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빗처럼 생긴 '손 기계'로 개흙을 휘젓고 뒤집어 참꼬막을 캐낸다
빗처럼 생긴 '손 기계'로 개흙을 휘젓고 뒤집어 참꼬막을 캐낸다 ⓒ 이철영
꼬막은 예나 지금이나 귀한 음식이다. 잔칫집에 다녀오신 할머니의 손에는 가제 손수건에 싼 꼬막이 들려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여러 음식이 뒤섞여 꼬질꼬질 했던 것으로 기억되지만 주전부리가 귀한 시절이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동네 어떤 할머니는 손수건도 아닌 저고리 옷섶에 음식을 넣고 다니다 옷이 아주 썩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집안 제사를 지낸 어느 날, 항상 젯밥에만 눈이 어두웠던 어린 식솔들은 조상님들이 드시고 남긴 음식물이 배당되기를 숨죽여 기다렸다. 긴 기다림 뒤에 마침내 누나가 꼬막 하나를 얻어들고는 환희에 못 이겨 소리를 질렀다.

"나도 꼬막 하나 얻었다! 우리나라 광복절!"

얼마나 좋았으면 민족해방의 기쁨에다 꼬막을 대입했으리요. 아이들 흉볼만한 허접한 사건들을 잊지 못하는 집안 어른들은 이제 딸 시집보내야 할 나이가 된 누이를 두고, 지금도 그 이야기를 우려먹곤 하신다. 게다가 어린 나에게 광복절은 꼬막 먹는 날이라는 착각까지 들게 했으니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꼬막이 있던 셈이었다.

"나도 꼬막 하나 얻었다"

ⓒ 이철영
바다에서 살아 보기 전까지 그곳은 낭만이었다. 노을이 번지고 물안개가 피어오르며 사랑을 속삭여야 할 판타스틱한 공간이었다. 그런데 웬걸 20대 초반의 2년여를 뱃사람으로 살게 되었을 때, 그것은 나에게로 와 실체를 드러냈다. 한껏 낭만을 즐길 준비를 하고 있었던 햇병아리 앞에 나타난 최초의 존재는 거센 물살을 거슬러 노를 젓는, 환갑을 훌쩍 넘겼을 노부부였다.

검게 그을린 얼굴, 세월의 바람에 깊게 패인 주름, 쇳소리 섞인 거친 숨소리가 귓전을 후볐다. 삶이란 이름의 바다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었다. 광복절에 먹는 꼬막은 그렇게 노을이 지고,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쿨럭거리는 거친 호흡 속에서 캐어진다.

ⓒ 이철영
꼬막을 캐는 아낙들이 밀어가는 뻘배는 무리지어 한 방향으로 몰려가는 듯하다가 다시 흩어진다. 철새들의 군무이다가 떼 지은 물고기들의 유영이 된다. 어찌 보면 등대 없는 항해인양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어 보인다. 무애(無涯)인가. 삶의 수렁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의지한 뻘배는 자유이며 족쇄, 밥과 굴레, 고통과 희망이다. 두 대척점 사이에 그들이 있다. 그들이 밀어가는 것은 실존이다.

아낙들은 '뻘배(길이 2m, 폭 45cm)'에 한쪽 무릎을 얹고 다른 발로 뻘을 밀어 내어 이동한다.
아낙들은 '뻘배(길이 2m, 폭 45cm)'에 한쪽 무릎을 얹고 다른 발로 뻘을 밀어 내어 이동한다. ⓒ 이철영
일의 중간 중간에 아낙들은 캐온 꼬막을 바지선에 옮겨 싣고는 뱃전에 올려둔 소주와 음료수를 들이킨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쐬주'다. 컬컬한 목에 소주가 들어가서는 해독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드시면 취해서 일 하시겠어요?"
"뭣이 취해? 요것이 야팽이여, 야팽."
"야팽이 뭐죠?"
"마약이여, 마약. 요것이 없으면 널(뻘배)이 움직이간디?"


젓가락도 귀찮은지 뻘이 잔뜩 묻은 고무장갑을 대충 털고는 콩나물을 손으로 집어 입속으로 밀어 넣는다.

"캬아! 어이! 이쁜 총각도 한잔 해~"

밥그릇에 쐬주를 들들들 붓는다.

"아따메, 이쁜 총각이 술 따라준께 징허니 맛있네."
"아따, 아짐들, 아조 총각하고 술판 벌이고 있네, 어서 가서 일 하씨요, 잉!"
어촌계장의 닥달에 마지못해 주섬주섬 자리를 뜬다. 총각 행세하며 마시는 쐬주 맛이 괜찮다. 그들은 신산한 삶의 꼬리를 남기며 작은 점으로 멀어져 간다.

바지선에서 끓인 따끈한 떡국과 '쐬주'가 고된 작업에 잠시 휴식을 준다.
바지선에서 끓인 따끈한 떡국과 '쐬주'가 고된 작업에 잠시 휴식을 준다. ⓒ 이철영
꼬막잡이는 보름기준으로 5~6일, 한달에 10~12일 동안에 이루어진다. 하루작업은 출발에서 육지에 내리기까지 12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고된 작업이다. 그날 하루 벌교 대룡리 상진 어촌계는 20kg들이 285가마로 2천여만원의 어획고를 올렸다. 바빠지면 1000~1500가마까지 수확한다고 한다.

바지선에 설치된 선별기를 거쳐 뻘흙을 털어낸 꼬막은 20kg들이 망에 담는다.
바지선에 설치된 선별기를 거쳐 뻘흙을 털어낸 꼬막은 20kg들이 망에 담는다. ⓒ 이철영
순천만에서 나는 벌교 꼬막은 참꼬막이다. 참꼬막은 서남해안의 갯벌에서만 난다. 그 중에서도 벌교꼬막을 최고로 친다. 껍데기에 털이 난, 골이 좁은 세꼬막과는 맛이 천지 차이다.

조선시대 정약전이 흑산도에 유배되어 지은 자산어보는 '크기는 밤만하고 껍질은 조개를 닮아 둥글다. 빛깔은 하얗고 무늬가 세로로 열을 지어 늘어서 있으며 줄과 줄 사이에는 도랑이 있어 기와지붕과 같다. 두껍질의 들쑥날쑥한 면이 서로 엇갈려 맞추어져 있다. 고기살은 노랗고 맛이 달다'고 기록하고 있다.

벌교읍내 장터에서 식당을 찾아 꼬막을 달라 했더니 사오면 삶아 준단다. 오천원어치 한 바가지를 사들고 가서 막걸리 세병을 먹었는데 모두 6천원을 받는다. 꼬막 삶아 준 값은 공짜다. 테이블 세개를 두고 모녀가 장사를 하는데 이름이 '할매밥집'. 주로 시장 사람들에게 밥을 파는데 1인분에 2천원이다. 장사라기보다는 그저 서로 돕고 사는 모습이다. 할머니한테 꼬막 잘 삶는 법을 물었다.

"물이 끓으면 꼬막을 넣고 찬물을 붓어. 글고 잘 젓어 줘. 안 글면 입을 벌려불제. 한 놈만 입을 벌리면 얼릉 불을 꺼. 그래야 맛이 살어. 팍 삶아불면 다 입 벌리고 쪼그라져서 단물이 다 빠져부러."

ⓒ 오창석
삶기도 잘 삶아야 하지만 참꼬막의 참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막걸리가 필수다. 그래야 인생이 잘 삶아진다. 꼬막 입장에서 구라를 치자면 막걸리는 꼬막을 위해 태어났다. 벌교에서는 잔치 때 사람들이 서로 꼬막을 삶지 않으려고 한단다. 꼬막 귀신들의 입장에서 너무도 정밀한 맛을 요구하니 삶는 사람이 욕 얻어먹기 십상이고 잘 해야 본전치기 밖에 못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oil 사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