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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바다
울릉도 바다 ⓒ 안준철
하긴 세상 일이 다 그렇긴 하다. 사람을 만나 서로 사랑하는 일도 그렇다. 일일이 겪지 않고서야 어찌 그것(혹은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있으랴? 또한, 평생 남으로 지낼듯 하다가도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 것이 사람의 일이 아니던가. 그러고 보면 옛말이 하나도 그른 것이 없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며칠 새 울릉도를 다녀왔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곳을 다녀온 사실이야 내 책상에 놓인 달력에도 '5일부터 7일까지 울릉도 성인봉'이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불과 사나흘 전까지만 해도 지도상에 나와 있는 하나의 섬이었을 뿐인 울릉도가 지금은 몸을 뒤척이기만 해도 가슴에서 출렁거릴 만큼 존재감이 느껴지는 이 현실 같지 않은 현실을 어찌 설명해야할까.

울릉도는 포항에서 217km나 떨어져 있다. 뱃길로 540리가 넘는 길을 '썬 플라워 호'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쾌속정은 불과 3시간 만에 뭍사람을 섬으로 데려다준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시속 45노트를 자랑하는 '썬 플라워 호'가 정기 수리중인 관계로 대신 시속 41노트로 달린다는 '한겨레 호'를 이용하게 되었다. 뭍으로 치자면 시속 74km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속도다.

울릉도에 가다

울릉도 도동항에서
울릉도 도동항에서 ⓒ 안준철
한데 속도가 빠른 것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3시간 동안 바다를 여행하면서도 바다를 느낄 수 없는 아이러니라니! 물론 사고를 염려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실망스럽게도 우리 일행이 탄 쾌속정에는 갑판이 없었다.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갑판에 올라 바닷바람을 쐬면서 뱃머리에 검푸른 파도가 하얀 거품을 내고 스러지는 광경을 보고 싶었는데….

나는 어쩔 수 없이 배낭 속에서 책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여행을 하면서 책을 읽는 것도 별미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차선책에 불과하다. 생전 처음으로(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동해안 망망대해를 달리는 기쁨을 포기해야 하는 마음이 썩 좋을 리는 없었다.

갑판이 없는 배가 주는 불편함은 그뿐이 아니었다. 울릉도에 도착할 때까지 울릉도를 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울릉도를 떠나오면서도 울릉도와 작별할 수 없다는 것. 배를 타자마자 정해진 의자에 앉아 정해진 방향을 바라보아야 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차창을 통해 보이는 서너 마리의 갈매기들에게 대신 손을 흔들어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2박 3일 동안 나를 재워주고, 먹여주고, 함께 살아준 울릉도를 떠나오면서 작별 인사조차 할 수 없었던 그 사정이 아마 내 가슴을 더 아리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 말고도 시간이 흐를수록 울릉도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지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그것은 내가 울릉도에 닿기 전까지는 그곳에 대해서 너무도 무지했다는 사실이다. 하룻밤 사이에 정을 통하여 만리장성을 쌓았다고 해도 미안한 것은 미안한 것이다.

나리분지 전망대에서 본 풍경
나리분지 전망대에서 본 풍경 ⓒ 안준철
울릉도는 신생대 제 3~4기 화산활동에 의해 생성된 섬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수천, 혹은 수백만 년 전에 바다 한가운데에서 솟아난 섬이라는 말이다. 이런 지질학적 지식이야 인터넷을 검색하면 금방 알 수 있는 터라 굳이 머리 속에 넣고 다닐 필요야 없겠다. 하지만 그때 화산폭발로 생긴 나리분지가 울릉도에서는 거의 유일한 평야지대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은 무관심에서 온 내 무지의 소산이 아닌가.

울릉도는 하나의 험준한 산이었다. 첫날 포구에서 가까운 민박집에서 여장을 풀고 점심을 먹고 난 뒤에 봉고차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아본 후에 내린 결론이다. 제주도를 일컬어 하나의 산, 곧 한라산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여객선이 드나드는 도동항 밑동부터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들이 압도하는 울릉도는 산세가 완만하고 평야지대가 많은 제주도와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아름다운 바다
아름다운 바다 ⓒ 안준철

해안선을 따라가다 보면 이런 풍경을 자주 만날 수 있다
해안선을 따라가다 보면 이런 풍경을 자주 만날 수 있다 ⓒ 안준철
포구에서 얼른 눈에 띄는 산봉우리들이 죄다 울릉도 최고봉인 성인봉(해발984m)으로 보일 정도였다. 해안을 따라 돌면서도 나는 몇 번이고 일행들에게 저것이 성인봉이냐고 묻곤 했던 것이다. 그럴 것이 섬 중앙에 우뚝 선 성인봉 주변에는 미륵산(901m), 초봉(603m), 형제봉(713m), 탄갓봉(593m), 광모봉(586m), 두리봉(602m), 나리봉(842m)들이 말 그대로 병풍처럼 둘러 서 있는 형국이다. 울릉도 유일한 평야지대인 나리분지와 알봉분지 두 곳을 제외하면 울릉도 전제 지역 평균 경사가 25라고 한다.

그래서 일까? 인구가 만 명에 채 안 되는데 섬이 보유하는 차량대수가 4천대가 넘는다고 한다. 가까운 거리도 경사가 심하여 차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울릉도의 동서 길이는 12km요, 남북 길이는 10km이다. 해안선은 56,5km인데 산세가 워낙 험하고 폭풍일수가 연중 150일이 넘어서는 열악한 자연조건으로 인해 아직도 해안 순환도로 약 4.5km구간을 완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내수전 전망대에서 본 산-성인봉은 저 산 너머에 있다
내수전 전망대에서 본 산-성인봉은 저 산 너머에 있다 ⓒ 안준철
바다와 산
바다와 산 ⓒ 안준철
울릉도에 뱀이 없다는 사실도 금시초문이었다. 그것은 향나무가 뿜어내는 향이나 기운을 뱀이 싫어해서라는데, 뱀이 없어서 그런지 천적관계에 있는 개구리는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울릉도에는 뱀 말고도 없는 것이 두 가지가 더 있다. 도둑과 공해. 이를 일컬어 삼무(三無)라 한다 하니 삼다(三多)도 있을 법한데, 울릉도는 제주도보다 많은 것이 두 가지 있어 오다(五多)라고 한단다. 향나무, 바람, 미인, 물, 돌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섬에 물이 많다는 것도 뜻밖이었다. 울릉도는 연평균 강수량이 1228mm로, 눈이 강수량의 삼분의 일을 차지한다. 그런데 올해는 눈이 많이 오지 않아 적설량이 부족하여 올해 처음으로 실시할 예정이었던 나리분지 눈꽃 축제를 취소했다고 한다. 멀리서 보면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만큼 까마득해 보이는 나리분지 외진 한 구석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아낙 말로는 이렇게 눈이 오지 않은 것은 백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아니, 저렇게 젊은 아낙이 벌써 백년을 살았을까?"

나리분지 가게 아낙이 문밖까지 배웅나왔다.
나리분지 가게 아낙이 문밖까지 배웅나왔다. ⓒ 안준철
무공해 섬에 살고 있는 아낙이 막걸리 안주로 싱싱한 무공해 산미나리를 한 접시 덤으로 가져다주는 바람에 잠시 넋이 나갔던 것일까? 나는 잠시 엉뚱한 생각에 빠져 있다가 일행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바람에 화들짝 정신이 차리고 밖으로 나왔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이 황량하고 쓸쓸하기 짝이 없는 곳에 아낙을 버려두고 가는 기분이라도 든 것일까? 문까지 배웅 나온 아낙을 사진기에 한 방 담아 두고 싶었다. 한데 그녀는 말이 재미있었다.

"사람들 많이 오게 선전 좀 많이 해줘요."

울릉도에 도착한 둘째 날, 우리는 드디어 성인봉에 올랐다. 민박집을 나서면서부터 곧바로 급경사가 시작되었다. 나리분지에서 만난 아낙의 말처럼 백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서 그런지 웬만큼 산을 오를 때까지도 눈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눈을 만났다. 눈을 만날 정도가 아니라 발이 빠지면 허벅지까지 묻힐 정도로 엄청난 눈이었다. 나는 또 잠깐 엉뚱한 생각에 빠져 들었다.

"그렇다면 저것은 백년설이란 말인가?"

사실은 그런 여유(?) 있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을 만큼 위험한 순간들이 몇 차례 닥치곤 했었다. 산 비탈에 선 나무에 달아놓은 그다지 튼튼해 보이지 않는 밧줄에 의존하여 천길 낭떠러지기를 건너는 순간은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백년 만에 눈이 많이 오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평년만 같았어도 산을 오르는 것이 가능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때서야 집을 나서기 전에 민박집 아주머니가 해주신 말이 떠올랐다. 우리가 성인봉에 간다고 하니까 마치 어린 아이를 물가에 내보내는 듯한 우려의 눈빛으로 바라보시더니 만일 눈이 많이 쌓여 있으면 올라가지 말고 돌아오라고 당부를 했던 것이다. 그 말에 일행들을 그냥 웃고 말았는데 나는 기어이 이렇게 한 마디 응수를 했던 것이다.

"저희들 괜찮아요. 눈이 많아도 장비가 다 있거든요."

장비라고 해봐야 빙판길을 미끄럽지 않게 해줄 아이젠을 두고 한 말이었는데 눈이 허벅지까지 빠지고, 발을 헛딛기라도 하면 위험한 상황이 닥칠 수도 있는 좁고 가파른 산길을 내려올 때는 신발에 찬 아이젠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다행히도 백년 만에 눈이 많이 오지 않은 기상이변 덕분에 우리 일행은 출발한 지 약 3시간 만에 무사히 성인봉에 도착하여 환한 웃음을 나눌 수가 있었다.

사랑하고 싶은 섬

'올뫼 산악회' 아름다운 도반들
'올뫼 산악회' 아름다운 도반들 ⓒ 안준철
한편, 하산 길은 눈사태로 인해 수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애당초는 도동-대원사-작은등대-사다리골-안숯마을-팔각정-바람등대-성인봉-신령수-투막집(점심)-나리분지-천부로 이어지는 코스를 밟고 내려와 3시 20분에 출발하는 마을버스를 타고 출발지점인 도동으로 갈 예정이었는데 성인봉에서 오던 길을 되돌아가야 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전날 버스를 타고 나리분지를 먼저 다녀온 것이 참 잘한 일이었다.

울릉도는 평지가 많지 않아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깎아지른, 보통 사람들 눈에는 절벽이나 다름이 없어 보이는 산비탈에서도 농사를 짓는다. 길을 가다보면 가슴이나 어깨 높이에서 쉽게 눈에 띄는 것이 섬더덕이요 산미나리이다. 산간지대에서는 아직 오염되지 않은 생태 환경 때문에 황기, 지황, 천궁, 도라지 등의 약용작물들이 많이 생산된다.

울릉도의 주요 항구로는 울릉도의 주요관문인 도동항과 어업전진기지로 개발된 저동항이 있다. 이외에도 몇 개의 포구가 있지만 규모가 두 항구에 비하면 아주 작은 편이다. 도동항과 저동항은 걸어서 갈 만한 거리지만 해안선을 따라 난 길은 없다. 도동항에서 왼편으로 난 아름다운 길을 따라 가보면 행남 등대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보면 멀리 않은 곳에 저동항이 보인다.

마지막 날, 우리 일행은 택시를 타고 내수전 전망대에 가서 해맞이를 할 생각이었으나 날이 흐린 관계로 먼 바다에서 형광등빛 환한 불을 켠 채 떠 있는 오징어잡이 배들을 보고 돌아오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바다에 떠오르는 해를 본 것은 저동항 방파제에서였다. 아직은 붉은 빛을 띤 것이 아쉬운 대로 해맞이 광경이라도 여길만했다. 아니, 아름다웠다.

그날 오후 3시, 배로 울릉도를 떠나면서 나는 울릉도에게 작별인사를 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앞에서 설명한 대로다. 대신 배 안에서 나는 '아름답다'는 말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멀리 울릉도까지 온 것은 어쩌면 내 안에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어떤 장치랄까 미적 감각이랄까 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것이 없다면 아침 일찍 일어나 해맞이를 보겠다고 설쳐댈 이유도 없지 않겠는가.

어떤 사진이 해맞이 사진일까? 해가 바다에 모습을 드러낼 무렵 마침 어선 한 척이 지나가고 있다. 그 배안에는 누가 있을까? 바다에 명줄을 매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겠지.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돌아가는 방향으로 달, 해넘이, 오징어잡이 배의 불빛, 해맞이 광경이다.
어떤 사진이 해맞이 사진일까? 해가 바다에 모습을 드러낼 무렵 마침 어선 한 척이 지나가고 있다. 그 배안에는 누가 있을까? 바다에 명줄을 매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겠지.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돌아가는 방향으로 달, 해넘이, 오징어잡이 배의 불빛, 해맞이 광경이다. ⓒ 안준철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울릉도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었느냐? 아니면 아름다움을 탐하고 있었느냐? 바로 그 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후자인 것만 같았다. 느끼는 것과 탐하는 것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리라. 다만, 언젠가 한 번 더 울릉도에 가게 된다면 그때는 울릉도를 탐하지도, 느끼지도 않을 생각이다. 그럼 어떻게?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나는 정말 울릉도를 사랑하고 싶다. 사랑함으로 울릉도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다. 내가 미처 담아오지 못한 절벽처럼 깎아지른 산비탈에서 자라는 풀 한 포기까지도 말이다. 한폭의 그림처럼 바다에 떠 있는 아름다운 한 척의 배, 그 안에서 있을 바다에 명줄 매달고 살아가는 사람의 고된 마음까지도.

아, 정말 울릉도에 다시 한 번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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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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