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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버스터> 1권
<드림 버스터> 1권 ⓒ 프로메테우스
일본 작가 미야베 미유키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작가다. 일본에서 인기 절정의 여성작가이자, 일본을 대표하는 대중문학 작가이기도 하다.

<화차> <이유> 등의 굵직한 사회추리소설을 발표해왔고, 2001년에 <모방범>으로 장쾌한 홈런을 날린 작가이기도 하다.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들의 상당수는 작년에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화차>의 개정판 뿐 만이 아니라, <이유> <모방범> <스텝파더 스텝> <용은 잠들다> <마술은 속삭인다> <대답은 필요없어> 등이 바로 그 작품들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팬들이라면 무엇을 먼저 읽어야할지 행복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물론 미야베 미유키의 명성에 비하면 국내에 소개된 시점이 꽤 늦은 편이다. 하지만 수많은 작품들이 작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에서도 미야베 미유키의 인기가 폭발적이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팬들은 미야베 미유키의 앞 두 글자를 따서 '미미 여사'라고 칭하기도 한다.

미야베 미유키는 게임 마니아로도 유명하다. '폐인'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온라인 게임을 좋아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게임 시나리오에도 참여하고 RPG 게임을 소설화해서 발표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작가이다.

미야베 미유키는 <드림 버스터>에서도 역시 장르를 넘나드는 재능을 보이고 있다. <드림 버스터>의 무대는 먼 옛날, 어쩌면 먼 미래일지도 모르는 다른 행성이다. '테라'라는 이름의 이 행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지구의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행성의 환경은 열악하다. 행성의 94%가 바다인 곳이다. 사람이 살만한 육지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인구는 늘지 않고, 작은 육지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우여곡절 끝에 각 나라들이 힘을 합쳐서 연방정부를 만들었지만 그래도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늘어나지 않는 인구가 문제다. 아이들은 픽픽 쓰러져 죽고 노인들도 오래 살지 못한다. 인구가 적기에 인재가 항상 부족한 현실이다. 그래서 연방정부에서는 획기적인 사업을 시작한다.

인간을 불사화(不死化)하는 연구가 바로 그것이다. 육체가 죽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육체는 죽더라도 의식과 지식, 지능, 사고 그리고 인격을 따로 떼어내서 영원히 보존하는 것을 말한다. 이 프로젝트의 실험을 위해서 연방정부에서는 사형수 60명을 추려서 실험의 대상자로 선정한다. 이 실험은 절반의 성공을 거둔다. 사형수의 육체에서 의식을 분리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실험 도중에 대폭발로 행성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사형수 중에서 10명이 죽는다. 그 구멍은 묘하게도 현재의 지구로 연결된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형수 50명의 의식은 그 구멍을 통해서 지구로 도망치게 된다. 꽤나 흥미진진한 상황설정이다.

이때부터 도망친 사형수의 의식을 체포하기 위한 작업이 시작된다. 도망친 의식은 지구인의 꿈속으로 침입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사형수의 의식이 해당 지구인을 지배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BRI@<드림 버스터>는 지구로 도망친 '사형수의 의식'을 체포하기 위한 사냥꾼들의 이야기다. '테라' 행성에서는 이런 사냥꾼들을 DB(Dream Buster)라고 부른다. DB들은 사형수의 의식이 숨어든 지구인을 DP(Dreaming Person)라고 부른다. DB들은 양동이처럼 생긴 기구를 타고 DP의 꿈속으로 들어와서 DP와 협력하여 사형수의 의식을 하나씩 체포해서 '테라'로 귀환한다.

다소 황당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이야기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역시 미야베 미유키!'라는 생각이 저절로 생겨난다. 미야베 미유키의 장기중 하나는 인물들을 묘사하는 솜씨다. 한 개인의 성장과정과 개성, 성격을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동시에 그 인물이 가지고 있는 어두운 과거와 상처를 조금씩 드러낸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그 상처와 정면으로 맞서서 극복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작가는 <드림 버스터>에서도 이런 실력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테라' 행성의 DB이자 두 명의 주인공인 셴, 마에스트로는 각각 자기만의 과거를 가지고 있다. 특히 나이어린 셴은 알 수 없는 경계심과 세상으로부터의 소외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셴과 마에스트로가 지구로 출동해서 만나게 되는 DP들의 모습도 다르지 않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에게 꾸중 들었던 상처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아줌마가 있는가 하면, 자기가 부모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괴로워하는 직장인도 있다. 열등감 때문에 언제나 머뭇거리는 여성이 있고, 시도 때도 없이 부모에게 얻어맞는 8살짜리 남자아이도 있다.

셴과 마에스트로가 출동해서 만나게 되는 지구인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셴과 마에스트로는 이런 지구인들에게 때로는 험한 말을 하고, 때로는 공감하며 따뜻하게 다독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을 거쳐서 지구인의 꿈에 침입한 '사형수의 의식'을 체포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 과정은 각각의 지구인이 가지고 있는 상처와 열등감을 극복하는 과정 그 자체가 된다. '사형수의 의식'을 체포함으로서 사람들의 악몽을 물리치는 것이다.

그리고 미야베 미유키는 이 작품을 통해서 많은 생각거리를 독자에게 던져준다. 획일화되어가는 산업사회와 그 구성원들, 범죄자의 뉘우침과 갱생의 문제, 교묘하게 증언을 조작하는 형사 제도 그리고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의 문제까지. 미야베 미유키는 그동안 작품을 통해서 사회의 병폐를 날카롭게 묘사해왔다. 역시 <드림 버스터>에서도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서 온갖 사회문제들을 독자에게 툭 던져놓고 있다.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세계는 다채롭다. 그리고 그런 경향은 <모방범> 이후에 더욱 강해졌다. 모방범 이후에 미야베 미유키는 <이코-안개의 성> <브레이브 스토리> <드림 버스터> 등을 연달아 발표한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모두 판타지의 성향이 강하다. 미야베 미유키는 <모방범> 이후에 추리소설로는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고 판단한 것일까? 아니면 다른 추리 대작을 위해서 잠시 쉬어가는 것일까?

<드림 버스터>에도 이렇게 다채로운 요소들이 섞여있다. 공상과학과 판타지, 추리와 심리 그리고 성장의 요소까지 한데 뒤섞여 있는 것이다. 미야베 미유키는 많은 복선과 단서를 작품의 곳곳에 심어두었다. 이런 복선을 풀어가는 재미, 단서의 정체가 드러나는 흥미로움이 작품의 재미를 더욱 배가시킨다. 그리고 그 속에는 사회의 모순과 그 때문에 고민하고 상처받는 사람들의 내면이 담겨있다. <드림 버스터>를 읽다보면, 미야베 미유키가 왜 우리나라에서 작년 한 해 동안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인기는 아마 올해에도 변함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미야베 미유키 지음 / 김소연 옮김. 프로메테우스 펴냄.


드림 버스터 1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손안의책(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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