합의문 발표 이후에도 여러 언론에 등장해 부시 행정부를 성토하고 나섰다. "악행을 보상하지 않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원칙이 깨져, 이란 등 다른 국가들에게도 잘못된 메시지를 주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볼튼의 공세에 라이스는 발끈하고 나섰다. 그녀는 13일 오전(미국시간) 기자회견에서 "그렇지 않다"며, "그의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고 일축했다.

라이스와 볼튼은 앙금이 남아 있는 사이이다. 부시 대통령이 재임에 성공하자, 라이스는 백악관 안보보좌관에서 국무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겼고, 딕 체니 부통령은 당시 국무부 차관이었던 볼튼을 부장관으로 승진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라이스의 반대에 막혀 논란 끝에 볼튼을 유엔 주재 대사로 옮겼고, 끝내 의회의 인준을 받지 못해 중간에 사임하고 말았다. 잠잠해졌던 둘 사이가 북핵 타결을 계기로 구원이 되살아난 느낌이다.

"진작 북한과 협상에 나섰다면 수년 전 북핵 합의 나왔을 것"

볼튼이 강경파의 시각을 대변한다면, 상원 외교위원장이자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한 조셉 바이든의 지적은 민주당을 비롯한 온건파의 시각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북핵 타결 소식이 전해지자, "다시 과거로 돌아간 기분(takes us back to the future)"이라고 말했다.

그는 "좋은 소식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동결 상태로 두었다"는 것이고, "나쁜 소식은 부시 대통령이 지금 수용한 타협을 2002년에는 거부해 북핵이 당시보다 더 위험해졌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진작 북한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고 협상에 나섰다면, 북한이 10개 안팎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확보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핵실험에 이르는 상황도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뉴욕타임즈>의 비판은 더욱 신랄하다. 이 신문은 14일자 사설에서 "왜 이렇게 오래 걸렸냐"는 질문을 던지면서, "부시 행정부가 싫어하는 나라와 대화하지 않기로 결정하지 않았다면, 수년 전에 북핵 합의는 나왔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뉴욕타임즈>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러한 뒤늦은 성공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것인가?" 부시 행정부가 여전히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거부하고 있는 이란, 시리아, 쿠바 등을 일컫는 지적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뉴욕타임즈>의 지적을 귀담아들을 것 같지는 않다. 부시 행정부가 과거와는 달리 북한과의 타협을 모색한 이유가 외교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라크와 이란 등 중동에 힘을 집중시키기 위해서는 북핵 문제가 더 이상 악화되어서는 안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자신의 외교가 성과가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성과 함께.

부시, 어떤 지도자로 기록될 것인가

때 이른 예상이지만, 부시가 북한의 최고지도자를 처음으로 만나는 현직 미국 대통령이 될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다. 부시 대통령 자신도 강조한 것처럼, 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의 해결이 1994년 제네바 합의보다 훌륭한 것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와 플루토늄의 폐기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북미관계 정상화 및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같은 근본 문제 해결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북한은 이러한 근본 문제의 해결을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풀려고 할 것이다. 부시 자신도 한국전쟁 종전선언문에 직접 서명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흔히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경구를 상기시키듯, 부시가 북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과 이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과제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5년 전 "악의 축"으로 지목한 국가의 최고지도자와 악수를 나눌지는 향후 최대 관심사로 부상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러한 일이 벌어진다면, 후대의 역사가는 부시를 어떻게 평가할까? 50여년 만에 한국전쟁을 끝내고 20년 만에 북핵 문제를 해결한 지도자로 기록할 것인가? 아니면 미사일방어체제(MD)와 기독교 근본주의에 매몰된 나머지 6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한 지도자로 기억될 것인가?

어쨌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어떻게 기록되든,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국제사회를 더욱 위태롭게 만든 대통령이라는 평가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이다.

태그:#부시, #김정일, #만남, #북한과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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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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