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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은 꺾이지 않는다(삶이 보이는 창), 박미경 지음
들꽃은 꺾이지 않는다(삶이 보이는 창), 박미경 지음 ⓒ 삶이 보이는 창
<들꽃은 꺾이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는 노동자의 아내에서 운동가, 투사가 되어 한국의 거대기업인 삼성과 맞서 힘겹게 싸우는 삼성SDI 해고자 송수근씨의 아내다.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영암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저자는 19살부터 시장 난전에서 장사하는 부모님을 도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배달과 장사를 했고, 삼성 SDI에서도 5년간 근무를 했다. 추측하건데 그 곳에서 IMF 이듬해인 1998년 해고된 남편 송수근씨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가정을 꾸렸을 것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가족들과 떨어져 생활 할 수밖에 없었던 이력과 남편의 해고이후 삶 등으로 유추해보면 그는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왔을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꽃과 자연을 좋아하고, 그 작은 세계 속에서 감사하는 마음과 사랑을 배우며 삶의 힘을 얻는다.

그는 책머리에서 가난과 삼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제 삶에 큰 영향을 미친 두 가지를 꼽으라면 지독했던 가난과 너무도 깊은 상처를 안겨준 삼성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가난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고통을 견디는 힘을 길러준 밑거름이 되었다면, 삼성은 땅을 치고 통곡할 만큼의 억울함과 분노를 안겨주었고, 세상을 몰랐던 제게 인생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그는 남편 송수근씨가 구속 94일째인 2월 초, 겨울바람의 기운이 완연한 때에 일인시위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는 지금껏 길고 긴 삼성과의 싸움을 하고 있다. 대기업 골리앗과의 싸움, 그것은 가정뿐 아니라 개인사까지도 철저하게 파괴할 만큼 어려운 싸움이었다는 것이 그의 글마다 구구절절 들어있다.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을 겪은 그이지만, 절망하지 않고 여전히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그가 희망을 품고 싸울 수 있는 힘을 준 것은 가족들과 더 어렵게 살아가는 이웃들이었다. 그의 일기의 일부를 보자.

"아무리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내 맘과는 다르게 스트레스를 받아서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아도, 그 우울함마저 은지를 바라보며 강한 모성으로 이겨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한 집의 가장으로서 병이 깊어지면 안 되기에, 평소 게을러서 등한시하던 운동도 건강을 생각해서 요즘은 조금씩 합니다...(중략)...저보다 더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나마 위안을 삼고, 그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을 심어주려 하다보면 괴로움을 잠시 잊고 지금 겪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2002년 4월 25일 일기 중에서)

1부, '뼛속까지 파고드는 고통'에는 삼성SDI와 관련된 그의 일기가 들어있다. 그 일기를 통해 해고노동자 당사자와 그 가족이 겪는 아픔, 그리고 끈질기게 복직투쟁을 하는 가족들과 대기업이 해고노동자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볼 수 있다. 그는 글공부를 한 적이 없다. 그냥 살아가면서 몸으로 느낀 아픔들, 그 아픔에 '아프다'고 소리치며 남긴 흔적들을 일기로 남겼고, 그 일기가 책의 일부가 되어 세상에 나왔다.

@BRI@1부에 실린 그의 일기를 읽으면서 '글이란 무엇일까? 혹은 작품이란, 문학이란 무엇일까?' 생각 하면서 유명작가들과 대형출판사들만의 잔치처럼 보이는 출판계 현실 때문에 <들꽃은 꺾이지 않는다>가 그냥 꺾여버리는 책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분노와 절망 보다는 희망을 노래하는 저자. 하지만 그것이 사유에서 온 것이 아니라 삶에서 온 것이기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또 이것이 한 개인 혹은 한 가정이 대기업의 횡포 속에서 어떤 삶을 강요당했는지에 대한 산기록이니 이런 것을 우리가 공유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터. 많은 이들에게 읽혀지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본다.

2부 '삼성과의 인연이 없었다면 행복했을 텐데, 3부 '시속 80km 바람에도 마르지 않는 슬픔', 4부 '희망을 안고 뚜벅뚜벅 걸어요' 등으로 이어지는 그녀의 희망 찾기는 결혼 10년 만의 두 번째 물놀이에서도, 월수입 24만원으로 살아가면서도 계속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에 대해 긍정을 하며 끄덕일 수 있었다.

남편의 일로 해고노동자들의 아픔에 동참하게 된 그가 어느 날 8년 3개월의 해고자 생활을 끝내고 출근하는 김석진씨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글을 썼다.

"8년 3개월간 해고자로 살면서 고통 받은 것을 생각하면 억울함과 분노가 가득했을 것입니다. 김석진씨의 첫 출근 모습을 사진으로 보니 정말 부럽고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행복할까. 그동안 가슴에 쌓인 한이 일순간에 풀어졌을 것입니다."

무슨 이야길까? 지금 그렇게 억울하고 분노로 가득한 세월을 살아왔지만 남편이 복직 된다면 '그동안 가슴에 쌓인 한'을 일순간에 풀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행복할까'하는 말에서 그 행복이 그의 것이 되지 못했음에 눈시울이 불거진다. 아직도 그는 그런 억울함과 한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은 개인사요 가족사이지만 그녀의 글을 통해서 우리는 삼성의 노동 탄압에 새삼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으며, 동시에 과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가치는 무엇인가를 다시금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추천글을 쓴 문학평론가 정문순씨는 "여전히 80년대 노동 전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현실이 마음 아프다"고 밝히며 아래와 같이 글을 마치고 있다.

"어쨌든 그녀는 승리자다. 남편의 복직 싸움에 얼마나 험난한 행로가 기다리고 있더라도, 무노조가 기업으로서 얼마나 수치인지 모르는 병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당근과 채찍으로 노동자들의 입을 언제까지나 틀어막을 수 있다고 믿는 공룡이 그 앞에 버티고 있다 하더라도, 박미경씨는 이미 승부가 끝난 싸움을 하고 있다. 해고 후 삼천 일이 넘는 기간은 투사로 거듭나기 위해 단련되는 과정이 오롯이 담긴 세월이리라. 이 가족의 건투와 안녕을 빈다."

나는 승부가 끝난 그 싸움이 정신적인 차원이 아니라 현실적인 차원에서의 승리, 즉 해고된 남편의 복직과 무노조 삼성신화가 깨어지는 그런 승리로 이어지길 바란다. 그의 '희망 찾기', 그것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희망 찾기여야 할 것이다.

들꽃은 꺾이지 않는다

박미경 지음, 삶창(삶이보이는창)(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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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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